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 day Carmel by the sea 20190729
5th day Carmel by the sea 20190729
아침,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Pismo bay의 Pier를 걸었다. 피어 위에서 보니 십수명의 서퍼들이 보드에 앉아 마주오는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하와이에 여행을 다녀오시며 하와이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두장 가져다 주셨다. 한 장은 키가 큰 야자수가 서 있는 해변에 해가 지는 사진이었다. 나는 이 사진 안의 풍경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 가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시간이 멈추어 버릴 것 같았다. 또 한 장은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로지르는 서퍼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 속 바다와 해변의 모습은 나에게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가식과 체면같은 군더더기를 다 벗어버리고 바다와 마주하면 그저 지구에 사는 하나 인간일 뿐이다. 키아누리브스가 나왔던 "폭풍 속으로"(Point Break) 같은 영화의 영향도 있었지만 내가 서핑에 대하여 일종의 동경을 하게 된 것은 이 때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언젠가는 꼭 서핑을 해 보리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바다 수영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서핑은 시도 조차 못하고 있다.
영화 속 서른 즈음의 키아누리브스가 해변에서 서핑 보드를 빌리며 자기가 서핑을 배우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며 창피해 한다. 켈리포니아에서 해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누구나 어려서부터 서핑을 탄다고 한다. (반면 나에게 일본에의 서핑은 왠지 아저씨들의 스포츠이다. 내가 아는 일본의 서퍼들은 마에상과 그 친구들과 같은 올드 서퍼들이어서 인지도 모르지만.) 어려서 배워 노인이 될 때까지 탈 수 있는 서핑은 바다와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려서 배우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배운다면 아무래도 더 큰 용기를 내어야 한다. 아마 배우더라도 노인이 될 때까지도 잘 타기는 힘들지 모른다. 자전거랑 비슷하다. 서퍼와 자전거 중 고르라면 나는 자전거를 타겠다.
피어를 둘러보고는 지난 밤에 늦은 시간에도 길게 줄을 서 있어 그냥 지나쳤던 맛집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크램차우더가 유명한 식당 스플레쉬 카페(Splash Cafe). 욕심을 내어 너무 많이 주문한 탓에 다 먹지 못하고 많이 남기긴 하였지만 여전히 긴 줄을 세 울 만큼 맛집이 분명하다.
두시간 남짓 켈리포니아의 넓고 광활한 풍경을 지나 Carmel by the sea에 도착했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이 마을은 언젠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을 했었던 곳이다. 처음에는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데로 조그만 몬드 베르데(Monde Verde)라는 호텔에 주차를 하고 체크인을 하려 하였는 데 알고보니 우리 호텔은 그 맞은 편 파인 인(Pine Inn)이었다. 이 곳의 호텔은 모두 조그맣고 아름답지만 특히 우리가 묵을 파인 인 호텔은 이 마을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호텔이다. 1889년 센프란시스코의 티볼리(Tivoly) 오페라 하우스를 허물며 가져온 나무로 만든 2층짜리 호텔인 호텔 카멜로(Hotel Carmelo)가 그 원조이며 1903년 조금 더 바다 가까운 곳으로 옮겨 지어지며 파인 인(Pine In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건물을 들어서면 다시 중정을 둘러싸고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기에 체크인이 준비되는 동안 카멜의 가게들을 돌아보았다. 와이프가 들고 다니던 파타고니아의 에코백을 부러워하던 나는 켈리포니아의 상징인 곰이 그려져 있는 에코백을 샀다. 후디를 하나 넣고 카메라 다리를 넣어 다니기에 크지고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사이즈이다. 가게들 사이 사이에 있는 겔러리를 들렀다. 원색으로 프랑스와 이태리의 풍경을 그린 최수주란 한국작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벗꽃 그림과 모던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사이먼 불(Simon Bull)의 겔러리을 둘러보았다. 수빈이와 수연이는 운 좋게도 지나라는 코디네이터에게서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색칠 공부책을 한 권씩 받았다. 럭키.
