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캠핑카에 살기로 결심했다 - 2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갔다.
대충의 준비는 끝났고 마지막 남은 애리조나에서의 시간을 사람들을 만나며 모두에게 급작스러운 송별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애리조나를 떠나 텍사스로 가는 걸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캠핑카에서 살며 여행하며 천천히 마지막 목적지인 휴스턴으로 갈 것이라고, 휴스턴에 도착해서는 RV PARK에 장기로 머물며 아주 천천히 살고 싶은 동네를, 집을 알아볼 것이라고 얘기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꽤나 다양한 연령대의 지인, 친구들의 반응을 종합해 본 결과 굉장히 재미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은 20대 동생들은 하나같이 흡사 돌고래를 방불케 하는 하이피치의 환호(?)와 함께 "너무 재미있겠다!"라고 얘기했다. 놀러 가면 캠핑카에서 재워주냐고도 재차 물었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내 마음속 한 편의 무거운 짐은 잠시 잊고, "아, 맞아 이게 얼마나 설레고 재미있는 일이야! 얼마나 바라던 일이야!"라고 맘껏 신나 할 수 있었다.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나이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용기"를 얘기했다. 참 용기 있다. 어떻게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 유치원도 그만두고, 집도 없이 지낼 "용기"가 났냐라고.
아이도 클만치 크고, 여러모로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든 40,50대 분들은 20대처럼 '재미'를 얘기했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참~~ 재밌게~~ 산다."라고 하셨다. 물결이 한가득 느껴지는 그 말을 들으니 아이들이 침대에서 방방 뛰고 날아다니며 땀에 흠뻑 젖고 넘어져도 까르륵거리는 걸 보면서 '참~~ 재밌게 논다'라고 엄마들과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났다.
과거 언젠가에는 나에게도 침대에서 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침대 망가질 걱정이 먼저 들고, 그런 걱정 없이 뛰어보기로 해 본들 서너 번 뛰고는 숨을 헥헥거리며 '아고 힘들다'할 나 자신을 알기에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침대에서 뛰는 걸 보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마음. 무작정 떠난다는 우리를 보며 4,50대 분들이 가지는 감정이 대략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애리조나에서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라 할 수 있는 70대 할머니 두 분에게 나의 '날짜를 말해줄 수 없는 이사 소식'을 전했을 때 두 분은 아쉬움에 눈물지으셨고, 우리의 캠핑카 살이 계획에 대해 자세히 들으면 들을수록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시다 종국에는 이런 질문을 하셨다.
"좋은 일로 가는 거... 맞지?"
팬더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고, 가족과의 시간에 삶의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국에는 기존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RV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팬더믹 이전의 RV는 주로 가족의 휴가용으로 쓰이거나, 미국 북부에 사는 은퇴한 노부부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미국 남부(주로 애리조나, 텍사스, 플로리다와 같은 곳이다)로 내려와 몇 개월 지내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공통점은 모두 집도 있고, RV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이 지긋한 미국인에게 캠핑카 여행이 아닌 캠핑카 생활(풀타임 RVing이라고 한다)은 여전히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업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팬더믹 이후 급상승한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캠핑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사실인지라, 우리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할머니들의 우려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현지에서 떠날 준비가 웬만큼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이 중요한 소식을 왜 가족이 거의 마지막으로 전해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식 밖의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의 심도 있는 의논과 대화는 오롯이 부부가 해야 할 일이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굳이 알려서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뼛속까지 독립적인 자식 놈 둘이 만나 결혼한 결과이다.
조용히 우리의 계획을 들으시던 부모님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너희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는다. 건강 조심 심하고 안전하게 다니렴."이라고 우리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런 말도 없이 시아버지께서는 내 통장으로 용돈인지 생활비인지 모를 돈을 부쳐주셨다.
한국에 사는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원했던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열렬히 우리가 지금쯤 '집 한 채'를 갖길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학생 신분으로 결혼한 아들이 제 때 공부를 잘 마치고, 미국에서 직장을 잡아 밥벌이를 하고, 이런 저출산 시대에 자식까지 낳아 기르며 평범한 인생의 모든 과업들을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밟아나가고 있는데, 이제 집만 하나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겠는데, 야속하게 때 마침 급상승한 부동산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우리 상황에 속이 타셨을 것이다.
그나마 서울에 살 게 아니라 미국에서 삶의 터전을 잡는다 하니, 미국은 그나마 집값이 훨씬 감당 가능하다고 하니 어느 정도 안심하고 계셨을 터인데, 어느 날 날벼락같이 집 없이 캠핑카에서 떠돌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왜냐고, 어떤 계획으로 사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얼마나 많은 걱정과 조언을 쏟아내고 싶으셨겠냐만은, 그저 "잘 지내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세 식구 행복하게 지내렴."으로 말을 줄이셨다.
이제 작별인사는 모두 끝났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은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사회의 시선의 맛보기와 같았다. 어떤 이에게는 우리가 재미있게 사는 용기 있는 가족으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앞 날 걱정 안 하는 무모한 어른 아이로 비칠 수도 있고, 혹은 집 없이 떠도는 불안정하고 불쌍한 가족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시선을 마주하더라도, 우리는 남들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일을 저질렀다는 자만심에 으쓱거리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허우적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삼키고 삼켜 가장 정제해서 내뱉은 아버님의 바람처럼, 그저 길 위에서 사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세 식구 행복하게 잘 지낼 것이다.
작별인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예방접종이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예방접종이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