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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예찬(2)

일상의 발견

by 그레이

인생 퀘스트 난이도 극상의 육아에도 분명 장점은 있다. 아니 장점이 단점을 월등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아직 세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아빠 입장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내가 느낀 육아만의 특별한 장점은 세 가지다.

첫째,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초월적 경험

둘째, 일상의 당연했던 것들도 눈물 나게 소중해지는 감사의 경험

셋째, 내 인내의 한계가 확장되는 성숙의 경험




2. 일상의 발견


육아는 아무리 아름답게 생각해도 참 고된 일인 것 같다. 온전치 못한 인간이 더 온전치 못한 인간을 보살피고 기르는 일이라니. 생명을 길러내는 일이니 고귀하고 숭고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땐 끔찍한 형벌 같기도 하다. 100일 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때를 제외하면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찔림이 크다. 아이를 기르면서 지금껏 몰랐던 불완전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으면 법. 육아에도 소소한 기쁨이 있다. 그것은 내게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 육아라는 고달픔 속에서 찬란한 빛이 된다는 것.


퇴근 후 먹는 평범한 반찬의 저녁도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는 꿀맛이 따로 없다. 저녁 메뉴가 무엇이든 힘들게 재우고 난 뒤 먹는 밥은 그저 조용히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자극적인 배달음식이 아니더라도, 고기반찬이 아니더라도 아내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먹는 그저 보통의 저녁 식사도 육아의 고통 속에서 마법처럼 소중해진다.


월요일 아침 아이와 실랑이 끝에 등원을 마친 후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월요일임에도 홀가분하다. 월요병으로 잠을 설친 후 맞이한 이전의 출근길은 그저 암울하고 우울한 여정이었으나, 등원 후 출근길은 일시적 육퇴이자 설레는 사회로의 여행이기에 느낌이 다르다. 동료와의 잡담과 생각만 해도 싫은 일마저도 잠시나마 그리워진다. 어린이집 앞 좋아하는 카페에서 진한 롱블랙을 마시며 출근하는 길은 MSG 살짝 보태 설레기까지 하다.


전쟁 같은 육아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보는 드라마 한 편은 신혼 때 느긋하게 보던 느낌과는 다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웰메이드 드라마를 봐야 할까를 여유 있게 고민했다면, 지금은 인간극장, 생로병사 다큐도 꿀잼 콘텐츠다. 그저 무언갈 방해 없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이를 낳으면 너 인생은 없다고 생각해', '당분간 자유시간은 없어'라는 육아 선배님들의 말씀에 바짝 쫄아 그랬는지, 아이를 재우고 넷플릭스도 볼 수 있다니 가끔은 이 정도면 그래도 할만한 것 아닐까 하는 제정신이 아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육아가 고되기에 힘든 노동을 하고 난 뒤 마시는 생수가 꿀 맛이듯 육퇴 후의 잠깐의 휴식은 그렇기에 더욱 달달하다.


결혼 전엔 며칠이 멀다 하고 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다들 애 아빠들이라 가끔 애기 재운 후 주말 밤늦게 만나 새벽까지 수다 떨다 헤어진다.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 하다 가지만 그 의미 없을 것 같은 일상이 다가올 한 주의 육아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누군가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하다면. 당연했던 삶 속에서 눈물 나는 감사의 경험을 하고 싶다면.

단연코 육아를 추천한다. 단 중도 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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