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캐나다!

데드풀

by WineofMuse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당시 같이 일하던 선배의 꼬임과 미래에 대한 비관이 더해져 해외 선진국에 나가 접시라도 닦아보며

한방 인생역전이 무언지 보여주고 싶었다.

야간근무가 오전 9시에 마치면 간단히 씻고

홍대로 향했다.

무려 포토샵 4를 배워 미적 감각을 쌓고

해외에서 2년 과정 컬리지를 시각 디자인학과를 패스하고 동시에 유창한 영어실력도 탑재해 오리라는

택도 없이 허황된 꿈을 꾸었다.

당시에는 이런 계획이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고

훗날 위인전을 쓴다면 꽤나 극적인 스토리가 될 거라며 자신만만했다.


홍대 앞의 그래픽 학원에서 달력 만들기라는 과제를 줬을 때 당시의 인기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유닛들을

날짜마다 하나씩 박아 넣어 제출했다.

학원강사님의 안경 넘어 비치는

거대한 당혹감은 아직도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게 한다.

인터넷은 있었지만 정보는 많지 않았던 pc방에서

검색보다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종로 몇 가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이름 모를 어느 여행사를 찾았다.

나름 경계를 풀지 않고 당시의 포부를 띄엄띄엄 말씀드렸다.

대략 나의 경제 사정과 얼토당토않은 계획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셨는지

가장 싼 캐나다행 티켓을 추천해주셨다. 왕복 90만 원가량의 지출이 있었고

전체 예산의 1/4을 소진해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한다.


지난 10개월의 시간이 스쳤다.

주 6일 하루도 쉼 없이 주야 2교대를 하며 월급 60에서

여관 달방의 세, 식비, 학원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제하고 남는 모든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그중 100만 원은 회사 내 놈팡이 같은 선배를 빌려주는 바람에 몇 달째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라를 뜨기 전에 받아야 할 텐데...

정말 출국 하기 3주 전인가 겨우겨우 사정하여 받았으니 당시의 조급함은 자꾸만 어깨를 좁게 했다.

호주도 물망에 잠시 올랐었다.

영어권이고 한인들이 있어 어느 정도 일자리가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망상이었지만 말이다.

돈이 없어 캐나다 밴쿠버 왕복행을 끊었다.

그게 맞았다.

당장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버케블러리 20000 등의 숙어집을 사서 첫 3장을 열심히 읽어보았을 뿐이다.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3주

공부를 핑계로 회사도 관두고 자연스럽게 기숙사를 나와야 하니 적당한 숙소를 찾아야 했다.

버릴 짐은 다 버린 채 노량진 고시원을 향했다.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고시원을 13만 원인가 주고 창도 없는 지하방을 택했다.

177cm인 내가 누우면 문과 반대의 벽이 정확히 발바닥에 딱 맞았다.

문틈 사이로 흘러오는 에어컨 냉기를 막을 수 없었다.

창이 없으니 그나마라도 숨구멍은 필요했다.

이리 누우면 발이 시렸고 저리 누우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영어공부 따위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고시생을 위한 식당의 식권을 20장 구매했다.

적당한 찬거리와 김치 맹맹한 국이 전부였다.

그래도 계란물을 묻혀 구워낸 분홍 소시지는 매번 기억에 남는다.

편리한 시간에 가서 양껏 먹으리라 생각했지만 예민한 성격과 당시에 처해진 환경 탓에 늘 깨작대기 일쑤였고

늘 배가 고팠다.

3일쯤 지나니 낮과 밤이 바뀌었다.

노량진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새벽 일찍 3시부터 학원은 내달렸고 pc방과 만화방은 늘 호황이었고 치킨게임 중이었다.

3000원이면 큰 컵라면 1개에 10시간 무료였다.

놈팡이가 되기 딱 좋은 천혜의 환경이다.

대항해시대를 밤새워하며 세계를 향한 나의 포부를 그 밤만이라도 크게 부풀렸다.

하루는 만화방 하루는 pc방 한강도 한번 걸어가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도 철저하고 알차게도 놀았다.

따가운 9월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비틀비틀 고시원으로 들어가 다시금 에어컨 바람과 싸우며 길고 긴 낮잠을 청했다.

체력과 마음은 점자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캐나다로 떠난다는 뿌듯함에 모든 것이 괜찮다고만 생각했다. 그래 캐나다만 가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드디어 출국이다.

13시간을 날아 캐나다에 떨어졌지만 바로 레드라인으로 직행했다.

짧은 영어도 안 되는 동양인 아이가 전재산 250만 원을 들고 3개월을 체류하겠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이다.

같이 동행했던 선배의 도움과 현지 공항직원의 도움과 손짓 발짓으로 겨우 입국이 허가되었다.

원래는 한국행 화물기에 몸을 실어야 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한인 부부가 운영하는 홈스테이를 구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와 동생이 있던 집이었다.

유치원생 정도 되는 아이와도 영어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낮시간에는 아이가 보는 어린이 만화 채널을 보며 영어실력을 단련했다.

영어가 늘었다면 그게 아마 기적이었을 것이다.


친절한 홈스테이에서는 첫날부터 새로운 손님이 왔다고 이상한 회를 한 상 차려 환영해주었다.

