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던 대형견의 주인은 자신의 개가 왜 낯선 집의 입구로 뛰어가는지 몰랐습니다. 캄캄한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거기엔 밥을 먹던 검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사료와 물그릇이 엉망으로 나뒹굴었고 개가 짖었어요. 검은 고양이는 종종 그런 연유로 삶을 마감합니다. 밤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로. 차를 모는 사람도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검은 고양이를 잘 보지 못합니다.
대형견의 주인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돌보는 집의 문을 두드려 사실을 말했고 자신이 어찌하면 좋겠느냐 물었어요.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 병원에 데려가 보면 좋겠다는 말에 부리나케 병원으로 갔지만 도착해보니 이미 고양이는 죽어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는 화장 내역이 적힌 병원 영수증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개도 키우고 자식도 키우는 입장이라 모른 척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말하는 그의 곁에는 열댓 살로 보이는 딸아이가 있었어요.왜 목줄을 짧게 잡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지요. 그 정도의 수습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이기에, 마음 한 편 그의 정직함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고생하셨네요. 앞으론 조심해주세요. 한 생명의 죽음이 그렇게 예의 바른 인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성장한 지금도 검은 고양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2019년도에도 영국 보호소의 70%는 검은 고양이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불운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사진에 예쁘게 찍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아이들은 여전히 배척받습니다. 그것이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쉽게 입양이 되지 않는 검은 고양이들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에서도 쉬이 죽어나갑니다. 그것을 내 삶 안 쪽에서 겪으면, 나는 오랜 시간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고 맙니다. 인간이 심리적 안위를 위하여 만들어 낸 미신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슬픈 갈고리를 이어 나가는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