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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Feb 27. 2024

걸리버 여행기


 


어릴 때 세계문학전집을 흥미롭게 읽었다. 백권 짜리 전집 속에 세상 모든 신기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었다. 여러 번 읽어도 어쩜 그렇게 매번 흥미진진한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책장에서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이 동화가 과연 아름답기만 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이야기와 더불어 명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300쪽이 넘는 이 소설 완역본을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실제로 조너선 스위프트 작가의 <걸리버 여행기>는 4장으로 구성된 연막이다.  


첫 번째는 걸리버가 몰던 배가 암초에 부딪혀 소인국에 표류하며 시작한다. 소인들에게 붙잡힌 걸리버는 점차 그들과 가까워지지만 왕궁에 난 불을 오줌으로 꺼버려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간다.  


작가는 당시 영국 궁정을 소인국에 빗대 비판한다. 사람들이 우러러 받드는 국가 체계가 사실은 얼마나 우습고 고루한지 보여준다. 또한 달걀을 깨는 방법처럼  사소한 문제를 확대 해석해 당파를 만들어 싸우는 모습으로 영국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을 표현하였고,  구두 굽이 낮냐 높냐로 당파를 가르는 모습은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을 풍자한다. 대개 어린이 동화책에는 첫 번째 이야기만 실린다. 환상적인 모험기로 소재가 기발해 각색될 때도 이 부분 위주로 다룬다.  


2장에서 걸리버가  거인국에 표류하게 된다. 거인들을 상대로 서커스 공연을 하던 걸리버는 급기야 거인국 왕에게 팔려 가는데 그곳에서 작다는 이유로 갖은 무시를 당한다. 존엄성을 짓밟힌 채 살던 걸리버는 독수리에게 잡혀 날아가다 바다에 표류한 뒤 영국으로 돌아온다. 


소인국에서는  거인이던 걸리버가 거인국에서는  소인이 되는 역설적인 모습을 통해 모든 인간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거인국에서 미인으로 꼽히는 여인들 역시 걸리버 눈에는 커다란 주근깨를 매달고 이가 기어가듯 혐오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 결점을 현미경처럼 확대해 들여다봤을 때 인간의  흉측한 모습이 부각됨을 시사한다.  


3장에서 걸리버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로 가게 된다. 섬을 식민지배하는 라퓨타는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영국을 나타내며 실용성을 무시하고 학문을 위한 학문, 추상과 내면세계만을 추구하는 근대 과학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특히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해내려는 과학자의 모습은 아이작 뉴턴을 풍자하였는데, 인간이 만든 문명과 지식이 얼마나 허풍스러운지 보여준다. 더욱이 라퓨타는 그 기술력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압제하는 수준의 식민 지배하는 형태로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후 걸리버는 잠시 마법사의 나라에서 유럽의 여러 위인들을 만나지만 이름을 떨친 그들의 모습이 사실은 과장과 거짓으로 포장됐음을 발견한다. 역사는 권력자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돼 기술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4장에서 걸리버는 휴이넘으로 가게 된다. 이곳은 말들이 통치하는 나라로 의심, 불신, 거짓말, 권력, 전쟁 같은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로 그려진다. 오히려 인간은 이성이 없는 짐승으로 등장한다. 인간 내면에 자리한 동물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걸리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휴이넘 국민들에게 존경심을 갖지만 결국 짐승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다. 작가는  지능과 문명을 거치지 못한 인간의 무지성을 짐승에 빗대 보여주며 교육과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걸리버 여행기>는  1762년 발간 직후 금서로 지정되었다. 신비한 모험담이 얼핏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보이지만 당시 권력층의 탐욕과 위선, 당파 싸움을 정면으로 비판한 어른을 위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통쾌하다는 호평과는 반대로 이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돌아온 걸리버가 인간을 야후로 인식하고 오로지 말하고만 대화하는 미치광이로 산다는 설정 때문이다. 18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각이 이제 막 깨어나려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지적 능력을 의심한 <걸리버 여행기>는 비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전 소설은 꾸준히 다양하게 해석돼 왔는데,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수백 년이 흐른 후 미래 시대는 <걸리버 여행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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