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May 05. 2024

Best Thesis Presentation

유캔두 야나두

학교 수업도 수업이지만 논문을 지도해 주실 교수님을 찾아야 했다. 주제 정하기도 어렵고 가능하기는 할지 시작하기 전부터 암담했다. 통계 지식이라고는 썸머스쿨때 수업받은 것뿐인데, 그런 나를 어떤 교수님이 받아주시기는 할까 걱정이 앞섰다.


학교 웹사이트에서 교수님들의 이전 논문 주제를 찾아보고 그 리스트를 가이드 삼아 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거절당할까 봐 겁도 살짝 먹은 채로 조마조마하며 상담을 했는데, 한국에서 공부한 경제학 전공과 접목하여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통계 모델로 예측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여기서 잠깐. 논문이라고 하니 박사 과정분들이 쓰시는 대단한 걸 생각할까 봐 미리 말하면, 사용하는 단어는 Thesis, 즉 논문이 맞지만, 박사 과정 분들이 쓰는 책 한 권 분량의 논문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40~50페이지 정도로 본인이 정한 주제, 즉, 그동안 공부해 온 것을 정리해 보는 페이퍼를 말한다.


이러나저러나 내용도, 글을 시작하는 것도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교수님과 정기적으로 회의하는 자리에서는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했다. 와서 듣고 또 듣고, 자료를 찾아가며 진행했고, 교수님이 다음시간까지 어떤 부분을 R(통계 프로그램)로 구현해 보라고 말씀하신 것도 익숙지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한 1년도 다 마쳐가고 논문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마침내 초고를 냈는데 첫 피드백에 헉소리가 났다. 여기저기 난도질 된 교수님의 빨간펜 자국이 가슴을 후벼 팠다.


대수술이 필요했던 초고


그 후 다음 리뷰 때까지 사흘 밤낮을 새어가며 고치는 작업에 돌입했다. 체력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밤에는 음악을 조력자 삼았다. 섬뜩할 수 있으나 7분 남짓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를 반복해서 새벽 3-4시까지 들으며 고쳤다. 호흡이 긴 곡도 있었을 텐데, 하필 이름도 '죽음의 무도'인 짧은 곡에 꽂혀 모든 오케스트라가 빵 터지고 현악기가 반음씩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부분을 서른 번도 넘게 들으며 피투성이인 초고를 고쳐나갔다.


정말 통과가 될 정도로 쓰인 건지, 초췌해 보인 내가 불쌍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드디어 교수님께서 yes를 하셨다. 이제 졸업하기 전까지의 관문은 하나만 남았다!



Thesis Presentation

바로 논문 발표. 전체 통계학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논문 내용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치고 쓰고 해 보았더래도 직접 설명하는 일은 또 달랐다. 직접 설명하려고 준비하다 보면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맞게 이해한 것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고, 내용을 어떻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아무리 통계학 학생이라도, 다른 학생들이 심도 있게 알아본 부분은 멀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친구들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준비하고 싶었다.


통계 전공이 아닌 남편을 붙들고 매일 밤 연습했다. 내 말 알아듣겠어? 를 연발하며.



과정을 함께 한 학과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모인 자리. 한 명 한 명 발표를 하는데, 순서가 다가올수록 손이 차가워지고 입이 말랐다. 다들 떨리겠지, 나만 떨리는 건 아닐 거야 라는 생각으로 마침내 발표를 마쳤다.


모든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에 Best thesis presentation을 호명하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영어 이름이 아니라 서툰 발음으로 호명되는 내 이름이 교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류마티스로 더 이상 몸을 많이 움직이며 일할 수 없어 적당한 직장을 찾고자 서른 근처에 다시 시작한 공부였다. 조금만 연필을 오래 잡고 있어도 손가락 통증을 느꼈고, 영어로 읽는 일이 느려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보았다. 영어로 말할 때엔 곧잘 주눅이 들었고, 노력에 비해 시험 점수가 낮아 속상하던 시간도 있었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이상하게 그 시간들을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감사했다. 나 같은 사람의 노력을 봐주어서. 이방인으로 겉도는 내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어서. 색안경 쓰지 않고 나를 바라보아 주는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를 것이라는 희망을 잠시 본 것 같아 상을 받았다는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Best thesis presentation 상은, 항상 불안이 목울대에서 찰랑이던 시기에 더없이 큰 선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