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Jun 24. 2024

노멀 피플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언제더라.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맛있게 먹은 음식이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도 재료가 될 수 있겠다. 대화란 분위기를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 모두가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로 가볍고 즐겁게 나눠야 부담이 없다. 그러다 결이 맞는다 판단하면 조금 더 깊이 대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함부로 진지한 대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에 투표할지 민주당에 투표할지 말이다. 종교, 성평등, 환경 등. 우리는 이런 문제는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고 말을 섞어봤자 평행선만 달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지한 대화는 결코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그 차이를 발견한 순간 서로 멀어진다. 상종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욕을 하면서... 


아일랜드 작가 샐리 루니는 <노멀 피플>에서 지금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다룬다. 작가는 계급, 세대, 성별, 성적지향이 다른 인물을 고루 등장시켜 다양한 의견과 감정을 대화로 드러낸다.  


소설에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남녀가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한 고등학교 동창인 코넬과 메리앤은 반대에 끌린다. 메리앤은 똑똑한데다 할 말을 다 하는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다. 미식축구를 하는 코넬은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관계의 우위에 있는 코넬이 교제 사실을 밝히기를 끝까지 거부하면서 헤어진다. 대학에 들어가며 관계가 역전된다. 메리앤과 달리 코넬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메리앤은 그런 코넬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은 다시 만나지만 사소한 오해로 또 헤어진다. 


메리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정서적 차별과 신체적 학대 속에 상처와 결핍을 떠안고 어른이 된 인물이다. 그 때문인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끌린다. 존중받는 것보다 차라리 물건 취급을 받을 때, 그녀의 성적 만족감은 커진다. 주인공의 계급 차이가 극명하여 당연하게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르다. 둘은 애틋한 연인 관계이기도 하고 족쇄와 같은 친구 관계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혀 가끔은 감정이 격해지고 싸움이 되지만 대화를 통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둘은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함께 있을 때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후반에 가서는 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헤어짐을 선택할 정도로 어느덧  성숙해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고 울다 보면  스쳐 지나간, 떠나보내야 했던  인연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사랑도 있고 평생 상처를 남기는 사랑도 있지만, 약점을 보완하고 감춰진 가능성을 끌어내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사랑도 있다. 개별 인격체로 봤을 때는 보잘 것 없지만 함께 있을 때 서로가 구원자 역할을 하는 관계도 있다. 누구나 마지막 사례처럼 서로를 보호해줄 안전한 사랑을 원하지만 현실에서 흔한 일은 아닌 듯하다.  


평범함 속에 정성을 다하는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며, 소중한 사랑은 운명처럼 이어진다는 메시지가 진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멀 피플>은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잘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에 당신을 치유하고 구원할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독자를 설득한다. 


근래의 소설이나 드라마는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의 말은 짧아졌으며, 논란이 될 만한 소지는 지레 피해버린다. 민감한 주제를 정확하게 꼬집어 언급하는 대신 에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유추하게 만든다. 굳이 싸우고 싶지 않은 창작자의 입장도 이해하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떠안은 독자의 입장도 이해한다.   


진지한 대화를 피한지 오래되었다. 소설로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가끔은 대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니까. 샐리 루니의 소설은 뜨겁고 진지하게 묻는 소설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그러고 나면 삶 전체가 달라진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야. 지금 우리는 사소한 결정들로도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나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껏 넌 나한테 대체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고, 나는 내가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네 덕분이지. - p.285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기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