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과 버섯

by 글곧

“할아버지!”


주말 오후, 식탁 한쪽에서 색연필을 굴리던 손녀가 불쑥 고개를 든다. 눈이 반짝인다.


“영어는 굴 같고요,

수학은 버섯 같아요.”


나는 잠시 웃음을 참는다.

“왜?”


“제가 싫어하는 음식이 새우, 조개, 굴, 버섯이거든요.”


그 아이는 아주 진지하다. 싫어하는 음식의 목록과 싫어하는 과목의 목록이 정확히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뿌듯한 표정이다. 그리고는 다시 묻는다.


“할아버지는 영어와 수학이 무슨 음식 같아요?”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두려움보다 비유가 먼저 있다. 영어는 발음이 껍질처럼 딱딱해 보였을 것이다. 영어발음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굴처럼 낯설고 미끈했을지 모른다. 수학은 숫자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모습이 먹기 싫은 버섯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영어는 말이야, 망고 같단다. 처음엔 껍질이 두껍고 씨도 커서 먹기 어려워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달콤해. 외국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넓어지거든.”


“수학은?”


“수학은 밤고구마 같아. 겉은 투박하고 맛이 없어 보이지만, 천천히 씹으면 속이 달지. 문제 하나를 풀어내면 마음이 따뜻해져.”


아이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굴이 갑자기 망고로 변할 리 없다는 듯하다.


나는 문득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나 역시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고 한숨을 쉬던 때가 있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다 지쳐 연필을 굴리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연구를 하고, 외국 학자들과 토론을 하며, 복잡한 문제를 논리로 풀어내야 하는 자리에 서 보니 그 맛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영어로 발표를 하며 생각했다. 아, 이게 망고였구나. 또 어느 날은 복잡한 계산 끝에 항만 설계의 해법을 찾으며 느꼈다. 이게 고구마의 단맛이었구나.


아이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음식도 그렇다. 어릴 때는 버섯 향이 부담스럽지만, 어느 날 된장찌개 속 버섯을 먼저 집어 먹는 날이 온다. 굴의 짭조름한 바다 향을 스스로 찾는 날도 온다.


손녀가 다시 웃는다. 볼에 사과빛이 도는 게 이 아이에게서는 과일 향이 난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공부란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일이 아니라, 그 음식의 맛을 발견하도록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할아버지,”

아이가 덧붙인다.

“전 아직 굴이 싫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