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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7 마케나 비치

201908008

by 박종호

마우이에 와서 처음으로 새벽에 산책을 나섰다. 항상 하와이에 오면 아이들이 일어 나기 전에 바닷가에 나가 거북이를 보고 산책을 하고 돌아왔었는 데 이번에는 새벽마다 일기를 쓰느라 산책을 미루어 왔다.


키헤이(KIHEI)는 서쪽 해안을 끼고 있어 저녁마다 바다 위로 펼쳐지는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지만 동쪽으로는 산을 등지고 있는 탓에 아침에는 해가 늦게 솟아 오르고 해가 질 때처럼 드라마틱한 광경은 연출되지 않는다. 나는 콘도 맞은 편 마카올래 파크(MAKAOLE PARK 2)를 지나 바위로 둘러 싸인 해변으로 걸어 갔다. 이곳은 거북이가 아침마다 파도에 몸을 싣고 바위에 붙은 이끼를 뜯으러 오는 곳이다. 어제 아침에는 바위를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거북이 두 마리와 커다란 곰치를 한 마리 보았다. 나는 물고기 이름을 잘 모르지만 왠지 티비에서 본 듯한 물고기에 곰처럼 생겨 탁 떠오른 이름이 '곰치'다. 진짜 곰치가 아니었다면 물고기에게는 미안하다.


해안을 따라 나 있는 2차선 차도 옆 인도를 따라 장을 보는 푸드랜드(Foodland)까지 걸었다. 푸드랜드는 하와이의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이다. 차를 타면 금새 도착하니 가깝다고 생각했는 데 막상 걸어서 가니 한참 걸렸다. 바닷가를 들렀다 아침 거리를 사 오는 데 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에 돌아 오니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보채는 수연이의 "똥배"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엄마 손은 약손, 수연이 배는 똥배."수연이는 배에 가스가 잘 차는 데 방귀를 잘 끼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배가 아파진다. 어르신들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을 건강의 3요소라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당신들이 겪어보니 그 불편함이 큰 것이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자.


항상 푸드랜드로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보이는 kihei cafe에 들렀다. 가게 앞을 지나 갈 때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는 데 막상 점심시간에 가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하와이안 햄버거, 팬케잌과 계란 후라이, 베이컨이 두 장씩 나오는 2-2-2, 그리고 BLT(베이컨, 레터스, 토마토가 들어간 센드위치)를 주문했다. 모두 맛있다. 문제는 가게 바닥을 돌아다니는 새들과 병아리 보다 더 자란 닭들이다. 새들이 발을 스치고 지나면 비둘기에 기겁을 하는 제수씨를 따라 수빈이도 덩달아 꺅 꺅 비명을 질렀다.













테이블은 바깥 테라스에 있고 주문은 가게 안 카운터에서 받는다. 가게에 들어 가면 정면에 주문을 받는 카운터가 있고 오른쪽 바에서는 주문한 음료를 내어준다. 빨간 천에 하얀 꽃 무늬가 들어간 하와이안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꽃 핀을 꽂은 아주머기가 음료를 만들어 주고 있었는 데, 잘 보니 이 아주머니는 어제 와일레아 쇼핑몰에서 전통춤 공연을 했던 분이 아닌가? 잠시 후 카운터 안 쪽 주방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가게 안 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이 아주머니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데 이 남자도 어제 쇼핑몰에서 공연을 했던 사람이다. 아마도 이 가게 사람들은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돌아다니며 훌라 춤 등 하와이 전통 춤을 공연하는 모양이다. 꽤나 낭만적이다.


하와이라 하여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관광객들처럼 생계를 위한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한가함을 즐기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길 가에 서 있는 과일 나무에 과일이 무성히 열린다고 하여도 과일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서핑을 하고 출근을 하고 해가 지기 전에는 다시 서핑을 하고 집에 돌아오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춤 공연을 부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운이 좋게도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고 친절한 보스를 만난다면, 적당한 수입에 만족하고 서핑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살면서 생계에 필요한 만큼의 수입을 벌며 삶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좋아하는 삶의 스타일이 같을 수는 없다. 다른 어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해야 하고, 보스와 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퇴근 시간까지 참아야 하며, 그 다지 다이나믹하지 않은 섬 생활에 지루해하고 있을 수 도 있다. 하와이를 들렀다 즐기고 떠나는 외지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현실이 있을 것이다.


음료를 따라준 아주머니가 전 날 보았던 덴서였다라는 확신을 사실로 만들기 위하여 나는 직접 그 아주머니에게 가서 "어제 혹시 몰에서 댄스 공연을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씩 웃으며 자기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음. 부업으로 공연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모양이다. 원주민의 신비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후에 보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 거북이가 많이 나온다는 마케나 비치(MAKENA beach)로 갔다. 해변 입구에는 누군가 바구니 안에 망고를 쌓아 놓고 3개에 5불이라고 적힌 놓은 종이를 올려 놓았다. 후쿠오카 미야케의 장인 댁에서 그 앞 강(나카가와) 길을 를 따라 하카타 온천 쪽으로 걷다 보면 길을 따라 작은 텃밭들이 보인다. 그 밭 앞에는 작은 나무 박스가 세워져 있는 데 아침이면 이 안에 야채들을 바구니에 담아 놓아 두고 가격을 적은 종이를 그 옆에 세워 놓는다. 인근의 어느 집에서 자기 밭에서 자란 야채를 매일 아침 내어 놓고 파는 것이다. 지키는 사람도 없이 지나가다 필요한 야채가 있으면 조그만 동전 통에 돈을 넣고 야채를 가져가면 된다. 아마 이 망고들도 누군가 근처 망고 나무에서 딴 것이리라.


마케나 비치에서는 기대했던 것처럼 거북이가 모래 위에 올라 와 있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스노클링을 하며 물 안에서 헤엄치는 거북이를 볼 수 있는 곳이란다. 모래는 지글거렸지만 바닷물은 시원했다. 수빈이와 수연이는 바다가에서 바위에 붙은 조개를 따 모았다. 수연이는 서서 파도를 맞는 것을 너무 좋아하여 가끔 얼굴까지 올라오는 파도에 물을 먹어도 물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얼굴이 타서 진짜 모아나랑 똑 같이 생겼다. 아이는 파라솔 밑 비치 체어에 앉아 책을 읽었다. 서너 시간을 땡 볕 아래서 놀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석양을 보러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밥을 짓기로 하였다. 메뉴는 스테이크, 파스타, 밥, 김, 버터 콘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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