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시간여행
인생 난이도 극상의 육아에도 분명 장점은 있다. 아니 장점이 단점을 월등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많은 육아 선배들이 '더 키워봐라... 욕 나온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세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그렇다.
내가 느낀 육아만의 특별한 장점은 세 가지다.
첫째,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초월적 경험
둘째, 일상의 당연했던 것들도 눈물 나게 소중해지는 감사의 경험
셋째, 내 인내의 한계가 확장되는 성숙의 경험
1. 시간여행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을 마주 보는 과거 여행이자, 아이의 미래를 끊임없이 그려보는 미래 여행과 같다. 신생아 시절 병원과 조리원에 있다 처음으로 집에 온 첫날의 저녁, 한 줌의 아기를 한 손에 안아 재울 때 마치 내가 과거 신생아시절로 돌아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오롯이 마주하는 경험은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품어주는 초월적 느낌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충만한 위로와 신비로움과 숭고함이 비빔밥처럼 섞여 내 몸을 감싸는 느낌적인 느낌. 세상의 모든 부모가 이런 신비체험을 이미 경험했다는 생각에 놀랍고 존경스럽고 부럽기까지 했다.
아이를 안을 때 나를 품는 경험과 동시에 나를 키우셨던 그 시절 부모님이 되어 어린 나를 안아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우리 부모님도 오늘의 내 나이 시절에 아기였던 나를 안고 과거 시간여행을 하셨겠지. 과거로 돌아가 나를 마주하고, 그 시절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는 경험은 육아가 아니고서는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아이를 키우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 보다 더 오래, 자주 여행하는 곳은 어쩌면 미래다. 아이가 4살이 되면, 초등학생이 되면, 사춘기가 되면, 성인이 되면 어떤 모습일지. 매일 상상하고 기대한다. 어떤 어른이 되어 누구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지. 다정하고 스윗한 남편일지, 낳은 자식은 예쁜 딸일지 장난꾸러기 아들일지. 말캉한 모찌같은 아이의 하얀 볼살은 어느덧 햇살에 까맣게 그을리고, 세월에 따라 여드름과 주름도 거쳐가겠지.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속으로 울고 웃는다.
과거로의 여행과 현실의 삶 속에서 드는 생각의 끝은 항상 미래로 향한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나와 아내는 몇 살쯤인지.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기는 날이 오겠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는 날에 나는 노년의 나이가 되어 있겠지. 부부끼리의 막연했던 먼 미래는 아이의 나이와 학년을 생각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현실이 되고 그렇기에 조금은 슬퍼진다.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워 자생할 수 있는 독립체로 길러내는 것이 육아의 목적이고 방향이라지만 결국 이별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육아는 태생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큰 과정인 것 같다. 궁극적 이별을 향해 가는 부모와 자식 간에 어찌 웃음과 행복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 속에서 다양한 힘듦과 부침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인생처럼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법. 모든 삶은 죽음을 향해 가고, 모든 육아는 이별을 위해 가는 법이다.
하지만 육아의 본질적 정서가 슬픔이라고 그 과정이 전부 우울한 것은 아니다. 이별의 여정 속에도 기쁨과 환희가 있다. 작은 씨앗 같던 생명을 잉태해 핏덩이를 사람으로 길러내고 그 과정 속에서 자라는 기쁨과 커가는 희열을 느끼는 것. 과거의 나를 품고, 젊은 시절 부모가 되어 나를 마주하는 것. 아이와 가족의 내일을 끊임없이 그리며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독립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에서 누릴 수 있는 초월적 경험이자 즐거움이다.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라는 나침반을 든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