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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재우며

육퇴를 위한 의식

by 그레이
아이를 재우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면서도 간절한 순간이다.
작은 숨결과 손길 속에서 아이는 잠들고, 아빠는 곁에서 묘한 사랑과 아쉬움을 느낀다.
언젠가 이 시간도 추억이 되겠지만, 오늘만큼은 아이의 등을 오래도록 토닥이고 싶다.


사실 육아에 있어 와이프가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감당한다.

아이 밥 챙기기, 치카치카, 기획육아, 빨래 등 대부분의 것들은 와이프 주도로 진행된다.

서로 역할을 분명히 나누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 나뉘었다.


그중 오롯이 내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이 재우기다.

아이를 재우는 일은 특별한 능력보다는 깜깜한 방 안에서 아이가 잘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리는 인내심이 중요하다.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굿나잇 뽀뽀를 하고, 토닥여 주는 일. 운 좋으면 30분, 길면 1시간 반도 걸린다.


아이를 재우는 순간이 곧 육퇴이기에 퇴근 시간을 바라는 직장인처럼 아이 재우기는 가장 간절한 의식과도 같다. 빨리 쉬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신생아 때는 파도소리, 바람 소리 같은 백색 소음을 틀어주기도 하고, 쉬 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레 안아 둥가둥가 해주면 가끔 잘 잘 때도 있었다. 두 돌이 된 지금은 오히려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


얼마 전까지는 그림자 극장 영상을 보았는데, 요즘엔 추피책과 살쾡이 선생님 책을 읽어 준다.

얼마 전부터는 책을 다 읽고 잠을 청하는 아이가 끙끙 대며 자기 등을 팔로 탁탁 치며 바라본다.

등을 토닥여주며 재워달라는 거다. 자기도 졸린데 잠이 안 드니 아빠가 좀 토닥여서 재워달라는 요구가 귀엽고 재밌다.


"자장 자장 해줘"

"여기 쳐줘?"


모른 척 물으면 아이는 "응"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곤 애착인형에 얼굴을 묻는다.

아이 등을 토닥여주며 아이가 잠드는 모습을 숨소리로 느낄 때 아이를 향한 사랑스러움과 동시에 묘한 감정도 든다.


'언젠가는 아이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적어지겠지.'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지는 시간도 오겠지.'


문득 내 어린 시절 동생과 나란히 누워있으면 엄마가 몸을 쓰다듬으며 재워주셨던 일이 떠오른다.

이상하게 잠에 들 때 다른 누군가가 내 몸을 만지면 신경 쓰이고 소름 끼치는데 엄마가 만져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잠이 스르르 들었다.


어둔 밤 눈을 감으면 더 깜깜한 꿈나라가 무서웠지만,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면 잠결에도 안심이 되었다. 그런 밤의 의식은 나이를 먹고 머리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엄마의 손길보다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동생과 잡담을 나누는 게 더 재밌었다.


언젠가 우리 아이도 아빠의 토닥임 보다 스마트폰이, 친구와의 대화가 더 나은 수면제가 되겠지. 그런 날이 길어야 10년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빠의 토닥임에 금세 잠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아빠와 함께 잠드는 시간을 아이도 기억에 새겨 어른이 되어서도 추억할 수 있도록. 아빠의 손길을 몸이 기억하고, 아빠의 사랑과 애정을 숨결로 기억할 수 있게 금세 잠들지 않고,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잠들면 좋겠다.


수백일, 수만 번의 토닥임으로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의 손길을 한 장면이지만 영원히 기억하는 것처럼, 내 아이가 그렇게 기억하려면 아직 수만 번의 토닥임이 필요할 테지. 아빠의 바람이 통했는지, 오늘 아이는 한 시간 반을 뒤척이다 끝내 잠들었다. 그러다 나도 잠들 뻔했다. 육퇴를 즐기지 못할 뻔하다니. 끔찍한 일이다.


멍멍이와 꿈나라


#아빠육아 #육아에세이 #아이를재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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