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th day, CMBS to San Francisco 20190730
6th day, Carmel By the Sea to San Francisco 20190730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 밖을 보니 문 밖 통로에 커다랗고 털이 긴 누런 강아지가 엎드려 있었다.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 다녀도 꼼짝을 않기에 호텔에서 키우는 강아지인가 했는데 한참 있다가 머그잔을 든 한 아저씨가 어디선가 나타나 데리고 나갔다. 카멜에서 아침을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하러 전날 저녁을 먹었던 호텔에 딸린 이태리 식당으로 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 호텔 말고도 다른 호텔에서도 아침 식사를 오는 모양이다. 식당의 창 밖 발코니 난간에서 갈매기 두 마리가 앉아 베이컨과 감자, 과일 등을 차려 놓은 테이블과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모습이지만 이곳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보인다.
체크아웃을 해놓고 카멜의 거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아침 공기는 차고 깨끗하다. 마을 도서관에 들어갔다. 작은 마을의 아담한 도서관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꾸었을 것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이 도서관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일하다 떠났으리라.
통로에 놓여진 작은 원탁에는 맞추다가 만 커다란 퍼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 세워진 퍼즐 박스에 바닷속 그림이 그려져있다. 퍼즐의 네 귀둥이와 가장자리는 채워졌지만 가운데 부분은 뻥 뚫린 채 자기 자리에 맞는 퍼즐 조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같이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퍼즐을 보고 그냥 지나가겠지만, 책을 읽다가 지루해져 서가를 걷던 사람이나 특별히 일 없이 도서관에 소일하러 온 사람이라면 이 앞에 서서 나머지 퍼즐을 두어 조각을 채워 놓고 자리를 떠날 것이다. 매일 이곳을 들르는 사람이라면 매일 한 두 조각씩 맞추어 보다가 어느 날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지도 모른다.
널따란 테이블에는 서넛의 노인들과 혹은 중년의 여자들이 앉아 신문이나 읽거나 컴퓨터를 열어 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화가가 많은 카멜에는 분명 작가들도 많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몇몇은 유명해져 "카멜에 사는 작가"라는 꼬리표를 하나 더 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만, 대부분의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도 이름을 알아주지 않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니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들이 이곳에서 살며 글을 쓸 수 있다면 작가로서는 최고의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가게들이 모여 있는 카멜 플라자(Carmel plaza)에 들렀지만 여느 도시에 파는 물건들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에 길 가에 연이은 겔러리들을 들락 거렸다. 종종 눈이 띄는 그림들이 나타났다. 그 중에서 여명이 그려진 제니퍼 모세스(Jenifer Moses)란 화가의 그림은 수빈이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그림이었다. 이곳에서 그림을 사면 후쿠오카까지 보내 준다고 한다. 어떤 가게에서는 그림을 말아 전용 통 속에 넣어 보내준다고 하고 다른 겔러리에서는 단단한 나무 박스에 넣어 보내준다고 하였다. 꽤나 큰 그림이니 운송비도 적지 않게 나올 것이다. 그림을 말아서 보내면 비용을 조금 줄일 수야 있겠지만 혹시 그림에 손상이 갈지 모르니 난 박스로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해외로 보내지는 작품에는 켈리포니아 지방세 등이 붙지는 않는다지만 일본의 세관에서 적지 않은 세금을 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다른 부수 비용들을 다 줄인다고 해도 그림 값 2만불을 선뜻 내지는 못했다.
세븐틴 마일즈 드라이브 길(17 miles drive)를 따라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드라이브 코스에는 중앙선에 빨강과 노랑색이 번갈아 칠해 있어 길을 놓치기도 쉽지 않은 데 몇 번이고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중간에 차를 돌려야 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밤새 길을 찾아 헤맸는 데 동이 트니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는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막 ghost tree라는 지역을 지났는 데 혹시 정말 마법같은 것이 걸린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진짜로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다행히 밤이 아니어서 우리는 마법의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름다운 집들이 보이고 해변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솟아있다. 이곳의 바닷가 풍경은 한국 동해의 풍경과 비슷하다. 사방천지가 아름다운 켈리포니아에서 구지 입장료을 내고 볼 만큼 감동스럽지 않다는 생각은 2년 전 이곳에 왔을 때에도 했을 것이다. 다만 그 생각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번에도 한 바퀴를 돌았다.
