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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Sep 18. 2024

뉴욕행 포기 직전: 작가로 출장갈 수 있다니요

‘혹시나 갈 수 있을까’로부터 실제로 도착하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여정이었다.


우선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직항 항공기를 타도 미국 동부는 약 14시간이 넘게 걸린다. 비행기만 타도 날짜경계선을 넘어가며 왕복이면 이미 4일 정도를 소모하게 된다. 그렇게나 멀리 갔으니 하루 이틀 머무르다 오기엔 너무 아깝고, 뉴욕은 그게 불가능할 만큼 멋진 미술관과 문화예술 이벤트, 관광 포인트로 가득 차 있는 도시다.


그런데 원래 걱정했던 것 중 시간의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갑자기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돼버렸다. 이제 난 시간 하나는 한없이 많은 사람이 됐고, 긴 비행시간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길어지는 일정은 문제가 아니게 됐다.


다른 측면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더 있었는데, 혼자 살면서 월세를 내고 있다는 . 여행이 아무리 길어진다 해도 나는 그 돈을 고스란히 내야 하니 그게 너무 아까운 건 당연하다. 뒤에 서술할 결정적인 이유로 뉴욕행이 확정되었을 때 나는 차라리 집을 내놓고 갔어야 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여행이 끝난 뒤에 큰 변화를 맞이한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이제 나머지 하나는 비용의 문제. 사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가고자 하는 곳이 멀 수록 더 심려가 깊어진다.


특히 공연 관람을 하고자 하는 경우 티켓값이 기본적으로 들고 많은 경우 좋은 자리나 등급이 높은 서비스를 위해 제반 비용이 크게 추가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갔던 여행처럼 아티스트가 많은 도시의 공연을 하는 경우 도시마다의 체류비와 이동 경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문을 연 것은 최애의 월드투어


내 최애는 총 16개의 도시에서 공연하는 월드투어를 진행중이다. 그룹의 일원으로 성실히 활동하면서 스스로의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 그 결과물로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 투어는 그의 세 번째 EP 발매와 함께 계획되었다. 유럽의 서쪽 주요 도시인 런던에서 시작해 미주에서 가장 많은 라이브를 소화한 뒤, 아시아 지역에서 마무리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그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혼자서 여러 차례의 공연을 대륙마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을 보여주는 순간을, 누군가를 응원하며 실시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큰 행운이다. 여러 사정 혹은 사건사고로 월드투어가 현실이 된다는 그 자체가 꽤 난이도 높은 일이며, 무엇보다 이정도의 투어를 할 만큼 자신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가꿔오는 일이 또 쉽지가 않다.


그 사람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보스턴에 가고 싶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지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을 탐미하고 그려내는 것이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애정하며 응원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가고 싶어했던- 뉴욕. 작가로서 뉴욕에 가기를 오래 갈망해 왔는데, 보스턴과 뉴욕이 거의 붙어 있다는 건 이미 만들어진 지도와 다름없었다.


다만 티켓을 구해놓고도 정말로 떠나는 것을 확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앞서 서술한 현실적인 이유들이 무척 컸다.복잡한 개인사정을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나는 그 연약한 생존의 문제를 직장에 다님으로써 보완하려 했고, 종종 성공적인 실행의 시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투어 일정이 있는데 생존이 틀어지니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괴로웠다. 예술을 너무 사랑해서 예술가가 되었는데 정작 내가 사랑하는 예술을 만끽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인생이라니. 허무한 모순이 웃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미국 여행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을 접어가던 어느 날, P실장님께 오랜만의 연락이 왔다.


실행 버튼을 누른 건 프로젝트 계약


그것은 듣기만 해도 눈이 커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제안이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고 의미가 있어, 회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멋진 협업 자리가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 계약은 여행의 시작 전부터 끝난 뒤까지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기에 그 중 출발의 부스터가 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계약을 했으니 계약금이 들어왔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나는 더이상 빈털터리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도 아니었다. 내게는 할 일과 계약서가 있다- 나는 유유자적해 보일지언정 아무 생각없이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 것은 정말이지 잘 못하는 타입이라, 여행을 가더라도 무언가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어와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 게 있다.


이것이 티켓이 있음에도 순수하게 공연을 보러 미국 동부라는 먼 곳까지 가기로 완전히 확정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오직 콘서트를 위해 가기엔 내 마음의 허들이 너무 높았다. 전체 여행경비나 물리적인 거리가 주는 숫자의 공포감을 나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옛날과 비슷하게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진 아니었겠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갑작스레 잃고 다시 프리랜서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 여행이 쉬운 결정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작가로 뉴욕에 갈 수 있다니


결정적인 순간은 이 프로젝트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뉴욕임을 알았을 때. 프로젝트를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 뉴욕 리서치가 필요해졌다. 비로소 떠날 수 있는 완벽한 근거,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당위성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이 일은 출장이 됐다. 내가 뉴욕까지 간다고 하니 실장님도 실리적, 심리적인 양쪽에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조금 더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여러 제안을 해 주시거나 일정에 맞춰 일처리를 해주시는 것은 물론, 내가 뉴욕에 가서 만나고 싶은 분에 대해 이야기하니 흔쾌히 알아봐 주겠다고 하시기까지.


이건 내가 혼자 자유여행을 갈 때 가능한 옵션이 전혀 아니며, 오직 작가로 뉴욕에 갈 때만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실제의 계획은 당연하고- 심리적인 면에서 이제 나의 미국행이 완전히 다른 여정이 되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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