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May 26. 2024

임신 중 또 이민

가면 다 돼. 가자.

지난 화에서 이야기했던 생애 첫 영어면접에서 떨어지고는 계속해서 어디든 데이터 애널리스트, 혹은 그 비슷한 업무라면 지원을 했다. 정말 원하는 업무는 날것의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었지만, 꼭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데이터와 관련한 업무를 하는 곳에서 시작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서 관심 있던 한 면접에서는 사용했던 통계 모델 중 하나에 대해 그 모델이 왜 스페셜했는지를 물어보았다. 뜨악하던 순간도 잠시, 마침 논문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설명이 가능했지 아니었으면 그대로 하얗게 질려 면접장을 나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시드니로 출장이 잡힌 남편 따라 함께 호주에 있었는데, 평일 대낮, 오페라 하우스 앞에 자리 잡고 앉아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합격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취직했다.


스물 중반. 한국에서 대학 졸업 전부터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었다. 20대 대부분의 시간 한결같이 원했던,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보통의 삶. 자꾸 떨어지고, 겉돌고, 그마저도 이민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생긴 류마티스로 보통의 삶이 자꾸만 멀어 보였는데. 첫 취직 소식이 [보통의 삶]이라는 걸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아이템 하나를 선뜻 내 손에 쥐어 준 기분이었다. 


이제야 겨우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취직의 기쁨도 잠시. 그토록 원했던 직장 생활은 사실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사는 인간관계가 집약적으로 모인 곳이었다. 어색했고, 서툴렀고, 부족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경력도 많고 지위도 높은 뉴질랜드 여자 동료 몇몇의 텃새에 마음고생도 했고, 대기업 클라이언트의 눈빛이나 제스처에 여느 때처럼 예민하게 주눅이 드는 걸 애써 감추는 시간도 보냈다.


괴롭히던 직원의 집 앞에 강아지 똥이라도 갖다 놓을까 하던 남편의 위로로 셀 수 없는 밤을 보낸 초반의 풍파가 지나가니 다행히 어느 정도 일도 사람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언가 자꾸 지루했다. 이렇게 계속 똑같은 일을 하며 여기서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


때마침 오클랜드 시티에서 떨어진 근교의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하는 풍경, 모모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마당, 해질녘 바라보는 노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삶도 감사했지만 동시에 교통이 쉽게 막히는 도로 사정을 고려해 매일 새벽같이 차를 갖고 나와 선착장까지 간 후 페리를 타고 출근해야 했다.


페리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오클랜드 시티의 풍경을 볼 때면 그래도 배 타고 하는 출근길이라며 즐겨보려고도 했지만, 출퇴근 비용도 비용이고, 일상이 되니 점점 피곤해졌다. 퇴근길 기나긴 교통정체. 오늘도 차가 밀리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며 일찍 출근한 만큼 일찍 퇴근하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로를 개선하겠다고 시작한 교통 공사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점점 느리기만 하고 발전 없는 것 같은 작은 도시의 모습이 꼭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해졌다.



그러다 "이렇게 계속 똑같은 일을 하며 여기서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의 '똑같은 일', '여기서 그냥 이렇게' 중에서 '여기'가 바뀌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남편이 시드니로 이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딱 그 시기에, 임신이 되었다. 사실 류마티스가 있으면, 신체 시스템이 면역체계를 공격하듯, 배아도 공격할 수 있어 임신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걱정하던 터였다. 그런데 아이가 들어선 것이다.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남편은 그동안 함께 대화해 온 것과 달리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정말 호주로 가는 것이 맞는지. 이제 아이도 태어날 거고, 여기는 마당 있는 집도 있고, 직업도 다 있는데. 가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말하고 반문해 보는 식으로 확신을 갖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지루하다고 느꼈던 나는 고민할 일이 1도 없었다. 오히려 직진모드였다.


가면 다 돼. 가자.


그동안 짧은 휴가마다 함께 시드니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때마다 느낀 건, 시티의 규모부터도 차이가 나지만, 교통부터 교육까지,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추어진 동시에 자연을 그대로 담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예전에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의 도시를 선택할 때 시드니가 더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피했던 적이 있었는데, 막상 방문했을 때는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다행히 다니던 회사에서도 시드니에 있는 오피스로 트랜스퍼해 주겠다고 했다.


당시 Marketing Automation Analyst라는 직책이 트랜스퍼하면서 매니저가 되었고, 회사는 본사에서 오토메이션 툴에 대한 업무를 빡쎄게(?) 해 보았으니 시드니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친구들의 업무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침 일하는 분야도 이전에 하던 업무보다 데이터와 더 밀접하여 원했던 업무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회사는 트랜스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보통 이직을 해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인상률 이상으로 연봉을 올려주기도 했다.


거주지 이전이라는 큰 일을, 다니던 회사의 서포트에 힘입어 첫째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사이 감행했다.


임신 10주 차, 남편에게는 첫 번째, 내게는 번째일 이민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