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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pr 29. 2024

바리스타를 하다가 영어로 수업을 들으면 생기는 일

공평한 어려움. 납득이 되는 어려움.

두 번째로 찾아 나선 교수님은 당시 통계학 학장님이었다. 이전에 찾았던 번역과 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과목이다. 심지어  Faculty of Science 소속. 예전에 바리스타로 카페에서 일할 때, 손님이 두고 간 데이터 분석 자료를 보고 순간 호기심이 일었던 적이 있다. 문과/이과를 떠나 이 공부를 재미있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통계학 교수님을 찾아갔다.


홀쭉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하얗던 머리 색과 같은 흰색 콧수염과 고티(goatie)가 있던 유쾌하신 분이 맞아주셨다. 한국에서의 대학교 학위 증명서와 성적표를 보며 상담을 했고, 교수님은 곧 있을 썸머스쿨에서 2학년/3학년이 듣는 과목을 각각 하나 정해주시며, 이 두 과목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 패스하면 honours degree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셨다. (호주/뉴질랜드의 학사는 보통 3년이고, honours degree는 학사 후 1년 더 공부하며 졸업 논문과 함께 받는 학위이다. 이후 1년 더 공부하면 석사(master)를 받는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일단 스스로 수업을 따라갈 수는 있을지 경험을 해보고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햇빛이 강렬하던 여름. 썸머스쿨이 시작되었다. 영어로 듣는 전공 수업이라는 부담도 컸지만, 또 다른 도전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파릇파릇한 친구들 틈에 앉아 듣는 수업은 에너지가 넘쳤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몸을 쉬이지 않고 일하다가, 다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위안이 컸다. 운이 좋게 이전 직업학교에서 연락을 받아 학생들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을 가르치며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었고, 현재 나의 주목적은 이렇게 앉아 공부하는 것이라는 현실이 감사했다.


지난 5년간 떠돌다가 공부하려니 어려운 건지, 아니면 나이 먹고 시작해서 어려웠던 건지, 머리를 쥐어짜는 날들이 허다했다. 생활 영어만 하다가 수업을 듣는 것 역시 달랐다. 통계 용어부터, 교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 과제를 제출하는 일까지,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는 꼴이라는 말이 자주 떠올랐다. 류마티스 증상이 심한 날은 연필을 오래 잡고 공부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날은 읽고 또 읽었다.


많은 학생이 듣던 2학년 수업과 달리, 통계 수학 위주로 진행되던 또 다른 수업에는 당시 회사를 다니던 뉴질랜드 분과 나, 둘 뿐이었다. 서로 낯가리느라 대화는 많이 못해보았는데, 어느 날부터 그분이 수업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두셨다고 한다. 공부보다는 일하는 편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 편할 수 있다고, 당시 공부양에 허덕이며 그 분을 이해했다.


그 분처럼 회사원이었다면 공부를 우선 순위에 두기 힘들었겠지만, 다시 몸을 많이 움직여야하는 카페 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숫자와 영어와 씨름하는 수 밖에.



본격적인 학위 시작, 그리고 조교

시험 결과 두 과목 모두 A를 받았다. 이제 1년만 공부하면, 나도 이곳에서 학사 졸업을 했다고 이력서에 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수업이 버거워도 통계 프로그램 R의 창시자가 있는 대학교인 만큼, 통계학을 이곳에서 공부한다는 것 또한 의미있었다.


어렸을 때 남몰래 그려보던 꿈. 더 넓은 곳에서 쏼라쏼라 하며 삶을 펼쳐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기대어, 내 앞의 통계책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으로 매일 저녁, 나머지 공부 하는 학생처럼 도서관에 남았다.


한국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숫자 쓸 일이 별로 없던 문과였다. 그나마 경제수학 때 잠시 터치했던 미분마저도 다 까먹어 한국에 수2 개념원리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여 다시 수학 기초를 잡기도 했다.


한 학기 수업 분량은 방대했고, 주말도 공휴일도 과제로 바빴다. 그렇게 신혼 생활은 대학 생활로 대체되었다. 이미 통계학 3년 학사를 하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고작 썸머스쿨 두 과목 듣고 들어왔으니, 그 갭을 메우려면 열심히 해야 했다. 내가 힘든 것이 이들에게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득이 되는 어려움이었다. 힘들어도 즐거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을 것이다.


1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1학기 때 받은 성적으로 겁도 없이 2학기 조교를 지원했다. 1년만 하는 대학 생활인데,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결국 운이 좋게 조교로 졸업할 때까지 1학년 학생들 과제를 채점하게 되었다.



그거 아는가? 다 큰 대학생들 과제 채점하는데, 교수님께서는 조교들을 모아놓고, 너무 날카롭게 코멘트 달지 말아라, 웬만하면 Keep it up! Well done! Good effort! 와 같이 따뜻하고 격려가 되는 말들을 써주라고 당부한다는 것을.


다 큰 대학생인데도 이런 정신 건강을 신경 써주어야 한다니. 놀라우면서도 부러웠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큰 가치를 두는 곳.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곳이라면 힘들어도 앞으로 계속 노력해 볼 이유가 충분했다.


채점하면서 학생들에게 써주는 Good job! Good effort! 가 익숙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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