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6)
'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떡방아 찧는 달토끼, 밤바다를 비추는 구름 없는 날의 둥근 달, 혹은 왠지 드라이브 가고 싶어지는 몽글몽글한 감성이 떠오를 수도 있다.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달과 연관된 이미지가 생각날 것이다.
누구나 달의 모양을 유심히 본 적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달의 오른쪽만 밝았다가 며칠이 지나면 꽉 찬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점점 이울어져서 왼쪽 반만 밝았다가, 마침내 점점 어두워져 밤하늘에 달이 안 보이게 된다. 이렇게 달의 모양이 여러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달의 위상변화'라고 한다. 달의 위상변화는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매일 달-태양-지구 사이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달의 공전주기는 29.5일이기 때문에 약 한 달을 주기로 달의 위상이 변화한다.
그렇다면 달은 왼쪽과 오른쪽, 어느 방향부터 차오를까?
보통 달이 차오른다고 할 때, 그 시작을 음력 초하루를 기준으로 한다 ('달의 위상' 그림). 음력 초하루의 달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때의 달은 새벽 6시에 동쪽하늘에서 떠올라서 정오에 남쪽에서 가장 높게 떠오르는데, 정오에는 지구 쪽 달 표면이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다. 음력 초하루로부터 2~4일 정도 지나면 달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는 오른쪽이 약간 차오른 초승달을 볼 수 있다. 음력 7~8일 정도 되면 초저녁 남쪽하늘에서 오른쪽이 꽉 찬 반달을 볼 수 있다. 이 때의 달을 상현달이라고 한다. 초승달과 상현달을 지난 달은 점점 차올라 음력 15일이 되면 가장 동그랗고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보름의 자정에는 남쪽하늘에서 높게 떠오른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달의 오른쪽부터 차오르던 것과 다르게 보름이 지나면 오른쪽부터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보름으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달의 왼쪽만 밝은 하현달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달의 왼쪽이 보일듯 말듯한 그믐달이 된다. 하현달에서 그믐달로 갈 때는 달이 뜨는 시기가 점점 늦어져 그믐달은 새벽하늘에야 볼 수 있다.
앞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달은 어느 방향부터 차오를까? 오른쪽부터이다. 하지만 절반만 맞는 대답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북반구'에서는 오른쪽부터 차오른다. 그렇다면 왼쪽부터 차오르기도 한다고? 그렇다. '남반구'에서는 왼쪽부터 차오른다. 앞서 올렸던 '달의 위상' 그림은 북반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달의 위상변화이다. 고등학교 이과생들이라면 한 번쯤 봤던 위와 같은 달의 위상변화는 북극에서 지구를 내려다봤을 때를 기준으로 작성한 그림이다. 그래서 북반구에 있는 한국을 기준으로 달의 위상변화를 얘기하면 오른쪽부터 차오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남반구에 있는 남극에서 달이 차오르는 방향은 왼쪽이다. 왜 그럴까? 한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극에 사는 사람은 거꾸로 서 있기 때문이다. 즉 시선이 거꾸로 뒤집혀 있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도 바뀌어 보인다. 북반구에서 본 달의 오른쪽은 남반구에서 왼쪽이 되고, 북반구에서 본 달의 왼쪽은 남반구에서 오른쪽이 된다. 그래서 남극의 달은 왼쪽부터 차오른다.
당연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이 사실을 나는 남극에 산 지 9개월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달의 모양을 보며 이상하긴 했다. 내가 알던 그믐달은 새벽아침에 보여야 하는데 초저녁에 보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초승달은 초저녁에 보여야 하는데 새벽아침에 보였다. 하도 이상해서 머리 속으로 태양-달을 두고 지구를 반시계 방향으로 수 십 번 돌려봤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 속의 그믐달은 새벽에 떠올랐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새벽의 초승달을 보다 여태껏 북반구를 기준으로 지구를 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속 지구본을 뒤집어 돌렸더니 그믐달은 초저녁에, 초승달은 새벽에 떠올랐다.
유퀴즈에 나오신 카이스트 총장님은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 TV를 거꾸로 보신다고 한다(정말 거꾸로 보셨다, 자막도 거꾸로다).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데 몇 달이 걸렸으니 당장 모니터라도 거꾸로 돌려놔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교내경시대회 은상 수상을 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재밌게 읽었는데.. 아직 선입견대로 생각하고 프레임을 벗어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과 거꾸로 서 있는 남극에서 많은 것 배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