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전에서
아침 7시는 운동 시간이다. 몸에 군살 하나 없는 자들, 지치지도 않는 자들. 난 그들 옆에서 처절하게 움직이고 있다. 율동 같기도 하고 에어로빅 느낌이 나는 운동이다. 땀이 후드득 떨어진다. 독한 놈들. 힘들지도 않나. 등 왼쪽 구석에 생긴 생경한 통증에 내 신체 기능성이 상당히 떨어졌음이 느껴진다. 오늘도 무리했다. 티 내지는 않지만 가까스로 열등의 감정, 경쟁의 심리, 질 수 없다는 오기를 숨기고 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며 눈을 꽉 감고 더 큰 바벨을 얹고 율동을 한다. 왕년의 준족 서정원보다 더 날래게 스텝을 밟는다.
옆자리 스무 살 청년은 그리스 조각같이 생겨서는 힘들지도 않은지 미소를 띠고 있다. 앞쪽 그룹에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연두색 타이즈를 티 나지 않게 보는 것도 포인트다. 45분 끝. 온몸이 젖어 이제 그만 가려고 포카리를 까는데, 신전에 선 그들은 웃으며 한 번 더 하자고 외친다. 다들 친해 보인다.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자극 좀 받으려고 신청했는데, 이상하게 학창 시절에 가졌던 열등감이 솟구친다. 주책맞게 뭐 하는 건지.
바닥에 앉아 두 팔을 뒤로 짚고 무릎을 쭉 뻗고 쉬는데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 폼롤러로 다리는 푸는 그리스 조각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뭐지? 생긴 게 아무리 봐도 미술학원에 있는 토르소 같다. 너는 수성구의 아폴론이니? 얼굴에 분칠을 한 것도 아닌데 희멀겋고, 눈에는 서클렌즈를 낀 것처럼 맑은 빛이 돈다. 그래 네 세상이다. 다 해 먹어라. 스윙스가 빅타니 쳐다보듯 그를 지켜봤다. 그는 갑자기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수고하셨어요, 파이팅 하면서 손뼉을 맞받았다. 빗나가서 틱 소리가 났지만 기분이 좋았다.
이제 일하러 갈 시간이다. 신전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지. 내가 일어서려는데 아폴론이 말을 걸었다. 저기 다음 달에 저희 팀에서 대회를 조를 짜서 나가는데 한 명이 부족해서요. 혹시 생각 있으시면 합류하시겠어요? 대회라고? 그는 당연히 내가 승낙할 거라는 표정이다. 그의 부드럽고 자신만만하고 느긋한 태도를 보자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늘 유쾌하고 멋져 보이던 고등학교 시절의 남자아이들이 떠올랐다. 학생회를 하면서 인기 최고인 학생회와 육상부에 드나드는 놈들. 여자아이들의 선망 어린 눈빛을 받던 자식들. 그 놈들은 굴욕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에게는 아무리 쫓으려 해도 달아나지 않고 머리 위에서 윙윙대는 파리나 모기처럼 굴욕이 따라다녔다. 그것이 나의 사춘기이자 10대였다.
도대체 진화의 원리는 무슨 생각으로 온 동네 통틀어 극소수만 내 앞에 서 있는 저 그리스 조각처럼 만들어놓은 것일까?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외에 이런 잘생긴 외모가 무슨 역할을 한단 말인가? 나도 외모의 신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 제시하는 가혹한 기준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평범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루저로 전락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와 대화하며 더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완벽했으며, 그의 생김새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뇨, 제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요. 난 단번에 거절했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정말. 아 그러세요? 아쉽네요. 그는 유유히 폼롤러를 타고 델포이로 사라졌다. 마음이 복잡했다. 왜 거절을 해? 시동을 걸고 가려는데 주춤거렸다. 네가 뭐가 바쁘다고 거절을 해? 맨날 놀면서. 같이 운동하면 몸도 더 좋아지고 또 얼마나 재밌을 텐데. 그리스 조각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마음에 걸리는 다였다.
그 친구를 따라가면 다재다능할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잘생긴 세상 모든 엄친아들이 다 모여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연두색 타이즈를 입은 아프로디테와 비너스 언니도 있을지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그래도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그 정도로 열심히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회라니, 가당치도 않지. 하루하루 이렇게 하는 것도 힘든데 말이야.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종의 패배 선언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걔들 옆에서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담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는 위치가 편하다. 그들은 그들과 같은 종과 어울려야지. 아쉽지만 보내준다 아폴론이여!
어려서부터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도망치곤 했다. 난 딱 몇 걸음 뒤에서 관찰하는 역할을 좋아했다. 내 본능이 매혹은 대체로 안전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트로이 전쟁만 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헬레네를 뺏겨서 벌인 전쟁 아닌가. 아름다움은 전쟁보다 위험하다. 물론 경험도 있다. 큰 곤란과 손해, 그 정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놉! 내게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볕 좋은 카페에서 읽는 소설이며 족하다.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써보는 스산한 이야기 정도가 좋다. 아름다움을 늘 그리워하지만, 그건 글 속에서 현현하다. 대신 이리저리 검색을 해서 울세라와 써마지, 리쥬란 가격을 검색했다. 장강의 뒷물결에 비치는 자외선이 가득하니, 축 처진 살을 끌어올려 보리라. 그리스 조각 뒤에서 춤을 추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