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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2. 2019

레일라 슬리마니

쉬운 답을 거부하는 날카로운 질문

 파리는 혼돈에 휩싸였다. 파리의 중심부 애비뉴 클레베르엔 깨진 창문이 즐비했고, 에투알 개선문은 스프레이 낙서로 얼룩졌다. 시내 곳곳에선 시위대가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상점과 레스토랑을 약탈했다. '저기가 내가 우러르며 돌아다녔지 낭만의 도시 파리라고?' 난 믿기지 않는 뉴스 화면을 지켜보며 수십 명의 부상자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걸 지켜봤다. 전 세계 언론은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대라 불리는 세력을 너 나할 것 없이 보도했다. 대부분 파리의 노동자 계층으로 보이는 대규모 시위대의 화력은 마치 68년에 있었던 5월 혁명을 재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대다수 언론은 사건의 원인으로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따른 삶의 질 하락을 꼽았다.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대표되는 프랑스라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분노가 쌓여온 것이다.


 프랑스는 모두가 알다시피 먼 옛날부터 혁명에 굶주린 땅이었다. 이름난 프랑스의 일류 작가들은 대도시 파리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어두운 현실을 책으로 썼고, 시민들은 문학을 통해 새로운 변혁을 꿈꿔왔다. 요즘도 젊은 프랑스 작가들은 파리의 사회상을 소설로 녹여 도시에 내재된 문제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신예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단연 눈에 띄는 여성 작가다. 그의 공쿠르상 수장작 이기도 한 소설 <달콤한 노래>의 시작은 이렇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알 수 없는 화자가 딸의 죽음을 선언한다. 보모가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되지만, 그녀는 살해 직후 자살했다. 맞벌이하는 부부는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피해자 부부는 안정된 삶을 살았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 두 아이는 부부의 화목을 증명이라도 하듯 행복해 보였다. 피의자인 보모는 부부의 배려에 가족처럼 지냈던 것처럼 보인다. 보모의 근면함과 꼼꼼함에 반해 가족여행까지 같이 다녀왔다. 보모는 일을 잘하는 걸 넘어 우아하고 정갈한 사람이기에 부부는 큰 신뢰를 보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아이를 죽였을까.


 난 이 소설 도입부를 좋아한다. 모든 범죄소설 작가가 핵심으로 생각하는 ‘후더닛’(Whodunit)을 쉽사리 포기한다. 한 여자가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선언 후에 나올 얘기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이제부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할 거라고 귀띔하는 셈이다. 이 끔찍한 사연을 들을 자신이 없으면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타이른다. 그 누구도 아이가 죽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갸기를 깊이 들여다볼 마음이 없이는 읽기 어려운 작품이다. 아이의 죽음을 보도하는 뉴스에서는 말한다. 한 보모가 신변을 비관해 홧김에 아이를 죽였다고. 매스미디어는 살인의 처참함을 주말 드라마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살인 현장을 비추고 범행 묘사에 공을 들인다. 피해자를 동정하는 척하며 근거 없는 추정을 덧붙인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언론 보도나 세간의 추측과는 정반대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시에 담긴 복잡한 결을 하나씩 풀어내며 이 사건이 우리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음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마그레브 지역 모로코 출신 프랑스인이다. 불어로 글을 쓰지만, 표지 사진엔 북아프리카 출신 특유의 외모가 드러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엄마’가 모로코계 성공한 법률가 ‘미리암’이다. 잘생긴 백인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경력 단절로 괴로워한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출산으로 인한 휴직은 여성에게 치명적이다. 사회 지위나 경제 능력으로나 미리암이 남편보다 더 유능해 보이지만, 출산을 이유로 그녀는 경력 단절을 감내한다. 미리암은 자신이 택한 양육이 진정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미리암에게 직장에 복귀할 좋은 기회가 오고, 어렵사리 유능한 보모를 고용하게 된다. 부부는 파리 최고급 아파트가 즐비한 중심가에 살지만, 보모는 파리 외곽 10구 낡은 원룸에 거주한다. 보모는 생활고에 집을 빼앗기고 딸의 가출로 혼자가 된 사람이다. 외모는 전형적인 프랑스 백인이지만 구제할 길이 없는 처지다. 소설은 인종 차별, 프랑스 사회의 빈부격차, 도시에 뿌리내린 계급적 박탈감, 무차별한 성차별, 우발적인 폭력, 빈곤층의 소외된 삶을 다룬다. 프랑스라는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문명국 안에 자리한 비참한 현실을 비춘다. 누군가 이 소설을 싫어한다면 범죄 소설 특유의 긴장감이 없다는 배신감에 있으리라. 소설은 사회 의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플롯을 지탱하며, 끝내 다 읽어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달콤한 노래>는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질문에 그치지 않고 마치 모든 사람에게 전담 변호사가 붙여준 것처럼 그들 각각의 진술을 다 들어본다. 낙타를 쓰러트린 마지막 깃털 하나가 아니라, 한 인간에게 켜켜이 쌓인 분노의 원천을 찾아 나선다. 지난하고 고된 시간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격이 도외시된 세계를 더듬고자 문학은 그 자리에 존재할 테니.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엔 선승 같은 사람을 따랐다. 눈은 음침하고 매사 오소독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을 내놓는 선배. 술자리에선 세상을 향해 일갈하며 주위의 중생들을 긍휼히 보는 상남자. 그의 사이다 같은 통찰을 동경했다. 종종 술자리에서 먹태를 뜯으며 그를 보노라면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보기 드문 장광설에 코웃음을 치다가도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빠져들었다. 그는 내 복잡한 머릿속을 가지런히 다졌고, 때론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주었다. 요즘엔 그런 사람을 멘토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난 어른이랍시고 하는 그의 말이 고깝다가도 어쩐지 위로를 받곤 했다. 난 매사 허둥대며 하루 수습하기 급급한데, 그는 늘 정답을 확신하며 말을 꺼내니 생맥주를 들이켜는 것처럼 시원하고 좋았던 것 같다. 난 단정하듯 말하는 그의 말투가 의심스러웠지만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몇몇 일들이 그를 멀리하게끔 만들었다. 그가 내지른 말들이 다른 사람을 할퀴고 확신이 오해로 바뀌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입장을 달리하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그는 결코 송강호가 아니었다. 그의 통찰은 그 순간에 적절했지만 유효기간이 짧은 요구르트처럼 금세 쉰내가 났다.


 여기 오늘 서울에도 파리 못지않은 갈등이 들끓고 있다. 광장에서는 목소리를 높인 선동가들이 듣기 좋은 말로 대중을 유혹하기 바쁘다. 난 그곳 어느 카페에서 질문으로만 가득 찬 책을 읽는 중이다. 실 뭉텅이 같은 삶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기를 쓰며 밑줄을 친다. 오히려 머리는 더 복잡해졌지만 속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쉬운 답은 늘 거짓이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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