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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7 센프란시스코 피어 39 & 소살리토

7th day Sausalito 20190731

by 박종호

센프란시스코 첫날. 아침 아이가 좋아하는 식당 씨어스 파인푸드(Sear's Fine Food)에서 팬케잌과 프랜치토스트를 먹고 차를 타고 피어39(Pier39)로 갔다. 이곳까지는 호텔이 있는 유니언 스퀘어에서 20분 정도 도착하지만 그 사이에 높은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들과 언덕 밑으로 보이는 바다와 같이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센프란시코의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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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39의 가게를 둘러보다 이층으로 된 회전목마를 발견하고는 수빈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어릴 적에도 수빈이처럼 저리 회전목마를 좋아했었는가 싶다. 내가 수빈이 나이 때에는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에 "청룡열차"라고 불리웠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바이킹"을 탔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지금처럼 너무 무서웠다. 당시에는 테마파크라는 곳이 한 두 곳 밖에 없고 그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다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 탓에 일년에 한 두번 놀이기구를 구경할 정도였다. 대신에 내가 살던 동네에는 "덤블링 아저씨"가 왔다. 공터에 커다란 덤블링 메트를 설치해 놓고 얼마인가 내면 정해진 시간동안 그 위에서 뛰어 놀 수 있었는 데 수빈이가 좋아하는 방방 놀이방의 전신이라고나 할까.


아이와 수빈이가 쇼핑하는 사이 나는 수빈이를 회전목마에 태우기로 했다. 이층으로 된 회전목마는 5불짜리 코인을 하나 사면 한 번을 탈 수 있었다. 엄청 비싸다고 생각해서 수빈이만 태우려 했는 데 자동 판매기에 10불을 넣었더니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고 대신에 코인이 세 개가 나왔다. 환불이 안된다고 하여 한 번은 나도 수빈이와 함께 타고 한 번은 수빈이만 태워 코인 세 개를 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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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미국의 여느 관광지에서도 볼 수 있는 기념주화 판매기가 있었다. 1센트짜리 패니 동전 한 닢과 25센트짜리 쿼터 몇 개를 넣어 손으로 돌리면 구리로 만든 페니가 길고 납짝하게 펴지며 그 앞 면에 기념 문양이 세겨져 나오는 기계가 있다. 디즈니에서는 수연이에게, 피쉬맨스워프에서는 수빈이에게 이 기계로 기념 메달을 한 개씩을 만들어 주었는 데, 나는 이것처럼 남는 장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동으로 눌러 기념품을 만드는 기계 하나만 가져다 놓으면 전기비도, 자재비도 필요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용료를 내고 기념품을 만들어 간다. 보통의 자동판매기처럼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툭하고 상품이 나오지 않고 직접 손으로 돌리며 동전이 눌려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완전 수동인 탓에 문양이 조금 삐뚜로 찍히기도 하고 만들 때마다 동전의 납짝해진 모양이 모두 다르지만 그래서 더욱 "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불편'을 '체험'으로 상품화한 좋은 예이다. 우리 동네 모모치하마에도 비슷한 기계가 하나 서 있다. 동전을 넣고 컴퓨터 자판으로 문구를 치면 그 문구가 자동으로 두꺼운 메달에 세겨져 툭하고 나온다. 모모치하마에 들렀다는 것이 두꺼운 메달에 세겨야 할만한 일인가도 생각해 볼 일이지만, 메달 두께 만큼 가격도 비싸다. 아마 기계 값도, 그것을 유지하는 비용도, 기계 안에 넣어 놓은 메달의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의 패니처럼 일본의 1엔짜리는 납작해지는 재질이 아니다. 두꺼운 십엔짜리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아마 화폐회손죄로 잡혀들어갈 것이다. 회전목마나 수동 기념주화 제조기처럼 한 번 설치를 해 놓으면 간단한 관리로 혹은 관리 없이도 꾸준히 돈을 벌어 줄 수 있는 사업,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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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당에서 입맛에 맞지 않아 아침밥을 먹지 못한 수빈이와 수연이를 위해 소살리토 섬으로 가는 배를 조금 미루고 피셔스워프(Fisherman's Warf)에 있는 수리산이란 한국식당서 밥을 먹었다. 불고기 밥과 햄버거. 입맛이 까다로운 수연이를 위하여 미국에서 수연이가 잘 먹을 만한 메뉴를 다섯개 정도 발굴할 작정이다.


피어39에서 조금 걸어 피어41에서 배를 타면 소살리토(Sausalito)까지 가는 데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센프란시스코의 상징인 Golden Bridge와 알카포네가 수감되었던 감옥이 있던 알카트라즈섬을 볼 수 있다. 우리는 3층에 올라 하늘이 트인 의자에 앉았지만 이내 바람이 차가워져 아이와 수연이는 2층 실내 선실로 내려갔다. 눈 앞에 펼쳐지는 엽서같은 풍경들을 사진을 찍어 대다가 언덕에 집들이 빽빽히 들어선 소살리토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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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가 한참을 지나 온 캔디 가게를 잊어 버리지 못하고 계속 돌아가자고 보채는 탓에 결국 다시 돌아가 사탕가게로 들어갔다. 수빈이와 수연이는 마음에 드는 캔디를 바구니에 담았다. 수빈이는 호기롭게 수연이 것까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섰는 데 무게를 재어보니 한 줌 정도밖에 안되는 사탕의 가격이 턱없이 비쌌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꾀어내는 관광지의 상술이었다. 지나쳐 온 사탕 가게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바가지를 쓴 수빈이를 나무랐더니 수빈이는 돈이 아까워 씩씩 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 나는 조금 미안하여 20불짜리 하나를 수빈이 지갑에 넣어 주었는 데 수빈이는 돈을 받자마자 금새 울음을 멈추었다.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을까. 다행히 수연이는 사탕을 고르는 것이 즐거웠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탕가게는 여전히 괘씸했다.


