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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 소생, 아들을 빌려 효도를 하다

by GQ

매일 저녁 일곱 시면

어디서든 전화를 했으니

횟수만 헤아려도

수천 통은 될 것이다.

.

.

고맙고

미안하고

불쌍한

우리 어머니.

오늘 같은 날 전화를 드리면

어디 아픈 덴 없냐?

밥은 먹었고?

하며 반가워하실 텐데.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中-


곰살맞은 편은 아니라서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진 못했다. 아들이 막 태어났을 때는 손주 얼굴 보여드린다는 핑계로 곧잘 영상통화를 했었는데 아이가 크면서 횟수가 줄었다. 어느 날 안 되겠다 싶어서 아들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매일 할머니께 전화드리기!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하루에 20분 게임을 할 수 있다. 외할머니께도 전화를 드리면 하루에 40분 게임이 가능했다. 아들에겐 큰 동기였을 것이다. (교육적으로 옳으냐는 차치하자. 혀가 길어질 테니)


나 대신 통화를 하고 있는 아들을 통해 늘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기묘한 통화 방식이었다. 조선시대에 중개자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던 그런 방식 말이다. 일명 "OO라고 여쭈어라" 방식이었다.


"할머니 식사하셨냐고 여쭤봐."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응~ 했지! 우리 강아지도 밥 먹었어?"


"할머니 어디 편찮은 데 없으신지 여쭤봐."

"할머니, 어디 안 아프세요?"

"어이~ 우리 강아지나 아프지 말어~"


"할머니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신지 여쭤봐."

"할머니,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아녀~ 먹을 거 많아~~"


통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통화가 5년이 넘고 울 아들이 강아지에서 청소년의 모습으로 탈태하면서 내 역할이 필요 없어졌다.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어디 편찮은 데 없으시죠?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다 사서 보내드릴게요!" 기계적인 멘트지만 기특하다.


평소 통화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3도 정도 더 높아질 때가 있다. 바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계실 때다. 매일 전화하는 손주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신 거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멘트는 대충 이렇다.


"아이고야~ 왜 맨~~~~~~~~~~날 전화하냐 귀찮게."

(번역- 동네 사람들~ 우리 손주는 맨날 전화 허요~)


"야는 허구한 날 뭐 필요하냐고 물어봐. 다 있당게."

(번역-울 막내아들네가 이렇게 자상혀)


사실 효자도 아니고 다정한 축에도 못 끼는 불초(不肖) 지만, 아들이 있어서 그 죄책감을 다소 덜며 살고 있다. 이제는 나 없을 때 통화를 끝내버릴 때가 많아 아들을 통해 부모님의 안녕을 확인한다.


"아들, 할머니 안 아프시대?"

"응~ 별일 없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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