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홍민정 : #걱정
걱정을 세탁기에 넣어 빨아버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재은이는 걱정 꾸러기 아이입니다. 3학년 첫날을 앞둔 밤도 마찬가지였어요. 첫날부터 지각할까 봐, 교실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싫어하는 아이가 짝이 되면 어떻게 할지, 온갖 걱정으로 밤새 뒤척이던 재은이는 결국 새 학년의 아침, 늦잠을 자고 말지요.
재은이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단 평가 걱정으로 고민하던 재은이의 눈앞에 낯선 VR가게가 나타나요. 걱정 소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걱정 세탁소.
★ 걱정 세탁기 사용법
1. 고글을 쓰고 시작 버튼을 누른 후
시간을 선택합니다.
(1시간 / 12시간 / 30일)
2. 세탁이 끝나고 ‘완료’ 메시지가 뜨면
고글을 벗습니다.
3. 세탁 후 선택한 시간 동안 걱정이 사라집니다
4. 비상시 STOP 버튼을 누르면
기능이 멈춥니다.
(단, 중간에 멈추면 세탁 기능은
다시 사용할 수 없음) - p.14
이런 곳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봅니다. 음, 우선은 저도 한 번은 해볼 것 같아요. 걱정쟁이 재은이처럼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좋지 않은 일이 걱정돼 1시간 버튼을 누를 거고요. 호기심도 생기고 이런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한 번쯤은 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설마 1시간에 무슨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 순간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다면 조금 더 오래 시간을 설정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의 고통을 가장 크게 느끼잖아요. 지나간 일은 시간 속에 잘게 부서지며 희미해져서 왠지 지금의 힘듦보다는 그 무게가 가벼워지니까요. 어차피 부딪혀야 하는 것이라면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걱정 없이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시험과 숙제 걱정을 잊은 대신 재은이는 나태한 생활을 하게 돼요. 놀이터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도 다치면 병원에 가면 될 뿐이라고까지 말하고요.
환상적인 걱정 세탁소. 할머니에 대한 고운 마음을 가진 재은이에게 찾아온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졌는데, 생각해 보니 저도 그 매력적인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흐릿해졌나 봐요. 인간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가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걱정 세탁소를 드나드는 재은이를 보며 때로는 걱정으로 인해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은이.. 이 동화는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간지러웠어요. 제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지요. 그동안은 아이들이 동화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과 같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싫어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네요. 물론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으쓱한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도 있지만, 동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릇된 행동을 보여 주잖아요. 마지막에는 그로 인해 더 좋은 모습으로 자라게 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옳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보면 왠지 자신의 잘못을 들키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동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 친구들의 큭큭 대는 웃음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부모 그늘 아래 있을 때가 가장 걱정이 없는 거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새 학년 전날 친구들 무리에 들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 학부모 참관 수업을 준비하며 엄마에게 혼날까 봐 떨리는 마음, 먹기 싫은 급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힘든 마음. 그뿐이 아니에요. 못하는 과목의 발표 전날 밤, 친구와의 관계가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는 날, 열심히 노력해도 좋지 않은 시험 결과를 받은 날.
어른들의 걱정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하찮게 여겨질 수 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9살의, 13살의 내가 다시 되어 본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네요. 꼬마 재은이가 풀어가는 동화 속에서 어른 재은이가 살아감을 헤아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