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이 뜻있는 선비들과 함께 죽란 시사(竹欄詩社)라는 풍류계(風流契)를 맺었다 하는데, 이 모임에서는 특별히 다음과 같이 규약을 정했다고 한다.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 필 때와 한여름 참외가 무르익을 때 모이고, 가을 서련지(西蓮地)에 연꽃이 만개하면 꽃 구경하려 모이고, 국화꽃이 피었을 때 첫눈이 내리면 이례적으로 모이고, 한 해가 저물 무렵에 매화가 피면 다시 한번 모인다.”
4계절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우리의 기후에 맞게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공감이 가며,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4계의 뚜렷함이 점차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가을은 상대적으로 짧아지는 것 같다.
이미 입추가 지난 지 오래인데, 아직도 머리가 타들어가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중복이 지난 후 20일 후에 말복이 오는 월복(越伏)이 되어 그런가 삼복더위가 말복 후에도 10일 이상 이상 지속되는 이상 고온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올 휴가를 제주도로 갔지만, 강렬한 햇빛과 더위때문에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질 않아 차를 탄 채로 곳곳에 있는 해안도로만을 찾아 바다 경관을 즐겼다. 한림에서 대정, 안덕, 서귀포까지 제주 남서부 해안가를 훌텄다. 더위에 사람이 거의 없어 이 지역 차가 갈 수 있는 올레길은 모두 차로 다닌 셈이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 큰 돌고래 여러 마리를 보기도 했다.
자연이 하는 일에 간섭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어서 찬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하루아침에 바람이 변하는 극적인 기후변화를 어서 보고 싶다. 그래서 세미현의 연꽃도 보고, 국화전시회의 여러 가지 국화꽃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