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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y 17. 2016

시 써주는 남자

100일 선물로 시를 받다

스물한살이 된 그와 막 연애를 시작했을때만 해도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잘 놀고'

'잘 마시고'

'유머러스하고'

'여자에게 인기 많고'

'반반한 얼굴에 어울리게 꿈도 배우지망생'인 남자였다.


그러다 하나씩 발견하게 된

그의 순수한 모습,

진지한 모습,

문학적인 모습,

사람을 챙기는 모습,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


사랑이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게 이런건가 싶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내 남자친구에게서 발견한 가장 의외의 모습은 그에게 문학소년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밤의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인상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그는 100일 선물로 '소나무'라는 제목의 시를 써주었다. 시를 선물로 받다니.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에게 소나무와 같은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주겠다는, 정성 가득한 시였다. 그가 그린 소나무 삽화에서도 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왠지 모르게 너무 감동을 받고 말았다.


시를 쓰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이런게 좋구나 하고 느낀 게 몇가지 있다. 먼저 그는 시를 쓸 만큼 감성적이고 섬세한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여자의 마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것 같다. 두번째로 그는 나를 위한 글을 써주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의 시가 아닌, 나에게 마음을 전해기 위한 '그 누군가'가 써준 시를 읽는다는 건 특별한 느낌이다.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마치 프로포즈를 받는 느낌?


시라는 선물은 쳇바퀴처럼 같은 하루를 메마르게 살아가는 나에게 촉촉함을 채워주는 그런 것이었다. 마치 배고파 죽어가는 영혼을 다시 살리는 느낌.


그는 그 이후로도 몇 번 잊을만하면 나에게 시를 선물했다. 평범한 날에 받는 서프라이즈. 그가 건내는 종이는 특별했다. 그 위에 쓰여진 시는 나를 미소짓게 했다. 시를 선물받는 평범한 날이면, 나는 그 시를 읽으면서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며, 나를 생각했구나 알게 된다. 종이에 펜을 끄적이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작은 기쁨이었다.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그의 시. 어느새 몇십장.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책상에 앉으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세워둔 그의 첫 시, '소나무'. 소중히 코팅된 그 종이를 오래토록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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