물컹한 식감이었지만 넓고 큰 나라답게 아주 저렴하면서 양이 많았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첫인상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해주진 않았다.

처음에는 혼자 쓰는 침대방이었다가 한주가 지나니 게스트가 하나 더 늘었다.

다음 주에는 거실 소파 뒤 공간을 추천해주셨다.

내야 할 비용의 변화는 없었다.

자식 같다며 이뻐해 주던 부부는 정말 나를 자식처럼 함부로 대했던 걸까.

제대로 항변해야 했지만

"이해는 하지만 납득은 안된다"는

다소 겉멋 든 이상한 울부짖음으로 그날의 비루한 저녁식사를 엉망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밴쿠버에서의 3주간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테니스를 쳤다.

자동차 크기만 한 둘레의 나무들이 울창한 공원 곳곳에는 par 3홀이 아무렇게나 있었고

골프채 3개를 클립에 메고 버스를 타고 툭탁거리며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드넓은 우레탄 테니스장이 10면 정도 텅텅 비어있었다.

이게 국력의 차이인가 하는 엇나간 망상에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밴쿠버 동물원에서 돌고래가 높이 점프하는 걸 구경하고 용맹한 사자도 봤다.

다운타운 관광도 하고 유명한 버거집인가 피자집에도 들렀던 거 같다.

버스와 수상버스, 도시철도의 편리함에 감탄을 했다.

그 당시에도 티켓 하나도 모든 교통수단을 환승할 수 있었다.

역시 선진국은 역무원 없이도 양심적으로 티켓을 사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구나.

대신 걸리면 50배의 벌금을 물리고 시민권자는 2번 이상 걸리면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중범죄였다.

대신 지하철에 내리면 내 교통권을 원하는 흑인 친구들이 많았다.

100원~200원가량의 금액이 남아있는 티켓을 팔아 마리화나를 구하려는 친구들이었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들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끝까지 날 쫓아왔다.

무서움 티켓을 강탈당한 듯하지만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땡큐 맨


한인 교차로도 하루에 3번에서 4번 전화를 하다 보니 슬슬 감이 왔다.

시민권이 없으면 철저하게 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매번 돌아왔다.

아마 그때 전화를 받은 교민들은 생각했을 거다.


"답 없는 머저리가 또 한국에서 하나 넘어왔구나"


3주의 시간이 흐르고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똑 떨어져 버렸다.

주 단위로 내는 집세와 관광객처럼 이곳저곳 다녔다고는 하지만

캐나다의 물가는

당장 일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이라도 한 푼 얻어낼 연락 닿는 가족이라고는 3살 때 이혼하신 엄마가 유일했으나

딱히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캐나다로 원대한 꿈을 품고 온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로써 두세 번 전화를 걸었지만 차마 돈을 좀 부쳐 주십사 하는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라는 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으리라.

마지막 통화에서는

"나는 지금 세미나 하러 일본 가고 싶은데 니는 지금 캐나다 가 있다고 자랑하려고 전화하나!!"

하는 대구 사투리로 호된 호통을 당하고야 말았다.

마음이 서걱서걱했다.


선택을 해야 했다.

교차로를 더 뒤져가며 구직을 해봐야 하나

비행기 티켓을 당겨 내발로 귀국해야 하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한국으로 간다 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주인아저씨는 퍽이나 감사하게도 공항까지 나를 태워주셨다.


아이 워너 딜레이 마이 에어 플랜 티켓... 나우

이런 바보 같은 영어를 중얼거렸다.

공항직원은 공항 내의 한국 직원을 연결해주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3개월 후의 티켓을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티켓으로 바꿀 수 있었다.

흑역사 중에서도 아주 거대한 흑역사의 한 페이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패배감으로 가득했다.

노력도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남의 집 넘어 링에 올라간 바보 천치 같았다.

누구도 나를 캐나다로 초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국제선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어쨌든 어디라도 가야 하니 영등포 역으로 왔다.


수첩을 열어 친구 영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이란다.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그래도 수중에 17만 원가량이 있었다.

캐나다라면 하루나 이틀 정도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을 거다.

그럼 불법 체류자가 되어 대한항공 화물기를 타고 귀국했을까?

대사관에 전화해서? 등의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푸드 코트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앉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억지로라도 다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먹었다.

결국 반도 못 먹고 남겼다.

뱃고리가 작아질 대로 작아져있었다.

그간의 스트레스와 고시원에서부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비참함에 부산 가는 내내 틈나는 대로 바깥 풍경을 보며 질질 눈물을 흘렸던 거 같다.

그래 한국이 최고구나.


마블 코믹스 영화 데드풀을 좋아한다.

그 신랄하고 저렴한 유머 코드가 내 수준에는 딱이다.

데드풀이 쇳덩어리 거인을 주먹으로 치다가 부러진 손목을 보며 외친다.

캐나다!

캐나다 출신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종종 써먹는 애드리브이다.

데드풀이 밴쿠버에서 대부분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캐나다!라는 대사에

2018년 그 극장이 떠나가도록

혼자 웃었다.


와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 한번 웃으려고 그 삽질을 했니?

웃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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