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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Jun 09. 2024

두 번의 이민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처음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왔던 날짜에 10년을 더한 날, 아이 둘 워킹맘의 이직, 면접관에게서 전화가 왔다에서 이야기 한 회사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아직 같은 회사에서, 같은 Director와 함께 일하고 있으니, 온 우주가 보내는 것만 같던 신호를 믿어보길 정말 잘한 일이었다.


[회사]라는 공간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배워온 지난 3년이었다.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하는 공간. 사실 너와 내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는 공간. 그 공간에서 개개인이 서로를 존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일을 하고 싶기도, 하기 싫기도 했다.


회사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걸,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 이해하고 매일 내 몫의 일을 꽤 진심을 담아 해내고 있다. 어쩔 땐 작은 개미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그럼 뭐 어떤가.


사소하지만 평안한 일상. 무탈하게 모두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하루치 수다로 채워지는 식사 시간이  날의 행복량을 가득 채운다.




한국, 뉴질랜드, 호주를 떠돌다 이제야 마음 붙이고 살 도시를 찾았다. 그 사이 류마티스와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얻은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이민기록이 되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병들을 얻었을까.


처음 한국을 나와 지금까지, 삶은 끊임없이 선택과 받아들임의 연속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민이 아니었더라도, 원래 삶은 선택과 받아들임으로 지어지는 일인지 모르겠다.


머물기로 한 선택. 떠나기로 한 선택. 어떤 선택이라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 보다는 하루하루 무엇을 하며, 어떤 마음 상태로 살아가는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나선 길이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몰랐던 시간에 대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자가면역 질환은 원인을 잘 알 수 없다고 한다. 가족력은 없는데 그렇다면 스트레스였을지, 타지에서 먹던 음식에 부족한 영양소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먹어서였을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부터는 건강 관리 못지않게 멘털 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종 두려울 때가 있다. 그나마 괜찮았던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거나 시리면 또 어떤 방식으로 류마티스가 진행이 되어 손가락 변형이 올지. 일상의 어떤 일들이 또 불편해질지. 불편한 일들이 하나씩 늘어난다는 사실과 동시에 손 모양이 이상해진다는 걸 마주할 자신이 얼마큼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왜 나에게 이런 병들이]라는 원망이 컸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병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류마티스로 주저앉은 새끼손가락은 이메일을 쓰면서, 코딩을 짜면서 자주 오타를 친다. 이제는 손의 모양을 살짝 바꾸어 키보드를 치는데 그것도 나름 익숙해졌다. 좋아하던 피아노를 예전처럼 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할 수 있는 선에서 연습을 즐겨보기로도 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아침에 산책을 하며 몸을 풀어주고, 유제품은 제한하려고 노력한다. 부쩍 추워진 요즘엔 레몬과 생강을 슬라이스 해 꿀을 한껏 넣은 청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과자를 끊는 일이 어려운데, 덕분에 베이킹 실력은 늘고 가공식품을 살 때 뒤에 재료를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현대 의학으로 아직 완치는 불가하므로 이제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살펴주지 않으면 대놓고 심통을 부리는 한 성깔 하는 류마티스 씨와, 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조용히 도움을 요청하는 하시모토 씨.


아침마다 복용하는 호르몬제로 하루치의 에너지를 수혈받지만, 매일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담담하게. 불편해진 일상에 치우친 삶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몫으로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여기고, 스스로를 잘 돌보아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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