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육아
아이를 키울수록 아이만큼이나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낯선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충만함과 때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뽀뽀 세례를 퍼부을 때는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의 크기에 놀라고, 육아에 지쳐 와이프에게 짜증을 낼 때는 내가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었나 새삼 깨닫는다.
육아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강의 경험이기에 아이를 돌보는데 에너지를 쓰면서도 궁극적으로 나란 사람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를 하며 아이와 와이프를 많이 사랑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으면, 나를 내가 돌보지 않으면 꾸준히 육아를 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비행기 안의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 긴급상황에서 아이에게 씌워주기 전에 보호자가 먼저 착용해야 한다는 매뉴얼처럼,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내 몸과 마음이 여유롭고 건강해야 한다.
아이가 누워만 있던 신생아 시절에도 아이랑 놀아주다 답답하고 마음이 힘들 때, 나는 아기 옆에 누워 지겨운 타이니 모빌을 끄고,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아이가 커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때로 자미로콰이 음악을 틀고 같이 춤을 추었다.
가끔 와이프가 한심한 표정으로 볼 때도 있지만, 내게는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27개월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내 육아의 제1 원칙은 '지속가능한 육아'이다. 꾸준한 육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인 내가 '나를 잃지 않는 것'.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킨다는 것은 내가 나를 잘 알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자기애로 인한 건강함과 행복감은 흘러넘쳐 아이와 아내에게 전달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힘이 들 때는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보다는 육아의 과정에서 무너지고 흔들리는 나를 발견할 때다. 그런 순간들을 겪고 또 겪으면서 어쩌면 나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재우기 전 아이의 얼굴을 감싸고 매일 기도한다.
'우리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사실 스스로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