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여행자
미세먼지가 혹독한 주말, 서울에 즐비한 한양 도성 둘레길을 찾았다. 내가 고른 코스는 서촌 사직단에서 출발해 인왕산과 북악산을 지나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산은 낮고 길은 성곽을 따라 만들어진 탓에 가볍게 산책하듯 오르내린다. 일요일 오전에 올라갔다가 가회동에서 냉면 한 그릇 먹었다. 생각 같아서는 혜화동을 거쳐 남산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하루를 몽땅 산속에서 보내야 할 터다. 잠시 도심을 비껴간 소소한 이탈이지만 숲을 걷노라면 한숨 돌리는 기분이 든다. 도시의 미세먼지와 우중충한 하늘도 여기선 안 보이니까. 산 위에서 바라보는 도심의 빌딩과 인파는 사뭇 우스워 보인다. 부감은 사람에게 사색을 선물한달까. 아등바등 사는 저들과 분리되는 기분에 여유를 느낀다. 그래 팔짱 끼고 볼 수 있을 때 즐겨두자. 저 속 없는 놈들 쯧쯧거리며 우쭐대는 거다. 마치 저 속된 거리에 내 지분은 없다는 뻔뻔함으로. 하지만 하산해서 광화문 광장을 걷노라니 내일 출근길이 끔찍하다. 뒤통수가 따가워 뒤를 돌아보니 내가 올랐던 인왕산 자락이 뿌옇다. 기분이 음침해진 나는 음료를 홀짝거리며 구로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요즘, 잠시라도 이 도시와 멀어지기 위해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히말라야 등정도 아닌데 고가의 등산복을 사서 동네 야산이라도 기어오른다. 형형색색 물감을 칠한 옷을 입고 좀비처럼 서울 근교 산들을 점령한다. 요즘엔 서촌과 삼청동을 잘 안 간다. 예전엔 참 아늑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북새통이다. 전 국민이 사진작가가 된 요즘엔 한옥 마을은 SNS의 숙주와 진배없다. 예전엔 홍상수 영화 촬영지를 걸으며 나만의 아지트로 느꼈는데, 이제는 골목마다 사람이 득실거린다.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서촌 사직단조차 커피를 들고 부유하는 사람들이 잠식했다. 이 도시에 과연 한적한 곳이 있을까. 더는 서울에서 살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난 여전히 이 속된 도시에서 숨 쉴 곳을 찾는다. 이제 조용한 골목은 씨가 말랐다. 부암동, 성수동, 문래동 어느 동네나 번쩍거린다. 저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산책자와 그들이 개척한 신대륙에 진입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는 추격자의 싸움이다. 그런 걱정도 잠시 신문로에 진입하자 작은 미술관이 여전히 건재하다. 그 한산함에 숨통이 틘다. 가격도 저렴하고, 사진전과 미술전이 빼곡하다.
여행 작가로 유명한 빌 브라이슨은 1951년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났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줄곧 영국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작가로 더 유명해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95년 첫 여행서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는 BBC가 꼽은 자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선정되었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영국인처럼 사고한다. 그는 영국에 대해 이런 애정을 표했다. “영국에서는 들판에서 산책하던 여성이 소 떼에 치여 중상을 입은 게 주요 뉴스로 나온다.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가 나도 그 주의 신문에서나 잠시 언급될 뿐인데 말이다.” 또한, 빌은 영국이 작은 나라여서 좋다고 말한다. 오랜 역사를 보존하고, 그에 걸맞은 인격을 갖춘 유럽인은 검소하며 요란 떨지 않는다. 늘 책을 달고 살며, 거리엔 카페가 가득하고 그 자그마한 땅덩어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을 보라. 유럽 어느 도시든 두 시간이면 걸을 수 있고, 그 안에 유서 깊은 박물관과 아기자기한 공원에서 산책하는 여유를 즐긴다. 발품을 조금만 팔면 곳곳에 깊은 역사를 증명해주는 유럽인다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가 영국을 향해 품는 애정은 유렵대륙이 가진 보편적 성향에 대한 동경으로 읽을 수 있다.
빌은 몇해 전 비로소 영국 시민권을 따냈다. 얼굴 한가득 심술을 머금은 빌 브라이슨은 뉴스에서조차 짓궂어 보인다. 그가 사는 영국은 현재 정치권의 일부 극우 행태와 브렉시트(Brexit) 결정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유럽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진 빌 브라이슨이라면 욕을 한바탕 퍼부어 줄 만한 상황이다. 그는 여행서 외에도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과학서를 써낸 바 있다. 그 외에도 사회과학 전 분야에 지루하지 않은 교양서를 다수 집필했다. 빌은 머리에 무스라도 좀 발라줘야 할 만큼 만취한 취객처럼 보이지만 지적 탐험은 근면하다. 또한, 어떤 주제를 다루든 유머를 빼놓지 않는다는 점도 고정 독자층이 탄탄한 이유다. 미국인이라면 치를 떠는 유럽인들이 그의 책을 사들이는 이유다.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 <나를 부르는 숲>은 듣도 보도 못한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이야기다. 이 코스를 구글로 검색해보면 빌 브라이슨 같은 배불뚝이 중년이 도저히 소화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무려 미국 조지아주에서 메인주를 관통하는 장장 3,360킬로 코스다. 게다가 골칫덩이 친구 카츠는 가는 곳마다 온갖 기행을 벌여 고행은 어림도 없다. 해마다 2,000여 명이 도전하지만 10%밖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이 악마의 코스에 배불뚝이 중년 남성 둘이 가방 하나 짊어지고 도전하는 사실 자체가 코미디다. 빌 브라이슨 기행문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잘 읽힌다. 고난을 비집고 솟아오른 유머랄까. 더럽고 흉측한 데다가 불만투성이에 비만인 불알친구 '카츠'를 통해 화장실 유머까지 소화한다. 원시림과 반짝이는 호수, 끝없이 이어진 산과 그 길을 걷는 빌 브라이슨과 카츠의 불평불만을 듣다보면 고난의 길에서도 사색의 맛을 깨닫는다. 대자연과 유머라니 즐거운 산행길 아닌가.
