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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Jun 21. 2024

마음의 문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마음에도 문이 있대요.

마음은 볼 수도 없는데 문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동전이는 마음이 참 맑고 예쁘다."

"할머니, 마음은 보이지도 않은데 어떻게 예쁜지 알아요? 전 얼굴이 예쁘면 좋겠어요."

"우리 동전이는 얼굴도 마음도 다 예쁜데 왜 모를까?"

"저도 눈 있거든요. 할머니는 제가 손녀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큰 거울 앞으로 데려갑니다.

찬찬히 예쁜 얼굴을 보며 웃어 보라고 하시네요.

할머니랑 이렇게 거울 보고 있는 게 그냥 좋아서 웃음이 실실 나와요.

거울 앞에 서서 웃는 내 얼굴을 보니 나쁘지 않네요. 정말 천천히 얼굴을 봅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 코. 그래요. 점처럼 보이지만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의 냄새까지 맡는 세 번째 코도 느껴봅니다. 남들에게는 없는 우리 집 여자들에게 있는 특별한 코입니다. (우리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으니 모든 여자들에게 전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핑크와 붉은빛이 도는  통통한 입. 작지만 귀여운 이마. 빵빵한 볼. 이 얼굴이 예쁜 걸까요?


"동전이는 친구나 가족, 사람들에게 배려를 참 잘하지? 혼자 지내는 할머니 생각해서 이렇게 자주 놀러 오고."

"할머니랑 함께 있으면 좋아서 오는 거예요. 할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 많이 사랑해 주시잖아요!"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동전이도 사랑이 많아. 우리 집 여자에게 대대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콧구멍이  세 개인 사람은 사랑이 더 많지. 특별한 선물이란다"

"콧구멍 세 개가 무슨 선물이에요. 그런 선물 싫어요."

"사람들은 감정이 감정인 줄 몰라. 분노, 슬픔. 기쁨. 즐거움.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이 자신인 줄 알고 감정에 휘둘려. 휘둘린다는 표현을 알겠니?"

"감정을 느낀다는 말 아닌가요? 그게 나쁜 건가요?"

"좋고 나쁘다기보다. 감정이라는 거지. 감정이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야."

"지금 책상 위에 색연필이 있지. 빨강. 노랑. 하늘색. 파란색... 감정도 색연필과 같은 거야. 색연필은 색연필이지 '나'를 대신할 수 없어. 음... 예를 들어서 집주인이 있어. 그런데 집주인이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 되어 집에 머물고 싶은데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거야."

'이건 진짜 내가 아니고 감정이구나.'하고 알면 감정 속에 있어도 나올 수 있게 돼. 화가 나면 '화'라는 감정 속에 갇혀서 오랜 시간 화를 내지 않아도 되고. 슬픔이 찾아오면 울다가 슬픔이라는 것을 알고 울만큼 울면 그치면 되는데 그걸 모르면 힘들단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세 번째 콧구멍이 그래서 선물이라는 거예요? 감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끝날 때를 색으로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 동전이는 정말 똑똑하구나!"

"사춘기가 되면 감정의 바다에 아주 오래 머물게 되는데 너무 오래  감정에 갇혀 있으면 세 번째 콧구멍이 희미하게 있다가 결국 사라지게 돼. 할머니는 그랬단다."

"마음의 문이 닫히면 없어진다고 했는데. 감정의 바다에 오래 머물러서 마음의 문이 닫혔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저는 감정의 바다에 오래 있을래요! 감정의 바다는 어떻게 생겨요? 그냥 생기나요? 사춘기는 중학생을 말하는 거지요?"

"중학생이 되기 전에도 올 수 있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안 오는 경우도 있지. 사람마다 다르단다. 성장하면서 몸속에 호르몬의 변화, 생각하는 것, 환경. 여러 가지가 엉키면서 나타나지."

"마음이라는 것이 참 복잡한 거네요. 어렵고."

"그래. 참 어렵지? 차차 알게 된단다."

"중요한 건. 마음의 문을 열고 닫고는 내가 선택하는 거란다. 감정의 바다에서 나오는 것도 머무는 것도."

"모르겠지만, 저는 마음의 문을 닫고 세 번째 콧구멍이 사라지길 원해요. 친구들과 뭔가 다르다는 건 힘들어요. 전 다르고 싶지 않아요. 평범하고 싶어요."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할머니가 할머니가 되면서 알았으니까. 세 번째 콧구멍이 선물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아는 게 참 많아요. 지혜로우시지요.

저도 할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마음의 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문이 있다는 건 열고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손잡이도 있겠지요.

문을 열면 무엇이 있을까요? 내 마음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일단 문부터 찾아야겠어요. 열 수 있는지 없는지.

예쁘고 귀여운 게 가득 있으면 좋겠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아라비안 나이트의 동굴처럼 보석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재미있게 놀 친구도 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말씀처럼 차차 알게 되겠지요. 기다림이 힘들지만 기다려 볼래요.


마음의 문.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니?

by 빛날 ( 거울을 보듯 닮은 우리. 할머니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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