체크인을 하니 직원이 중정으로 바로 문이 나 있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커다란 그림들이 여럿 걸려 있는 방은 고급스럽다. 욕실도 넓고 월풀도 설치되어 있다.
저녁은 호텔에 붙어있는 이태리 식당, 일 포르나이오(Il Fornaio, 빵굽는 사람 the baker랑 뜻)에서 스테이크와 디오볼라 피자 그리고 스파케티를 먹었다. 오래된 호텔답게 요리도 수준급이다.
석양을 보러 해변으로 갔다. 피스모베이보다 높은 파도가 친다. 많은 사람들이 모래 언던 위에서 석양을 보았다. 아이들은 아주 길고 희고 고운 모래언덕을 뛰어 내려가거나 대부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수연이 수빈이도 몸을 뉘워서 굴러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쉼없이 반복했다. 갈메기는 낮게 모래 언덕을 오르며 끼익끼익 울기도 하고 떼를지어 어디론가 날아 갔다 돌아왔다. 모래 언덕에서 너무 재미있게 놀았는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수연이가 힘들다고 하여 얼른 업혀라 했다. 그런데 호텔에서 해변으로 갈 때에는 내리막 길이라 알아채지 못했지만 해변서 호텔로 가는 길은 아주 긴 오르막 길이었다.
토렌스 호텔서 가지고 온 입욕 소금(bath salt)를 넣고 오랫만에 욕조에 몸을 담궜다. 저녁은 영화를 보는 무비 데이(Movie Day)이다.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 중 가위바위보를 이긴 수빈이의 바램대로 신데렐라를 보았다. 이년 전 하와이에서도 이 두 영화를 질리도록 보았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아름답고 새롭다. 우리 삶의 아름다운 추억들고 그렇게 남으리라.
(추기)
어릴 적 내 방에는 여기 저기서 모아 높은 아름다운 그림이나 포스터가 붙여 있었다. 좋은 문구나 단어들도 적어 붙여 놓았는 데 중학교 2학년 때 책상 앞에 "Boys. be ambitious!로 시작하는 글을 붙여 놓고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설래였다. 어디선가 보고 옮겨 적은 문장인데 그 다음 "우리의 가슴은 기관선의 증기처럼 끓어 오른다"로 이어졌다. 이 글을 읽으면 텔레비젼에서 본 만화 "톰소여의 모험"에서 미시시피강을 굵은 연기를 내뿜으며 가로지르는 거대한 증기선이 떠올랐다. 이 말이 누가 한 말인가가 아주 오랫동안 궁금하였는 데 최근에 이 말이 19세기 말 일본 삿포로농학교(現홋카이도대학교)의 교장을 지닌 윌리엄 클라크(William Smith Clark)가 떠나며 남긴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 안 쪽에는 마치 현판처럼 앙드레지드의 "좁은문"의 불어 제목(porte étroite)을 써서 붙였다. 마치 나의 방 문이 천국으로 가는 좁은 문이 된 것 처럼. 책상 유리 밑에는 트럼프 카드 사이즈의 영화카드를 넣어 놓았는 데 더스틴호프만과 톰크루즈가 나란히 걷고 있는 "레인맨(Rainman)"의 한 장면이었다. 당시에 신사동 신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받아온 것이었다. 한때는 누구나 영화 카드, 포스터, 입장권을 모으던 때가 있었다.
내 침대 옆 벽에는 뤽베송 감독의 "그랑블루" 포스터가 붙였다. 달빛이 비추는 푸른 바다 한 가운데 주인공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데 그 앞에 돌고래가 인사를 하듯 뛰어 오르는 장면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포스터는 돌고래가 한 마리가 있는 버젼과 여러마리가 나오는 버전이 있는 데 나는 한 마리만 나오는 버젼이 더 좋았다. 마치 주인공과 돌고래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포스터는 천장부터 침대까지 내려오는 대형포스터이어서 침대에 누워 보고 있으면 포스터 속 바다에 떠서 하늘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