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 친구야”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고등학교 첫 등교날 했던 다짐처럼 구례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잘 지내보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곳에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2년을 살아보니 첫 마음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 어설픈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말이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다 친하게 지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촌은 말이 통하는 이민과 같아서 같은 공간에 살지만 다른 시간대를 살기도 한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어려움 없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살아보니 알게 된다.
“어디 사요?”
“이 종기 씨 살던 집에 이사 왔어요”
“아! 토지에서 다방 한다는”
나는 카페를 운영하는데, 동네 어르신들은 다방을 하는 아무개로 알고 있었다. 같은 구례에 살지만 나는 2014년을 살고 어르신들은 1980년대를 살고 계셨다. 같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 한국말을 사용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뉘 집 아들이여?”
호구조사를 통해 지연 관계도를 확인하는데, 이는 평생을 지역 공동체 안의 일원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의 관계도에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관계가 느슨해서 언제든 적이 될 수도 있다. 지역공동체의 끈끈한 관계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분쟁 없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대문은 왜 잠가! 마을에서”
이른 아침, 문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할머니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수십 년을 한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분들에게는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 공간에 잘 모르는 사람이 불쑥 들어오는 경험은 내향적인 우리 부부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고민 끝에 우리는 ‘거리두기’를 선택했다. 문을 잠그고 사는 집이 거의 없는 동네지만 우리는 강아지 목줄을 사용하지 않아 문을 잠가야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12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태도가 있다.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기’다, 하루에 몇 번을 마주치든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더운 여름이면 한 번씩 경로당에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리기도 하며 거리를 좁히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맞출 필요 없이 나의 선을 지키면서 예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연고가 없는 곳으로 귀촌하는 사람들은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첫 번째 허들을 넘는 좋은 방법이다.
신앙 공동체 : 신앙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원주민을 만날 수 있으며, 공동 관심사를 가지고 있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쉽다.
귀농귀촌 교육 : 지역의 귀농귀촌 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류형 센터를 통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동지를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역 평생 프로그램 : 마을 도서관이나 평생교육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주로 외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원주민이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제안을 한다면 원주민과 사귈 기회를 많이 만들기를 추천한다. 외지에서 이주한 사람들끼리만 만남이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지역에 깊숙이 자리 잡지 못하고 늘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작목반을 통해 원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가 있지만, 농사와 상관없는 귀촌인들은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가장 수월한 방법 중에 하나는 신앙 공동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이든 원주민과의 관계가 잘 맺어진 사람들이 지역에 오래 자리 잡을 수 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특히 지역소멸 위기 지역은 이주 이후에 고정적이고 급여가 좋은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일은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도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주어진 일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는 주로 하는 일과 취미로 시작해 소소한 수익이 되는 일들을 병행하며 일거리를 만들어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자연과의 교감, 고요함과 여유를 만끽하지 못해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연고도 없이 내려온 우리 부부가 처음 구례로 내려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지리산 학교 선배 귀촌인들과 성당식구들이었다. 그중 버들치 시인 박남준 시인님과의 인연은 큰 힘이 되었다. 낯선 곳에 온 우리에게 따뜻한 차 한잔과 정겨운 술 한잔을 내어주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히 직접 써주신 글씨가 ‘섬진강댁’ 로고가 되어 12년간 우리의 얼굴이 되었다.
우리가 받은 도움처럼 우리도 낯선 곳에 처음 내려온 사람들을 돕는 일, 그것이 바로 시골살이다. 오랜 시간 형성된 원주민의 지역공동체와 외지에서 이주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교집합이 커지게 될 때 좀 더 안정적인 귀농 귀촌이 가능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