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캠핑카에 살기로 결심했다 - 3
캠핑카 살이를 준비하는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에게 잘 맞는 캠핑카를 찾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에 사게 될 캠핑카는 우리의 두 번째 캠핑카가 될 예정이었다. 텐트부터 시작해 천천히 업그레이드를 해온 우리의 캠핑 역사를 훑어보자면, 로드트립으로 미국 국립공원을 모두 둘러보는 나의 장기 인생 프로젝트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미국에 2년간의 시한부 방문객으로 처음 왔을 때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꼭 하고 싶었던 딱 한 가지가 바로 미국의 아름다운 국립공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 가는 것이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주로 차박과 텐트 캠핑 위주의 자연 속에 머무르는 여행을 즐겼기에 깊은 산속에 꽁꽁 숨겨져 있는 국립공원만큼 우리에게 좋은 여행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 성공적일뻔했던 프로젝트에 영유아 1인이 합류하자마자 성인 둘일 때는 나름의 낭만으로 가득했던 텐트 캠핑은 산티아고 버금가는 고행길이 되어버렸다.
하루라도 빨리 캠핑여행을 재개하고 싶어서 8개월이 된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주립공원에서 캠핑 시뮬레이션을 하고, 아이가 걸음마를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바다- 오레곤-캘리포니아주를 거치는 2주간의 로드트립을 떠났다. 부부 둘 뿐이었다면 무조건 텐트 캠핑이었겠지만 갓 돌이 지난 아이를 고려해 호텔과 캠핑장을 나름 골고루 섞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저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생전 처음으로 단전 깊숙이에서 솟아 나왔다.
그 이후로 하루 이틀의 짧은 주말 캠핑은 종종 이어갔지만, 우리가 정작 하고 싶었던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긴 로드트립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텐트가 아니라 캠핑카가 있으면 다시 도전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쯤 생애 처음으로 차고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월세는 또 한 번 치솟았지만 차고는 차 두 대를 너끈히 세우고 수납 선반까지 넣을 정도로 넓었고, 이 공간은 우리의 오랜 로망 하나를 실현시켜주었다.
"캠핑카 하나 사자. 우리 차고에 넣을 수 있는 걸로!"
그때부터 캠핑카 정보수집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캠핑카라고 부르는 모든 종류를 다 포괄하는 단어는 바로 RV, 즉 Recreational Vehicle이다.
RV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차와 휴식공간이 붙어있는 Motorhome이고 다른 하나는 차로 끌어야 하는 Trailer이다. Motorhom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Class A, B, C로 나뉘고 Traile는 Travel trailer, Fifith-Wheel, Pop-up Trailer 등이 있다.
각자의 생활패턴과, 사용 인원, 용도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선택지 중에 고를 수가 있었는데,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차고에 안전하게 주차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조건에 부합하는 RV는 딱 하나, 바로 Pop-up Trailer였다. 이름 그대로 평상시에는 납작하게 접어놨다가 사용할 때만 팝업텐트처럼 촤-락(실제로 그렇게 한방에 펼쳐지는 건 아니다) 펼쳐서 생활공간을 만드는 녀석이다.
엄청나게 럭셔리하지는 않았지만, 양쪽에는 침대 두 개, 그 옆으로는 침대로 변신 가능한 식탁과 소파 그리고 한 켠에는 2구짜리 가스레인지와 작은 싱크대가 있었다. 그간 텐트 캠퍼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안에서 밥을 하고, 양치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도는 최고였다. 더운 날 에어컨과 추운 날 히터를 틀 수 있었기에 낮 기온이 기본 40도가 넘는 한여름의 애리조나에서도, 스노 스톰이 불어닥친 영하의 콜로라도에서도 캠핑을 할 수 있었다.
