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육아
20대 일기장처럼 쓰던 싸이홈피와 블로그 글은 30대가 되어 자연스레 줄었다. 대신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느끼고 깨달은 생각을 적어 발행하는 일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사랑과 삶 그리고 진실의 의미를 영화를 통해 발견하고 탐구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사랑의 한계와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과정을 가르쳐주었고, <캐롤>과 <비포 선셋>을 통해 찰나의 사랑의 찬란함과 그것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발견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며 피보다 진한 시간에 대해 깨닫고, <리바이어던>을 통해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무력함을, <디아워스>를 통해 허무해 보이는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부유하는 생각을 글로 적으며 결국 남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지. 왜 그 장면에서 마음이 움찔했는지. 주인공이 눈물 흘린 순간 왜 나도 울었는지. 영화가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며 또 다른 영화 같은 세계가 펼쳐졌다. 두 시간 스크린으로 경험하는 세상이 아닌 내가 직접 몸으로 살아내고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새벽에 겨우 재운 아기가 깨어 울 때는 재난 영화보다 공포스러웠고, 배시시 웃으며 품에 안길 때는 멜로 영화보다 달콤했으며, 아이 때문에 아내와 마음 상해가며 다툴 때는 하이퍼리얼리즘 독립영화 보다 현실적이었다.
영화가 질문을 던져주었다면, 육아는 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육아에 정답은 없었다. 영화의 질문 끝에 내가 있었다면 육아의 답을 찾는 길엔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육아의 과정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의 첫돌 새벽 브런치 서랍에 첫 글을 담았다. 세상에 온 지 일 년이 된 아이에게 언제 건넬지 모르는 편지를 썼다. 그동안 쌓인 생각과 감정을 글에 담고,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편지를 쓰다 보니 마치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육아를 하는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글로 남기자 다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두 돌이 지난 후 브런치북 연재 글을 시작했다. 제목은 <찬란한 육아>.
육아의 과정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꼭 그만큼 나를 확장할 때 사랑이 만져지고, 아이러니하게 위로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이었다.
M. 스캇펙은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했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 사랑의 뒷면이구나. 낭만적이던 사랑의 그 뒤편에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찢는 고통이 있구나. 그게 입체적인 사랑이구나.
오늘도 아이 때문에 소리 지르고, 아이 때문에 미소 지었다. 아직 30개월 아기라 갈 길이 멀지만 하루를 돌아보며 남기는 브런치 글로 육아를 버틸 수 있다. 육아의 고통도 글로 남길 때는 사랑이 되었고,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육아 에세이를 쓰며 꿈이 하나 생겼다. 아이가 커서 내 글을 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빠의 생각과 감정을 아이에게 공유하는 것. 어쩌면 내 브런치 에세이는 아이라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