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문장의 길 _<할머니, 편지 왔어요>

_ by 조 외슬랑 : #편지 #할머니

by 유재은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였을까요. 이사 온 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벌써 7년이 지났으니 아마 그만큼이 아닐까 싶네요. 편지는 편지지를 고르는 순간부터 보내는 마지막까지 설. 렘. 입니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고르고 또 고른 편지지를 꺼내 모두가 잠든 밤, 그윽한 스탠드 아래 음악과 함께 펜을 들지요. 온 정성을 다해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은 봉투 위 우표를 붙이는 순간까지 중대한 의식처럼 이어져요. 혹시나 펜이 번질까 봐 투명 테이프로 주소와 이름 위를 이불처럼 덮어줄 때도 있었고요.


그렇게 쓴 편지를 구겨지지 않게 담아가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에서 보내는 순간이면 행복이 가득 차올랐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은 답장을 받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받은 편지는 조심스레 꺼내 읽고 또 읽은 후 편지를 모아두는 곳에 정성스럽게 넣어 두었어요. 그렇게 간직해 둔 편지와 엽서들은 아직도 고이 자리하고 있는데, 어쩌다 꺼내 볼 때면 그 시절의 나와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해 줍니다.


반면 요즘에는 너무나도 빠르게 마음을 전하고, 조급하게 답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을 때도 받는 이가 부담스럽게 생각할까 봐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그나마 매일 손글씨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펜을 쥐어야 할 때 무척 어색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일기를 쓸까 했어요.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대고
자기 자신에게 글을 쓴다는 게
아무래도 어색해서 그만두었어요.
그래서 증조할머니께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아직은 할머니한테 무슨 얘기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할 얘기가 얼마나 있을는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한번 해볼게요. (p.5)


열두 살 아나벨의 편지로 시작해 여든네 살 증조할머니의 편지로 끝나는 책이라니. 게다가 2007년에 출간되어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책장을 펼치며 이내 무색해졌네요. 6개월간 주고받은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해서 마치 내가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다음 글을, 그다음 편지를 설렘으로 따라 읽었어요.


사춘기를 맞이한 아나벨의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과 부어오르는 발을 끝내 잘라내야 했던 할머니의 마음. 생과 사의 아픔 속에서도 유쾌하고 담백하게 이어지는 손녀를 향한 사랑은 아리게 다가옵니다. 할머니의 답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오지 않는 편지로 볼멘소리를 하던 아나벨도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데, 각기 다른 삶의 무게는 다정한 문장의 길로 토닥임을 받습니다. 누군가와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나 밤하늘에서 발 모양의 은하수를 보거든
이 할미에게 꼭 말해 주렴.

"할머니 발이 하늘에 달려 있어요!" 하고.
내 발이 하늘에 올라가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좀 위로가 될 것 같구나.
멀리서 네게 반갑다고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인사한다고 생각해 보렴.

오늘따라 하늘이 무척 예쁘구나.
4월의 싱그러운 대기는 말할 것도 없고.

네게 따뜻한 키스를 보낸다.
곧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추신 : 불행을 가져온다는 그 검은 고양이,
여기 올 때 데려다 주렴.
이제 이 할미는 두려운 게 없단다! (p.119)






우체국 가는 길


세상은
편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하나
미루나무로 줄지어 서고
사랑의 말들이
백일홍 꽃밭으로 펼쳐지는 길

설레임 때문에
봉해지지 않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내가 뛰어가는 길

세상의 모든 슬픔
모든 기쁨을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작은 발로는 갈 수가 없어
넓은 날개를 달고
사랑을 나르는
편지 천사가
되고 싶네, 나는


- 이해인



✐ 책을 보니 당신이 떠오르네요.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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