두 사람의 여정은 예상대로 포복절도한 에피소드를 잔뜩 남기며 끝을 맺는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트레일에 이름을 새겨 넣은 두 남자는 여행을 마치고 안도했을까. 숨넘어가는 시간과 사소한 다툼이 폭력으로 뒤바뀌는 투쟁의 시간에도 그들 인생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1,5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350개를 넘는 5개월 대장정을 끝마쳤으나 세상은 여전하다. 그건 포크너의 말처럼 문학의 효용을 묻는 질문에, 도움될 거 하나 없다는 시니컬한 대답과 같다. 하지만 포크너는 이내 돌아서서 덧붙인다. 소설을 읽으며 잠시 머리를 쉬고 가기엔 괜찮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이 문학과 산행의 공통점은 아닐까. 지나친 예찬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덮는 순간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내가 둘레길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할 때 느꼈던 무던함처럼. <나를 부르는 숲>은 알싸한 뒷맛을 남기며 일상으로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다음으로 <발칙한 유럽산책>은 작가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이자, 무엇보다 무용한 여행책의 대표 격으로 꼽힌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 여행을 가기 싫어질 수도 있다. 이 책엔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작가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온갖 불평을 해대는 통에 낭만이 깃들 새가 없다. 북유럽에 오로라를 보러 갔다가 호텔에서 싸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밤마다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셔대는 통에 숙취만 가득하다. 성격은 어찌나 고약한지 온 도시에 대고 일갈을 늘어놓는다. 관광지는 사람이 많다고 피하고 식당에선 별 심술을 다 부려대는 통에 골치가 다 아프다. 빌은 대머리에 뚱뚱하고 배고프면 성질을 내는 고약한 아저씨다. 그에게 여행이란 허황한 환상을 벗기는 작업일 뿐이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시큰둥한 태도 기저엔 유럽을 바라보는 냉철한 현실감각이 자리한다. 가령 북유럽의 자발적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이를 지탱하기 위해 시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살인적인 물가엔 비판을 가한다. 서유럽에선 거대 도시가 지닌 화려함 이면에 사치와 향락으로 찌든 도시의 천박함을 언급하고, 경제가 몰락한 동유럽을 묘사하는 대목에선 체제 경쟁에서 내쳐진 그들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무엇보다 미국인이라는 바깥의 시선과 유럽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지식인의 통찰이 버무려져 뒤틀린 유머를 빚어낸다. 각 나라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되, 여행 곳곳에 묻어있는 잔재미를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발칙한 유럽산책>의 저자 소개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문구가 있다. 난 거기에 덧붙여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여행 작가'라 칭한다. 빌 브라이슨은 1951년생 할아버지로 서른 무렵부터 영국에 살았다.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영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실제 영국인이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빌 브라이슨은 '더 타임스'와 '인디펜던트'라는 거대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그 기간 중 책을 몇 권 냈는데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시큰둥하고 매사 독설을 늘어놓는 빌의 영국식 유머는 수많은 고정 팬을 양산했다. 한국에선 '발칙한' 시리즈로 유명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작가는 유럽에 대해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그에 걸맞은 인격을 갖춘 곳이라며 애착을 표한다. 자그마한 땅덩어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람들은 늘 옆구리에 책을 끼고 거리엔 아기자기한 카페가 가득하다. 발품을 조금만 팔면 유서 깊은 박물관이 있고, 그 옆 그림 같은 공원을 산책하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미국과는 다분히 상반된 특성을 가진 유럽 문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여행기를 써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낭만이 깃든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선 불친절함을 비꼬고, 피렌체에서는 이탈리아 국민 특유의 낙천성이 빚어내는 유쾌함을 엿본다. 유명한 범죄소설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리플리>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프리섬은 불평투성이 빌 브라이슨이 감복한 근사한 경관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빌은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안 보고 로마에선 콜로세움을 언급조차 안 한다. 우선 인파가 북적거리면 성질이 나는지 도시 귀퉁이 자그마한 박물관으로 달아나버린다. 빌의 저질 농담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터키 술집 주인과의 한바탕 소동이나, 광장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이탈리아 커플의 추태를 묘사하는 대목엔 잔재미가 빼곡하다. 마치 프랙털(fractal) 현상처럼 지엽적인 사건에서 그 도시의 맥을 짚어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빌 브라이슨은 책의 말미에 북유럽에서 서유럽, 동유럽으로 이어진 여정을 끝맺는다. 애초에 계획대로 아시아 대륙까지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취소한다. 긴 여정이 가져다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한다. 여행을 멈춰야 할 때는 언제일까. 여행이란 자신을 추동하는 내적 동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시작과 끝을 자신이 온전히 짊어져야 마땅한 고유의 서사라는 사실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