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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Jun 04. 2024

아이 둘 워킹맘의 이직, 면접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번 째 이직 스토리

둘째는 양수를 터뜨리고 30분 만에 나왔다. 이제 막 시작된 진통이지만 아직 탱탱볼에 앉아 잘 참던 내게 커피 좀 마시고 와도 되냐는 남편을 째려보길 잘했다. 하마터면 커피 사러 다가 출생의 순간을 놓칠 뻔했으니 말이다.


라마즈 호흡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 막 탱탱볼에서 침대로 옮겨와 통증을 호소하는 나를 미드와이프는 익숙한 일인 듯 아직 한참 멀은 것처럼 대했다. 하지만 두 번째 짐승 같은 포효가 목젖을 뚫고 나올 때, 아이의 머리가 보인다며 황급히 장갑을 꼈다.


아이는 로켓발사하듯 튀어나왔다.


10월 초에 둘째를 낳고는 12월 말부터 새벽 100일 걷기를 시작했다. 호르몬 탓이었는지 잠도 잘 못 자고 밤새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갑자기 마음먹은 일이었다.


산책을 나가는 시간은 남편 출근 준비 시간 전인 6시로 정했다. 나는 6시보다 한 시간 이른 5시에  일어나 유축을 하고, 아이 머리맡에 우유병을 놓았다. 당시 아이침대와 우리 침대를 울타리 없이 붙여놓아 바로 옆에서 아이가 울면 몸을 일으키지 않고도 챙겨줄 수 있도록 했다. 혹시 아이가 깨면 남편이 챙겨주는 걸로 하고 나는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둘째가 6개월 즈음되었을 때부터, 서서히 유축을 줄이며 이직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회사들을 신중히 지원했다. 무조건 어디든 뽑아주세요 하며 찾아갔다가 된통 당했던 지나날의 실수를, 아이가 둘이나 있을 때 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발란스를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류마티스와 갑상선 저하증이 겹쳐 그렇지 않아도 쉽게 피로해지는데, 시간과 멘털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라야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서를 넣기 시작한 지 2-3주 정도 되었을까. 드문드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 전화면접이라는 순서도 익숙하고, 내가 원하는 업무 환경도 잘 알고 있었다.


전화면접을 마친 한 회사에서는 그다음 주에 화상면접을 잡았다. 한창 코로나로 시끌벅적하던 2021년, 원래라면 대면으로 면접을 치러야 했겠지만, 락다운으로 모든 것은 화상으로 이루어졌다.


1시간 동안, 두 분의 면접관은 cv에 있던 이력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었다. 이전 회사에서 (비자발적으로) 영혼 탈탈 털려가며 쌓은 포트폴리오 덕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영혼 좀 털린 일들이 덜 억울해졌다. 


신기하게도 질문들이 로지컬 하다고 느껴졌다. 아마 지난날 면접마다 제대로 이불킥 각일 대답들을 해왔던 경험 덕분이리라. 면접관들이 떤 흐름으로 왜 궁금한지 이해가 되어 대화하듯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남편이 점심시간 때 둘째 돌보아주는 사이 1시간의 면접이 끝났다. 며칠 있다가 결과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HR팀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 1차 면접에서는 실무진이 면접관으로 들어오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는지 Director급이 먼저 들어왔었는데, 그분이 좋게 보신 것 같다고 했다. 당장 내일 2차 면접을 잡고 진행했으면 하셨다고.


사실 6개월 정도 긴 여정을 생각하고 원하는 조건으로 신중히 다음 일을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돌은 되었을 때 일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출산 후 6개월이 되면서 구직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원한 지 한 달 만에 오퍼를 받았는데, 마냥 기쁘기보다는 혹시 내가 놓치는 게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둘 있는데 혹시 회사를 잘못 선택할까 봐. 혹시나 이전 회사처럼 닦달하는 곳일까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이직을 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코 낀 듯 붙들려 일해야만 할까 봐, 두려움이 더 컸다.


은행을 포함하여 다른 두어 군데 Data Scientist 포지션에서 면접이 잡혀있기도 했고, 이렇게 단번에 한 곳만 면접을 보고 오퍼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다른 회사에서의 기회도 알아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지, 결코 앞으로 가야 할 면접에서 내가 붙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수백 번 고민 후 오퍼를 거절하고도 잘한 걸까 생각도 잠시. HR팀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에 들어오셨던 Director분이 개인적으로 전화를 좀 하려고 하는데 몇 시가 괜찮을지 묻는다.


하필 락다운이 살짝 풀렸던 와중 남편이 회사를 나갔던 날이었고, 하필 첫째가 아파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 아이를 둘 다 돌보고 있는 날이었다. 겨우 아이들을 거실에 장난감으로 시선을 돌려놓고, 방으로 문 닫고 와서 전화를 받았다.


어떤 점이 걸려서 오퍼를 거절했는지, 어떤 조건을 생각하는지 물어오셨다. 함께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창 통화를 하는데 아이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강아지까지 짖는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시던 Director는 아이들 목소리를 들었는지 혹시 아이들과의 시간을  방해한 것 아니냐고 하시며, 급히 마무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우리 회사가 앞으로 분명 당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고, 회사 자체의 문화도 매우 좋다는 문자를 남겨주셨다. 연봉 또한 내가 생각하는 쪽으로 맞춰주었다. HR팀에서 기존에 설정한 연봉의 범위보다 높아 따로 승인을 거치는 수고로움까지 거쳐서 말이다.




대기업에서, 다른 지원자들도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전화까지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민 생활동안 겪었던 모진 일들이 르르 지나갔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이전인 한국에서 자꾸 낙오자, 실패자가 되던 때부터. 자연스레 삶에 대한 기대치는 낮게 설정되었고, 뜻밖의 행운이나 친절 앞에서는 막연한 의심이 앞섰다.


당장 오후에 결정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며칠 후 잡혀있는 면접도 있고. 그 면접에서 붙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정말 치열하게 고민이 되었다.


어떡하지. 오퍼를 거절했지만 개인적으로 전화하여 협상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HR 팀에서는 이 Director가 회사 내에서도 겸손하기로 잘 알려진 분이라고 했다.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이 분은 아이들이 있다는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분 같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아파서 병가를 내야 했을 때, [아이들 귀찮지 않나요] 라던 이전 회사의 분위기와는 분명 달랐다. 이제 나는 혼자 직장생활만 하면 되는 20대가 아니었다. 가족이 있는 삶을 존중해주는 회사여야만 했다.


혹시. 아주 혹시. 온 우주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닐까. 혹시. 정말 이 우주가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주고 싶은 게 아닐까.


그동안의 개고생은 개고생이고, 이번에는 조금 색다르게 다가온 신호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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