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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토랜스에 돌아오다

Day 1, Torrance 20190725

by 박종호

11시간의 비행 시간 중에 타자 마자 골아 떨어진 한 시간 남짓을 빼고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엘에이 공항(LAX)에 도착했다. 수빈이는 앞 좌석에 붙은 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수연이는 만화영화 "콩순이"를 여러 번 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한국 영화 "뺑반"과 "호텔 뭄바이(Hotel Mumbai)"를 보고 남은 시간에는 전자책 리더로 조던 B. 피어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꽤나 많이 읽었다. (전자책 리더로 얼마나 자주 책을 읽겠냐는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종이책보다 책을 자주 읽게 된다.)


공항에서 셔틀을 타고 렌트카 헤르츠(Hertz)로 이동하여 튼튼한 미국 SUV(GMC TERRAIN)를 하나 빌렸다. 2010년부터 2년 간 지사 설립, 운영차 머물렀던 토렌스에 7년만에 돌아왔다. 이곳을 떠날 때 2살이었던 수빈이는 곧 10살이 되고, 당시 와이프의 뱃속에 있던 수연이는 일곱살이 되었다.


토렌스의 일본계 호텔인 미야코(MIYAKO)호텔에 전망 좋은 방을 잡았다. 바로 옆에는 일본 슈퍼 마켓 미츠와(Mistuwa)가 있다. 주말이면 장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오던 곳이다. 정오에 도착하여 체크인 시간 전까지 마켓에서 점심을 먹었다. 올 연말이면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몰(Fashion center of Plaza Del Amo)로 이전한다는 미츠와마켓은 우리가 살던 7년 전과 하나 바뀐 것이 없다. 심지어 일본식 파스타와 케잌을 팔던 가게 한 곳을 제외하면 푸드코트 안의 메뉴도 테이블과 메뉴판, 디스플레이도 7년전과 똑같다. 우리는 마치 7년전으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기분으로 그 당시에 자주 가던 일식 라멘집 산토카에서 자주 먹던 세트메뉴를 시켰다. 수빈이는 옆 스시 코너에서 가파마키(오이만 들어간 김말이)를 골랐다. 우리는 7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한 김에 이전에 살던 집과 그 앞에 있는 윌슨 파크(Wilson Park)에 가보기로 했다.


타운 하우스 단지인 윈드미어(Windmere) 단지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첫번째 건물 1층이 우리가 살던 집이다. 내가 밤 늦게 집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누군가 술만 마시면 질주를 하는지 몇번인가 부러져 있던 출입구의 나무로 된 게이트바를 부러뜨려 놓았었는 데 이제는 튼튼해 보이는 철재재질로 바뀌었다. 나무가 울창한 이 곳에는 단지 중앙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가 있다. 이 곳에는 내가 비치체어에 늘어져 살을 까맣게 태우던 자꾸지(온탕)가 딸린 수영장과 일본계 중국인 우상(吳さん)을 처음 만났던 헬스장이 있다. 7년 전 이 곳 홀에서 열린 주민들의 할로윈 파티에 두 살 수빈이는 팬더 옷을 입고 참가했었다. 아쉽게도 단지 안에는 거주민 이외에는 들어 가지 못하는 규정 탓에 우리는 단지 입구에 차를 세우고 게이트 너머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예전에 살던 동네를 보아야했다.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우리는 빨간색 접이식 유모차(umbrella)에 수빈이를 태우고 자주 갔던 윌슨 파크(Wilson Park)에 차를 세웠다. 내가 출근하거나 출장을 갔을 때에도 아이와 수빈이가 매일 가던 곳이다.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넓직한 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이 곳에는 매주 토요일 근처 농가와 식당 주민들이 여는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이 열린다. 그리고 주차장을 넘어 체육 센터가 있고 그 옆에 야구장이 보이고 그 뒤로 주말이면 돗자리를 들고 피크닉족들이 찾아 오는 너른 잔디에서 광활한 공원이 펼쳐진다.

IMG_1158.JPG 윌슨 파크

공원에서 그네를 지날 때면 언제나 태워달라 조르던 수빈이는 아홉살이 된 지금도 그네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잔디에 자릴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일본계, 중국계 그리고 히스페닉계를 포함하여 켈리포니아 답게 다양한 인종이 눈에 띤다. 방학을 맞아 동네 주민센터에서 연 여름프로그램에 참가한 듯 같은 색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과 선생님인 듯한 사람들도 보인다. 나무로 만든 놀이터인 트리하우스(tree house) 옆에 새로운 놀이 기구가 몇 개 들어 선 것을 빼면 윌슨 파크 역시 7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성가시게 날아다니며 떨어진 음식물을 노리는 까마귀들도 여전하고 사람을 보고 도망가기는 커녕 무엇 먹을 것을 줄까 하여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긴 꼬리의 다람쥐들도 여전하다. 지금 내 앞에 서성이는 다람쥐가 7년 전에 산책하던 길에 와이프에게서 도토리를 받아간 다람쥐일지도 모른다. 다람쥐는 두 발로 서서 두 손으로 도토리를 받았다. 일단 먹을 것이 손에 들어오자 다시 다시 돌려 달랄까봐 얼른 입안에 불쑥이 넣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는 긴 비행에 피곤했는 지 우리는 세시간을 넘게 낮잠을 잤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마 다음날 아침까지도 잤을 거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 팔로스버디스(Palos Verdes)로 올라 갔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팔로스버디스 언덕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해가 바다에 반쯤 담구고 있었다. 해가 수평선으로 다 들어가고 나서가 진짜 진풍경의 시작이다. 잠시 후 바다 끝에서 반대 편 지평선까지 하늘이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7년 전 매일 이 자리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매일 매일 이 모습을 보러 이 자리에 올라왔고 매일 매일 사그러 들지 않는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C360_2010-12-11 16-56-27.jpg 팔로스버디스의 일몰

해가 지고도 한참을 붉게 달궈졌던 하늘을 마지막까지 보고 돌아서느라 여덟시가 훌쩍 넘었다. 늦어진 저녁 식사를 하려 구글맵을 열어 주위의 식당을 찾으니 그 시간에 열려 있는 식당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는 어디든 일찍 문을 닫는다. 팔로스버디스 언덕 중턱 즈음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베트남 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추울만큼 세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근처 슈퍼마켓에서 호텔서 필요할 것들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7년 만이다. 놀랍도록 변한 것이 없다. 2년이나 이런 시골에서 무엇하고 지냈었나란 생각이 든다. 첫 일년간은 일만 하고 살았고 두번째 해부터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고 지냈다. 하지만 일상을 이야기하자면 무척 심심해서, 시간이 나면 어디든 차를 타고 나갔다. 생각해 보면 후쿠오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후쿠오카 보다 훨씬 땅이 너른 이곳이 오히려 오히려 생활 반경이 좁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지만 항상 정신 없이 바쁜 서울의 삶을 exciting hell, 이 곳 토랜스와 후쿠오카는 boring heaven이라 말하지만 그 참을 수 없는 boring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heaven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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