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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층간소음 Apr 12. 2024

엄마, 그 깊은 애증의 굴레

나는 그것을 끝내 애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건 세 살 때의 기억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베란다에 그릇이 깨져있었다. 

나뒹구는 파편을 보며

저곳에 가면 다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억은 잠시 암전.

또 다시 세 살 때의 잔상이다.

잠결에 엄마의 고성에, 바닥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나는

눈을 뜨자마자 아빠가 엄마의 뺨을 내려치는 장면을 목도한다.

침대로 풀썩 쓰러진 엄마가 일어나며

자신을 때렸냐고 고성을 지르고

짙은 술 냄새 속에서 나는 다시 잠에 든다.

다시 암전.


두 사건이 같은 날 일어난 것인지

그렇다면 아빠는 엄마의 뺨을 내리치고 그릇을 던진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혹은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날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시 암전.


열 일곱살의 나는 안방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뜬다.

야한 꿈 끝에 마주한 건 까만 어둠.

그리고 술에 만취해 내 가슴 한 쪽을 어루만지고 있는 잠결의 아빠.


다음날 나는 울며 엄마에게 내 방을 만들어달라고 사정했고

엄마는 자신이 아빠에게 잘 말하겠고 방을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했지만

내 방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생기지 않았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구나.

나는 집을 떠나기엔 너무 어리고, 이 곳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스무 살. 

병원을 다니며 수면제를 구하기 시작했다.

아주 많이 모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

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아서

자세히 서술하기 어렵다.

그저 묵묵히 나는 어떤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뿐이었다.

과정은 심플했고 어떤 동요나 일렁임도 없었다. 

수면제를 모을 정도로 실행력을 갖추려면

절망이 표정으로 드리우지 않을 만큼 우울한 것이었겠거니, 할뿐이다. 


나는 스물 한 살에 집에서 빠져나왔지만

엄마는 아직 거기 있다. 

나를 낳았고

구해주지 못했던,

그리고 자신도 상처입었던 사람.


오랜시간 그녀를 증오했고

동시에 가련해 한.

결국 이건 필연의 사랑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너무 사랑해서

나는 엄마를 증오했다. 


서른 셋의 나는 결혼을 했고

내일 엄마가 우리 집에 온다. 

쌀 20kg과 잡곡, 김치를 한아름 안고서

낡은 얼굴과 거친 머릿결을 하고.


나는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 

다만 나 자신만을 구했을 뿐.

상담 선생님은 내가 엄마와 무척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며

어쩌면 자신 그 자체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슬을 끊어야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도.


나에겐 정말이지 아무 잘못도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오래도록 펑펑 울었다.

실로 오랜만의 해소였다. 


그런데요 선생님, 내 잘못이 아니라도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래서 마음에서 그녀를 놓을 수가 없네요.

그냥 그렇게 된 걸, 어쩔 수 없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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