이전에 소살리토에 들렀을 때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림을 찾은 적이 있다. 전설 속 풍경처럼 달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는 그림이었는 데 지금 같으면 덜컥 샀을 만한 가격의 그림을 당시에는 사지 못하고 한참을 아쉬워했었다. 그 그림이 걸려있던 조그만 골목 안 겔러리를 찾아 갔지만 가게 자리는 텅 비어 새로운 임차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억 속의 장소가 바뀌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데도 왠지 섭섭하다.


우리가 아는 소살리토는 예술인들의 마을이다. 수년 전 이곳을 왔을 때도 그런 분위기가 좋아 겔러리와 가게들을 드나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소살리토는 무언가 분위기가 달랐다. 혹은 내가 바뀐 것일까? 사람도 너무 많고 가게들도 이전처럼 특색있는 물건들 보다는 어디서나 있을 법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겔러리가 많이 문을 닫은 것이 아마도 이곳의 분위기가 바뀐 가장 큰 이유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이태리 식당 Poggio도 왠지 생기를 잃고 썰렁한 분위기였다. 이전에는 식당 앞 테이블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있던 식당이다. 아이도 나와 같은 느낌을 느꼈는 지 우리는 이네 김이 빠져 예정보다 훨씬 일찍 피어로 돌아가기로 했다. 배가 뜨기 전에 이십분이나 먼저 와 앞줄에 섰다. 수빈이는 왜이리 서둘러 돌아가냐고 물었다. 나와 아이는 무엇가 달라진 소살리토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센프란시스코 피어로 돌아와 Cafe8이란 식당에서 싯가로 파는 게와 크램차우더, 피쉬엔칩스를 먹었다. 와이파이 기계의 밧데리가 떨어져 구글맵 안의 평점을 검색하지 못하고 밖에서 보아 사람들이 많은 가게를 찾아 들어 갔다. 사람이 많은 집은 맛이 있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했다. 여행을 다니면 매 끼니마다 그 동네의 수백개의 식당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가야 한다. 물론 최선을 다하여 같이 간 이들의 의견을 일치시키고 여러 경로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한 곳을 택해야 한다. 일단 가게에 들어가면 그 가게가 그 동네에서 제일로 맛있는 집이란 생각을 해야한다. 물론 더 맛있는 식당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떤 식당이든 들어가 맛있게 먹었다면 그 집이 그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에서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정말로 그 식당이 가장 맛있는 식당이었다면 행운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추억 속에는 가장 맛있는 곳으로 남을 것이다. 아쉬움 보다는 착각이 낫다.


날씨는 늦가을처럼 쌀쌀한 데 해는 여덟시가 다 되도록 지지 않았다. 우리는 주차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센프란시스코에서 조금이라도 싼 주차장을 찾아 한참을 돌아 다니다 결국 호텔 주차장보다 아주 조금 싼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부질 없는 절약이지만 나는 주차비가 가장 아깝다. 내일은 하와이로 떠난다. 주차비를 아낀 돈으로 수빈이와 수연이에게 사탕이라도 사주어야겠다.


(추기)

좁다랗고 길게 이어진 3층 집은 주토피아에 나오는 주인공 주디가 살 던 방처럼 생겼다. 당근 농장을 경영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 학교에 들어간 토끼 주디는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동물 나라의 첫 번째 토끼 경찰관이 된다. 커다란 동물들 사이에서 어려운 훈련을 이겨내고 1등으로 졸업을 했지만 범죄가 들끓는 주토피아로 발령받은 딸을 걱정하는 주디의 부모는 주디에게 여우 퇴치용 스프레이를 챙겨준다. 침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간 좁다란 방에 누워 옆 방의 시끄러운 수다를 참아야했던 주디는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 의기소침해지지만 엄마 아빠와 전화를 할 때는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여기 최고예요"라고 외친다. 그렇다. 도시는 누구나 스스로를 지켜야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지만 나은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 도시 또한 외지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모여든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미국 드라마 프랜즈나 색스엔더씨티에서처럼 가족 대신에 친구들을 통해 위로와 관심을 얻고 유브갓메일처럼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 곧 연애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연애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확실하다. 차로 한참을 달려야 이웃이라 할 만한 집이 보일까 말까한 시골 마을을 생각해보라.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곳처럼 사람이 그곳에 키우는 소보다 훨씬 적을 법한 곳이라면 클린트이스트우드같은 멋진 사진사가 아니라 누구든 찾아와 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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