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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쏠뱅 & 피스모비치

4th day Solvang & Pismo Beach 20190728

by 박종호

4th day Solvang & Pismo Beach 20190728


어제의 나의 작은(?) 착오가 쑥스러워 비대면으로 패스트 체크아웃(Fast check-out)을 하고 다음 일정인 쏠뱅(Solvang)으로 향했다. 아이는 토랜스를 벗어날 즈음에 갑자기 생각난 듯, "아! 팁을 안 놓고 왔네"라고 말했다. 다행히 오늘은 정말로 체크아웃을 하는 날이다. 어제처럼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팁도 올려있지 않은 어질어진 방을 청소하고 있는 메이드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지갑에서 몇 불을 꺼내어 건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sorry.


솔뱅은 토랜스에서 차로 세시간 정도 떨어진 덴마크 마을이다. 정원과 테라스에 꽃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집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동네이다. 이 곳에 오면 동화 한 장면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데, 우리가 어릴 때 보고 자란 동화의 다수가 안데르센(Andersen, 덴마크 발음 아너슨)의 작품이고 그 안데르센이 덴마크 사람이다 보니 우리가 덴마크풍의 집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동화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북쪽으로 405번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해안을 따라 난 1번과 겹쳐지는 101번 국도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 산타바바라(Santa Barbara)에 미치기 전에 써머랜드(Summer Land)라는 도시에서 154번 국도로 빠지면 쏠뱅에 도착한다. 켈리포니아의 길들은 피자를 자르듯 똑바로 그리고 큼직큼직하게 땅을 가르며 남북 혹은 동서로 뻗어있다. 혹자는 길이 참 쉬워서 어디든 찾아가기도 쉽고 길을 잃을 일이 없다고 했다. 이런 쉬운 길을 잘 못 들어 몇 번인가를 헤맨 적이 있는 나는 나의 감을 믿기 보다 구글맵의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 운전대를 맡긴다.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옛 사람들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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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가 높은 서울이나 후쿠오카의 날씨를 표현할 때 쓰는 "찌는 듯한 날씨(蒸し暑い,무시아츠이)"라는 말은 켈리포니아 여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의 여름 날씨에는 "타는 듯한 더위"가 적당하다. 태양이 사막을 달구듯이 햇살이 강렬하고 뜨겁지만 반면에 습도가 아주 낮기 때문이다. (사막은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습도가 낮습니다. 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비행사처럼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다면 더운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마실 물이 없는 것이 큰 일이지요.)


켈리포니아에서는 아주 더운 날도 나무 그늘 밑에 들어 서면 선선한 느낌이 든다. 물론 근처에 아무 상가나 들어가면 풍요로운 나라 미국답게 냉장고처럼 빵빵하게 틀어 놓은 에어컨을 만날 수 있지만. 켈리포니아에 살아 본 사람들은 이 강렬한 태양이 피부를 지지는 느낌과 바람이 불며 그 열을 식혀주는 시원함을 잊을 수 없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간 해서는 만나기 힘든 말 그대로 하늘이 준 날씨이다.


쏠뱅에 들어서자 커다란 풍차와 덴마크풍 집들이 늘어선 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요일이어서인지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도에서 온 사람들과 중국인, 한국인도 보였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우선 식당을 찾았다. 구글맵에서 평점이 높은 쏠뱅 레스토랑(Solvang Restaurant). 소세지 플레이트와 원페이스 센드위치(one face sandwich plate), 아이들 메뉴(kid's menu) 중에 휘쉬앤칩스(fish and chips)를 주문했다. 처음 가는 가게에서는 웨이터에게 가장 인기있는 메뉴를 물으면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타는 듯한" 날씨 탓에 우리는 오래 걸어다니지 못하도 거리의 가게들을 자주 들락거리며 에어컨을 쐬었다. 거리의 가게에는 아름답고 깨지기 쉬운 물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수빈이와 수연이는 어린이 전용 가게에 들어서 망설이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에 꼭 드는 원피스 두벌씩 골랐다. 빨간 색과 파란 색 원피스를 두벌씩 성큼 집어선 것이 고마웠는 지 가게 아주머니는 수연이가 들고 놓지를 못하는 회색 당나귀와 주황색 말 장난감을 선물로 주었다. 럭키 앤드 땡큐.