아이가 옆자리에서 이 동네 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 주었다. 두 마리 커다란 개를 키우는 오십대 여자가 그 동네에 팔려고 내어 놓거나 평소에 비어있는 남의 별장에 들어가 살며, 심지어 동네 주민 행세를 하고 지냈다는 이야기이다. 깔끔한 차려 입고 동네 사람들에게 말도 건네고 행사에도 참가하는 탓에 아무도 그녀를 노숙자나 불법침입자로 생각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몇 번이고 갑작스레 들어선 집주인과 마주치기도 하였는 데 번번히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을 갔다고 한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채 어느 집에 들어가 살고 있을 지도 모르니 주의하라는 기사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집과 집사이가 널찍하고 그 안에도 길은 몇 갈래가 되지 않는다. 차를 타고 도망갔다 해도 길목 몇 개만 막으면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고, 뛰어서 도망쳤다고 한들 커다란 강아지 두마리를 끌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을까. 불법침입자를 눈 앞에 두고 놓쳐버린 집주인들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혹시 이 여자가 총이라도 들고 집주인을 위협한 것일까? 만약에 그랬다면 캘리포니아 정부에서 엄청난 병력을 풀어서라도 단박에 잡아내었겠지. 기사는 그녀의 뒷모습이 멀리서 찍힌 사진과 함께 카멜의 지역 신문 1면에 실려 있었다. 재미있다. 산타의 썰매가 고속도로를 점거하여 정체가 심하다는 만우절 뉴스처럼 들린다.
센프란시스코에 올라오는 길에 중식 패스트푸드 팬더익스프레스를 먹었다. 모든 패스트푸드는 언제나 맛있다. 센프란에 거의 다 와서는 입구부터 길이 막혔다. 도시로 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다운타운의 웨스틴 호텔을 잡았다. 아래 유니언 스퀘어가 내려다 보이는 방이다. 이 방은 가장 센프란시스코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위치일 것이다. 아주 비싼 방이지만 그래도 잘 잡았다란 생각이 든다. 수빈이와 수연이가 커서 이곳에 다시 와도 우리가 머무르던 이 호텔은 여전히 남아있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유니언스퀘어는 여전히 남아있으리라. 떠날 때 짐을 줄인 탓에, 아니 수빈이 수연이가 모래 언덕을 뒹군 탓에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바로 근처 코인빨래방을 들러야했다. 웨스틴호텔에서 커다란 빨래 봉지를 두 개나 들고 빨래방을 찾아 나서는 손님은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우리는 여행 중이다.
3.25불 세탁기를 돌리고 다시 30분 건조를 하는 동안 근처 "707 shutter"라는 한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 테이블을 맡은 웨이터는 한국 청년이다. 커다란 홀에 손님이 가득한데 두 사람만 서빙을 하느라 바쁘게 오갔다. 잠시도 한 곳에 서 있지 않고 오가는 데 그럼에도 손님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거나 부탁한 것을 까먹지 않았다. 미국의 도시에는 한국에서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있다. 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이 시대에 와서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이야기이지만. 기댈 언덕도 없는 이국의 땅에서 그들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각자의 모습으로 힘껏 살아간다. 이들은 보면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그 나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도전이, 노력이, 실패가, 또 다른 성취가 이들 인생의 이야기를 살찌우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안다.
이곳의 쌀쌀한 날씨와 마우이에서 하레아카라를 올랐을 때를 대비하여 근처 유니클로에 들러 패딩을 샀다. 7월 말에 down 페딩을 사게 되다니. 미국에 와서 우리 동네(일보)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유니클로를 사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