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3
새벽부터 일어나 일기를 쓰는 데 수빈이도 따라 일어나 그림을 그렸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사람은 자신을 마치 타인을 보듯이 객관화하고 현재를 넘어 과거와 자기 모습을 기억하고 미래의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그의 행동을 평가하고 반성할 수 있고, '현재의 나'를 위로하거나 비판할 수도 있으며,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희망에 부풀거나 불안에 떤다. 자기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이해와 공감을 가능하게 하고 이 공감의 바탕 위에서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도덕과 판단의 기준이 생겨났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인간이 지닌 탁월한 능력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발달되고 반복되며 인간의 DNA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인간의 사고습관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극히 행복하다고 느낄 때, "이대로 괜찮은 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현재의 내'가 느끼는 만족감이 사실은 나중에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를 걱정하는 마음이다. 이 때 우리는 잠시 지금의 감정인 만족감의 지속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위험 요소가 없는 지 살핀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 또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를 생각한다. 앞 선 질문이 불안이었다면 이번 질문은 욕심이다. 지금 느끼는 만족감 때문에 혹시 내가 가질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있지 못할까 걱정한다. 역시 지금 느끼고 있는 만족감을 억누르고 지금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지를 살핀다. 다른 선택지가 미래의 나에게 지금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계산이 서고 이에 대하여 확신이 선다면 우리는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다른 상황을 선택하거나 이를 가져 올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 두 질문은 인간이 가진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특유한 능력과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 질문들이 혹시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커다란 손해를 피하거나 대비하게 해 주기도 하고 미래에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상황이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사고적 습관은 (지금 우리가 실재로 느끼고 있다면 의미에서 "실재하는") 우리의 만족감 혹은 행복을 억제하거나 축소 시킨다. 지금 느끼는 만족감 혹은 행복이 "안전한가" 혹은 "이게 최선인가"라고 묻는 동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던 감정적 자아는 뒤로 물러나고 자기 자신과 주위를 객관적으로 꼼꼼히 따지고 드는 이성적인 자아가 앞에 나선다. 라면을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 놓고 라면에 칼로리가 얼마인지 스프에 MSG는 없는 지 곰곰히 따져보는 식이다. 물론 라면 봉지에 적힌 유통기한이 몇 년이 지났다면 아무리 맛있게 먹고 있던 라면이라도 그만 먹어야 하고, 몇 시간 후에 친구가 크게 쏘기로 한 저녁 식사 약속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면 조금 아깝겠지만 먹던 라면을 멈추고 뱃속에 맛있는 고기 요리가 들어올 공간을 남겨 놓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라면 스프 봉지를 들여다보고 수첩을 뒤지며 약속 날짜를 확인하는 동안 라면의 면은 불고 있고 국물은 식어 간다. 우리가 한눈을 파는 동안 우리가 느끼던 맛있음은 잊혀지고 그 사이 맛 볼 수 있었던 최고의 맛의 순간을 놓쳐버렸을 수도 있다.
우리 집은 마우이 KIHEI 해변 AKAHI 단지에 있다. 이 집에서 2주를 묵는다. 꼭 무엇을 해 보겠다던가 어디를 가 보겠다는 계획도 없다. 그냥 이 곳에서 매일 바다와 일몰을 보며 살아보려는 생각이다. 수빈이와 수연이 그리고 아이와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좋아하는 꼴을 못보고 가만히 보지 못하는 이성적인 자아가 문득문득 딴지를 걸어 온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혹시 지금 이 시간에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간에 나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뒤쳐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과 불안이라는 사고의 습관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주위를 통틀어 이처럼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경제적 능력과도 무관하다. 사례를 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도가 없는 길을 가는 것처럼 불안하기 나름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살아본 적인 없는 시대를,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아니한가.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크게 손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의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그러했었다'는 이유로 혹은 '모두들 그러하다'는 이유로 나의 선택과 행복이 방해 받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모두 자유를 억압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나는 나의 하와이를 온전히 누리리로 하였다. '지금' 그리고 '이곳'을 온전히 지내려 한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 시간을 후회를 하거나, 앞으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걱정하는 친절한 말걸음에 잠시 귀를 막고 나의 눈 앞에 펼쳐진 '지금'과 '여기'를 단지 따뜻하고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겠다. 여기는 아름다운 하와이이지 아니한가?
우리와 시기를 맞추어 마우이로 놀러온 동생 혁이네를 불러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근처 와일레아 몰에서 수빈이와 수연이가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입고 이 여행을 기념할 원피스를 하나씩 샀고 아이스크림집 라퍼츠(Lappert's)에 들러 나처럼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메뉴인 "결정은 어려워"("Can't decide")를 주문했다. 와플콘에 2분의 1 스쿱씩 다섯개의 맛을 올려준다. 쵸콜릿, 마카데미아넛, 망고, 바닐라, 쵸코민트.
몰 2층에 자리한 National Geography 전시장에 들렀다. 겔러리와 사진 전시장에 들르면 항상 내가 직접 집에 걸만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몇 장을 프린트하여 벽과 문에 붙여 놓고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곳곳에 세워 놓았지만 큰 액자에 담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피일차일 시간만 보내고 있다. 수빈이는 채은이와 콘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영장에서 한 시간 넘게 수영을 했고 나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 석양을 보러 바다로 나갔다.
수빈이와 수연이는 처음에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바다에 무릎까지만 들어 가려 했지만 파도를 맞는 재미에 빠져 가슴팍까지 홀딱 젖어 버렸다. 바다와 하늘은 오랜지색으로 물들고 육지 쪽에는 커다랗게 쌍무지개가 떴다. 베리 럭키. 아름답고 행복하다. 이것은 실재하고 이것이 전부이다.
집에 돌아와 아침에 계획해 놓은 데로 라면을 먹고 "쿵푸팬더3"를 보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