오래된 서점의 이층에는 안데르센 박물관이 있었다. 덴마크에 있어야할 안데르센 박물관이 미국에 있어서 인지 아주 자고 아담하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 작은 박물관 안에는 안데르센의 흉상과 그의 사진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고와 편지들의 복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어릴적 아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피노키오의 아빠도 구두 수선공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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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유럽여행객들에게 3대 거짓말이란 말이 유행했다. 유명세에 비하여 별로 볼 것이 없어 무척 실망스러운 곳 세 군데를 말하는 데 벨기에 부뤼셀에 있는 오줌싸는 아이, 라인강의 유람선을 타고 지나는 로랠라이 언덕 그리고 안데르센의 고향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상을 일컫는다. 그 인어공주상이 이 서점 앞에도 서 있었다. 길가에 놓여진 작은 인어공주 동상을 보며 "설마 지도에도 나올까?"하고 구글 지도를 확인했다. 이곳에 있는 인어공주는 지도에 표시될 만큼은 아닌가 보다.


그저 작은 시골 마을로 남았을 법한 작은 도시 쏠뱅에 뜬금없이 덴마크 마을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일본의 조그만 지방 도시들이 각자의 특산품을 만들고 지방의 특색을 하나라도 찾아내어 관광화시키는 것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의미가 있지만 경재 효과도 대단하다. 밋밋하고 썰렁한 한국의 시골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지방 곳곳에도 지역 특산품과 나름의 지역색이 넘처나지만 관광지의 특산품점들을 들어가 보면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 비슷 비슷한 제품들은 팔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획이 없이 판매에만 급급한 탓이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물이다. 우리는 해가 아직 쨍쨍인 시각에 피스모베이(Pismo Bay)로 출발했다.


피스모베이에 들어서 방을 잡아 놓은 센드케슬인(Sandcastle Inn)까지 가는 동안 주위에 허름한 호텔들이 많아 우리 호텔도 너무 후진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는 데 다행히 평점과 가격에 어울리는 편안한 호텔이었다. 무엇보다 호텔 바로 앞부터 백사장이 이어져 바로 해변에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프론트에서 비치체어(beach chair)와 비치 타월을 빌려 해변으로 나섰다. 이곳은 왠지 해가 남쪽 팔로스버디스보다 더 늦게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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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석양이 보일 즈음에는 겨울같이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석양을 타임랩스(time wraps)로 찍고 있던 나는 화장실도 못가고 석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추위에 벌벌 떨었다. 벌건 태양이 피어의 보드웤(boardwalk) 너머로 지고서야 우리는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여덟시가 넘었지만 이제부터 밥을 먹으러 가야했다. 춥고 배가 고팠다.


우리는 운좋게 호텔에서 얼마 안 떨어진 피어(pier) 주위를 걷다 아주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포크립스(pork rips), 스테이크, 새우 그리고 크램차우더를 주문했다. 모두 아주 맛있다. 야외 테이블 밖에 없는 식당이 었지만 다행히 가스 난로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 여름 켈리포니아에서 난로라니. 낮 시간의 뜨거운 날씨를 생각하면 큰 기온차에 더더욱 놀라게 된다.


호텔에 돌아와 호텔 테라스의 가스 불판(gas fire place) 주위에 나란히 앉아 머쉬멜로우를 굽다 방으로 돌아왔다. 머쉬멜로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은 근래 수빈이의 로망이었다. 설탕 덩어리 머쉬멜로우를 왜 그리들 열광하는 지, 왜 번거로이 그것을 굽는 것을 좋아하는 지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혹시 미국인들이 너무너무 심심하여 미국인들 누가 더 잘 굽는지를 경쟁하는 일종의 게임도구로 개발한 것은 아니었을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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