잠정 중단되었던 로드트립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을 데리고 아이가 만 두 살이 되던 해부터 캘리포니아부터 뉴멕시코까지, 애리조나부터 몬타나까지 미국 서부의 거의 모든 주들을 로드트립했다. 역사 상 길이 남을 코로나 팬더믹을 떠올리면 마스크로 인한 답답함,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의 우울감보다는 이 작은 트레일러와 함께 한 수많은 미국 국립공원들이 떠올랐다.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녀석이었지만, 보내줘야만 하는 이유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분명해졌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의 특성상 주를 넘나드는 로드트립을 하다 보면 하루에 운전만 기본 6시간 이상 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런 장거리 운전 특히 야간 운전을 하게 될 때 차를 세워놓고 쉴 수 있는 Rest Area들이 곳곳에 있다. 우리도 그런 곳에서 쉬게 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엄연히 캠핑장이 아니라 주차장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고이 접혀있는 팝업 트레일러를 펼칠 수가 없었다. 그 말인즉슨 분명히 편안한 침대가 있으나 펼치기 전까지는 쓸 수 없기에, 차에서 쪽잠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세워진 다른 RV 주인들이 차를 세워놓은 뒤, 뒤에 달린 트레일러 문을 열고 총총총 들어가 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도 초과의 부러움에 배가 아팠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화장실이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알찬 녀석이었지만 화장실까지 담지는 못했다. 막 기저귀를 떼기 시작한, 방광조절 능력이 미약한 아이와 캠핑을 하다 보면 화장실이 정말 간절히 필요할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언젠가는 이 아이를 보내줘야지, 보내줘야지 혼자서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여행으로서 캠핑이 아니라 생활으로서 캠핑을 하려는 우리의 상황에는 좀 더 크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RV가 필요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정들었던 팝업 트레일러를 팔고, 다시 RV의 종류를 심도 있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단 Motorhome은 모두 제외했다. 모터홈을 산다는 얘기는 차값까지 포함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이기에 우리의 예산을 넘어서기로 했고, 팝업 트레일러를 끌던 픽업트럭이 이미 있었기에 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Motorhome에 해당하는 Class A, B, C를 제외하자 Travel Trailer와 Fifth Wheel 정도가 후보에 남았다.
풀타임 RV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트레일러 타입이었다. 특히 Fifth Wheel 같은 경우에는 모든 RV를 통틀어 가장 넓은 공간을 쓸 수 있고 층고도 높기 때문에 잘 꾸며놓은 Fifth Wheel에 들어가면 정말 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트럭의 Towing Capacity였다. 안전상의 이유로, 트레일러를 구입할 때는 내가 가진 차가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Towing Capacity이다. 작고 귀여운 팝업 트레일러를 짱짱하게 끌었던 우리의 트럭은 작은 Fifth-Wheel도 끌지 못함이 밝혀졌다. 우리의 목록에서 Fifth-Wheel도 지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Travel Trailer. 수많은 트레일러를 보고 또 봤다. 매일 밤 누워서 미국의 당근 마켓인 Offer up을 뒤지는 것이 하루 일과인 나날이었다. 크기는 크되 무게는 가벼운 트레일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러다가 이삿짐을 빼는 날까지 트레일러를 못 살 수도, 그래서 정말 집도, 캠핑카도 없는 홈리스가 되겠다 싶은 불안감이 밀려올 때 즈음, 드디어 우리에게 딱 맞는 녀석이 Offer up에 나타났다.
우리가 원하는 캠핑카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3인 가족인 답답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일 것, 둘째 현재 가지고 있는 트럭이 무리 없이 끌 수 있는 무게일 것, 그리고 마지막은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럽게 펼쳐놓고 앉아 사부 적거 릴 수 있을만할 공간이 있을 것이었다. 우리에게 맞는 캠핑카를 찾기가 이토록 어려웠던 이유는 마지막 조건 때문이었다.
좁은 공간에 부엌과 침대, 옷장, 수납장, 식탁 등 모든 가고과 가전을 압축해 넣어야 하는 캠핑카의 특성상, 그리고 입식 생활이 익숙한 미국의 특성상 캠핑카에 저만큼의 바닥 공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파가 있어도 소파에 기대고 바닥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는 한국인의 바닥 사랑을 미국 캠핑카에서는 담아낼 수 없구나 포기할까 싶을 때였다. 단 한 번도 리스트에 넣지 않았던 Toy Hauler가 눈에 들어왔다.
Toy Hauler는 RV 중에서도 특수하고도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 캠핑카이다. 바로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과감하게 희생해서 뒤 쪽에 차고를 만들어놓은 극한의 기능성에 충실한 캠핑카이기 때문이다. 주로 ATV나 버기카, 오토바이 등 캠핑을 하는 동안 즐길 레저용 차량을 차고에 싣기 위한 목적으로 쓴다. 레저용이래 봤자 자전거랑 씽씽이 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실을 게 없다면 그 뒤편의 차고가 하나의 널찍한 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살던 집에서 이사 나오기 불과 며칠 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차고가 딸린 캠핑카를 구입했다. 차고 바닥에 딱 맞는 대형 러그를 사서 깔아놓으니 금세 아늑한 방이 되었다. 아이는 집에 살던 때처럼 온갖 장난감을 바닥에 널브러뜨리고 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장난감들을 조금 밀어내고 바닥 한켠에 대자로 누워 허리를 폈다.
절대적으로 근사한 캠핑카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어울리는 캠핑카를 찾아 나선 "절대 캠핑카를 찾는 여정"이 끝났다. 우리는 간발의 차이로 홈리스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