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나무
3년 전 한눈에 들어온 나무가 있다. 남들은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데 나는 이 나무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무는 도로 바로 옆에 있다. 나무는 그저 나무, 나무, 나무들 사이에 있는 나무 1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 것이다. 더 이상 나에겐 평범한 나무가 아니지만. 이 거목은 족히 이 자리에만 최소 40년 이상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나 꽃송이들이 만발할 때 우거지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 이상일테지. 이 나무가 있는 자리는 내가 어렸을 때도 지나다니고 걸어 다니고 스치듯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내 나이보다는 많겠다. 나무는 거목인 만큼 키가 정말 크다. 나는 이 나무를 알고 싶어졌다.
그 나무를 처음 마주쳤을 때는 역시 지나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중에 시선이 닿았다. 아직은 조금 황량한, 이제 막 나무들이 초록잎을 틔우고 있을 때다. 4월, 벚꽃이 핀다 배꽃이 핀다 할 때이다. 무엇인가 엄청 큰 나무에 매달려있는 하얀색 이파리. 스치듯 지나가는 길에는 나는 그것이 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큰 나무에 가득 핀 꽃이라니 생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에 다시 가봐야 했다. 가까이 가닿고 싶었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을 지나 조금 길어진 해로 많이 어둡지 않은 저녁이었다. 짙은 푸른색이었다. 연필 냄새 가득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미술학원에 갔을 때처럼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무척이나 설레었다. 스쳐 지나갔을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서 본 나무는 가히 장관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까지 흐드러질 수 있는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계속 보고 싶은 느낌이었다.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도 부족했고, 그 아름다움은 눈에 눌러 담아도 부족했다. 나무가 이렇게 사람을 매혹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늘어지거나 흐드러진 풀을 보면 무척이나 설레는데 이 나무의 꽃은 내가 본 흐드러짐의 절정, 가장 큰 만발함이었다. 뭉게뭉게 가득 핀 구름 같기도 하고 바닷속이 꽉 차도록 끝없는 하얀 정어리떼 같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그 춤사위는 물고기가 유유히 지나다니는 듯 한 하늘거림이었다. 나는 이 나무의 이름을 알아야 했다. 꽃 모양과 비슷한 나무의 사진들을 대조하며 이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귀룽나무. 가지가 길어 처지도록 무성하게 뻗어내며 구름 나무라고도 한다. 나무 우듬지까지 빼곡히 구름같이 피어내는 꽃이 과연 그렇다. 춘분이 지나면 다른 나무들보다 이르게 푸른 싹을 틔워낸다. 이 나무를 보며 봄이 왔음을 안다. 귀룽나무 꽃은 짧게 피고 지는 벚꽃과 다르게 서두르지 않는다. 다른 나무들이 꽃을 먼저 피운다면 이 나무는 심동을 지나 가장 먼저 빛나고 작은 연두색 잎을 틔어낸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새하얗고 조막만 한 꽃들이 풍성하게 달린다. 꽃망울은 아주 작다. 작지만 아득한 꽃을 보게 되면 오랫동안 그 꽃그늘 아래에서 머물게 된다. 일 년에 단 한번, 단 며칠만 볼 수 있다. 그렇게 첫 해가 지났다.
이듬해 나무는 여전히 멋들어졌다. 처음 봤을 때 그 느낌 그대로 풍성하고 탐스러웠다. 아침에도 보고 저녁에도 보았다. 그렇게 봄이 지났다. 그 해 여름에는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다. 폭우가 몇 차례였고 세차게 내리는 비에 거목의 기둥 하나가 부러졌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쓰러진 것을 보고 저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나 보다 하고 놀랐다. 내년에 이 나무가 꽃을 피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세 번째 봄에 만났다. 역시나 혼자 이르게 튼 새싹들은 여전했고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며 여러 번 찾아갔다. 나무는 꺾인 채로 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냈다. 부러진 채로 꺾인 채로.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다시 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산산조각.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산산조각의 삶을 닮아있는 나의 아는 나무. 쓰러진 채 피워낸 새하얀 꽃을 보며 봄을 맞이했다. 흐드러진 나무줄기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마도 평생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없을 수도 있고 개발이 되면 이 나무는 언제라도 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귀룽나무는 수명이 길지도 않고 함부로 베면 안 되는 보호수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무를 무심코 베어버리고 쉽게 없애버린다. 마음의 싹을 잘라내듯 강인한 생명의 단전을 끊어낸다. 그러니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 거목을 두고두고 눈에 담고 글로 남긴다. 천년을 사는 은행나무처럼 오래 있어주기를 기약하며, 동네 아는 나무에 대해 예찬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