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베벌리 나이두 : #인종차별
책을 읽으면 아이들에게 별점을 매기게 해요. 각자의 별점을 발표하고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를 이야기 나누지요. 그것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책에 대해 다시금 깊이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저는 그것을 통해 수업 책을 선정하는데 도움을 얻습니다. 같은 주제의 책 중 이왕이면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하려 하는 것이지요. 책을 바라보는 어른과 아이의 시선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떤 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 왕자>와 같은 책은 예전에는 읽고 나서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는데 한 5-6년 전부터는 별점이 좋지 않아요. 물론 아직도 10% 정도의 아이들은 무척 감명받았다면서 별점을 5개에서 초과하여 10개까지 주기도 하지만, '지명과 인물 이름이 어려운 외국어여서 몰입이 안 된다. 내용이 어렵고 지루하다. 너무 재미없다.' 등의 평가가 주를 이루지요.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은 분량이 79페이지로 길지 않은데도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책이에요. 최근 들어 빠르고 자극적인 미디어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점점 더 진지한 내용의 책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영화 같은 책이 아니어도 가끔은 이렇게 묵직한 생각을 던져 주는 책을 보는 것이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세의 50%가 남아공 사람들을 위한 교육단에 기부된다는 이 책의 작가는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지독한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백인들이 피부색만으로 모든 특권을 누리며 무자비한 횡포를 부리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을 돌보느라 병으로 죽어가는 두 딸을 지키지 못했던 유모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해요. 19세기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금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이후 아픈 역사를 지니게 됩니다. 남아공의 백인 주민들을 상대로 한 보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남아공을 지배하며 원주민이었던 남아공 흑인들을 통제하고 탄압하게 된 것이지요. 어렵게 출간된 이 책은 1991년,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나온 이듬해까지 남아공의 금서였다고 합니다.
13살 날레디는 사흘째 고열이 나며 아픈 막내 동생 디네오를 위해 9살 동생 티로와 함께 엄마를 찾아 300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요하네스버그까지 가게 됩니다. 집에서 병원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의사에게 줄 돈도 없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날레디와 티로는 수많은 인종 차별을 마주하게 돼요. 비백인 전용인 검은색 정류장을 이용하지 않아 호통을 듣기도 하고, 신분증인 패스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며 백인 경관에게 뺨을 맞는 남자를 보며 무서움에 떨기도 합니다.
그중 오랜 대기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지만 이미 아이가 엄마품에서 숨져 있던 장면에서는 절규하는 여성의 흐느낌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게다가 하인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라니요. 그래도 백인에 대한 충성과 복종심을 강조하는 학교에 다니며 다른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날레디가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가지게 되는 것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날레디의 서사가 끝나면 <사진으로 보는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이 시작되는데, 작가가 수천 장 중에 골라 실은 역사적 현실이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깊이를 더욱 짙게 해 줍니다. 수업 전후 책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 다른 환경과 역사적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너른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