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 어제 내린 단비로
집 앞의 또랑이 되살아났다.
그간의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버렸었는데
오늘은 잠시 잡초를 뽑는 마당에서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창 피어날 여름을 앞두고
나의 공부는 일단락 되어 가고 있다.
긴 시간 어쩌지도 못할 터널을 지나오는 것처럼
밀고 나가려고 해도 밀리지 않는 무언가에
늘 제자리걸음 같았는데
인생의 한 단락을, 내가 시작한 그 매듭을
내가 마무리하고 풀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런 나에게 늘 위로가 되어주고, 쉼이 되어주고,
경이로움이 되어주었던 이 자연.
지금 있는 꽃들의 사연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겨울에 씨앗을 뿌려 모종으로 길러낸 해바라기가 꽃을 피웠다.
추위에 얼어 죽을까 봐 비닐로 덮었다가 몇 그루만 남기고 죽였을 때 얼마나 쓰라렸던지,
그 후에 또 씨앗을 뿌려 모종을 키우고, 자연 발아한 것들까지
앞으로도 잇달아 필 해바라기가 많기 때문에 올해는 두고두고 해바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메리골드 씨앗도 노지에 여러 번 뿌렸었는데, 그러고 나서 깨달은 사실.
메리골드 씨앗은 너무 빨리 심으면 안 된다. 4월 중순, 그 이후에 심어야 잘 올라온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면 그건 내 마음일 뿐, 메리골드에게는 춥다.
달리아도 겨울에 실내에 씨를 뿌려 모종으로 키운 뒤 텃밭 옆에 심었는데
이렇게 꽃이 피었다.
토양에 따라 꽃색이 다르게 나오는 수국,
올봄 수국 전용 비료를 주었는데 신기하게 보라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작년에는 분홍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색다른 신비로움과 은은한 자태가 아름답다.
별수국의 꽃은 정말 별모양이다. 지금은 더 무성하게 피어올랐는데 파란 바닷빛의 꽃이라니.
바위취의 꽃도 개성이 넘친다. 하얀 나비를 닮았다. 꽃잎 두 개는 왜 길게 늘어져 있는 걸까.
바위취는 번식력이 강해서 바위틈으로 많이 번지고 있다. 열일하는 바위취!
올봄 언덕 올라가는 경사지에 심은 삼색조팝, 알갱이 같은 것이 매달리더니 그 알갱이가 펴서 이렇게 오밀조밀한 꽃이 되었다. 금잔화는 봄에 노지에 씨를 뿌려 키워냈는데, 메리골드처럼 분홍꽃이 피었다. 밤에는 오므라들고 낮에는 꽃이 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대유행을 했다는 플라밍고 셀릭스를 최근에야 알게 된 나, 또 식욕(식물욕^^)이 도져서
데려왔는데 왕성한 생명력으로 잎이 쭉쭉 뻗어나가더니 햇볕을 잘 본 이파리에는 분홍빛이 돈다. 아래위 다른 종을 접붙여서 만들어지는데, 햇볕을 쬐어야 비현실적인 분홍 잎을 볼 수 있으며, 뻗어나가는 가지 정리를 해주어야 예쁜 수형을 감상할 수 있다.
벽쪽 박토에 심어서 물을 자주 뿌려주어 살리고 살렸던 오이 모종이 이렇게 커서 열매를 매달았고,
솎아내기를 늦게 한 때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양파는 여전히 천천히 자라고 있다.
겨울을 난 양파인데 양파 초보는 여전히 언제 양파를 수확하는지 모르고 있다.
텃밭의 쑥갓과 쌈채소는 다 먹지를 못 해 꽃이 피고 나무처럼 커져만 간다.
노란 쑥갓 꽃을 따다가 병에 꽃아 식탁에 놓고 바라보니 노란빛이 상큼하다.
이렇게 다양한 꽃이 오늘도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
사연 없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아름답고, 곁에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 의지하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