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7
하와이에 도착한 날부터 오늘까지 일주일 째 수염을 기르고 있다. 여행을 오면 한 번씩 수염을 길러 본다. 단순하게 평소에 하던 면도를 몇 일 멈추는 일이지만, 수염을 기르는 데는 적지 않게 의지가 필요하다. 우선 거울을 볼 때마다 볼떼기부터 목 밑에까지 덥수룩하게 수염이 덮인 낯선 모습을 마주하고는 면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아빠는 수염이 없는 게 더 좋아"라는 수빈이의 은근한 압력이 시작되고 의기소침해진 나는 수연이와 아이에게도 내가 수염을 기르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깎는 것이 좋은 지 물어보게 되는 데 둘의 대답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혹시 너무 지저분하게 나오지 않을지 걱정하기 시작하는 데,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에는 여행 내내 길러 보겠다고 시작한 수염이 길어야 일주일 만에 깎여 나간다.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수염을 길러보고 수염을 기른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지 확인해 보겠다. 꼭. 여전히 낯설어 자꾸 수염을 만지게 된다. 수염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도 좋다. 곧 익숙해 지겠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을 무위(無爲)라고 하지만 하였던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의지가 필요한 일이어서 일부러 하는 작위(作爲)에 가깝다. 매년 한 번씩 하는 100일 금주에는 평소에 마시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번 금주는 오늘로 49일째이다. 어떤 것들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몸에 인이 박힌 습관을 멈추면 금단현상을 겪게 되고, 사고의 습관을 멈추는 것은 도를 닦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나 사고를 멈추면 그 자리를 새로운, 되도록이면 더 나은 습관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더불어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면 그 일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오래 전 산 속의 절에 젊은 중이 스승에게 물었다. "왜 매일 새벽에 부처님께 공양을 해야 하는지요? 부처는 마음 속에도 계신다고 하셨으니 굳이 새벽 공양을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스승은 그에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일부터 새벽 공양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젊은 중은 자기의 뜻에 따라 그 동안 해 오던 새벽 공양을 멈추었다. 그런데 오래 지나지 않아 젊은 중은 다시 새벽에 법당에 나와 공양을 시작했다. 법정스님의 수필은 여기서 끝난다. 아마도 젊은 중은 새벽 시간에 다른 할 일을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방법을 찾다 보니 새벽 공양이 하루의 공부를 시작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고, 혹은 새벽마다 공양을 하는 것이 중과 일반 시도들을 구분 짓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혁이네가 묵고 있는 근처 메리엇 리조트(Adaz Maui at Wailea)에 놀러가 수영을 하고 해변에 나가 놀았다. 근처의 맛집인 코케이포드(Mokeypod Kitchen by Merriman)에서 점심을 먹고 몰에서 열린 하와이 전통 춤 공연을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Kamaole beach park에서 일몰을 보고 콘도로 돌아왔다. 마트서 사온 삿포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라이온킹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