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 이 가장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몸과 정신이 고되다 보니 가끔 아내와 부딪힐 때가 있다. 신혼 때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가끔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 별 것 아닌 일도 다투기도 한다. 선함과 배려는 여유에서 온다고 했는데 육아를 하면 여유는커녕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쉼도 부족하니 스파크가 튀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격상 화를 잘 내지 않는 스타일인데, 처음으로 아내와 크게 다툰 것도 아이를 키우면 서다. 아이가 돌 전 즈음 새벽에 울어대며 깨어 아이도, 나와 와이프도 잠을 잘 청하지 못했다. 밤새 잠도 잘 못 잤을 텐데 일찍부터 깬 아이 때문에 나도 덩달아 새벽부터 아이와 놀아주어야 했다. 몇 분 장난감 놀이를 했을까, 피곤한 나는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누웠다. 얼마 후 와이프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보고는 "아이랑 놀아주지 그새 또 잠들었냐"고 핀잔을 주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머쓱 넘어갔을 말인데 피곤한 육신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나는 나대로 서운함과 짜증을 표현했고,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화가 난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기만 진심으로 육아를 하는 줄 아는 건지,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왜 뭐라고 하는 건지 쓴 마음들이 올라왔다.
결국 그날 아이와 함께 처가에 가기로 한 일정에 나는 동참하지 않았다. 아버님이 차로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가셨고, 주말 새 나는 자존심 때문에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나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이와 와이프가 걱정되는 마음 보다 내 굳은 마음을 지키려 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집에 도착한 아내가 울며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하는 순간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질을 부리는 일도, 내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도 가장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서운한 마음이 들고, 내 입장이 맞다고 해도 아이의 아빠로서, 함께 육아를 하는 남편으로서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 아내의 절규 같은 말에 비로소 돌처럼 굳은 마음이 깨졌다.
그날 이후 스스로 다짐했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며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말자.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도 하루를 넘기지는 말자. 아내에게 화가 나더라도 내가 먼저 사과하고 풀자. 아직까지는 그 다짐을 나름 잘 지키고 있다. 허나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스스로 다짐하고 마음으로 외친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 보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나를 내려놓는 것이 진짜 나를 위한 일이라고.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실 때 여느 가정과는 달리? 우리 집은 아버지가 항상 승자였고, 어머니는 우셨다. 어린 마음에도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품어주시지 못할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부모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아버지도 아내를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지는 못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아이가 자라고, 언젠가 독립해 떠나더라도 나는 그날의 다짐을 지키는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싶다. 그렇게 나도 자라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