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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l 01. 2020

뛰기에 썩 좋지 않은 동네

소재 <서울>

 서울은 운전이 버거운 도시다. 비좁은 골목길은 주차하기 번거롭고 꽉 막힌 도로에 서면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서울은 걸을 때 살만한 도시로 느껴진다. 난 서울이 자랑하는 거미줄 같은 지하철로 시내 곳곳을 쏘다닌다. 주말 오후 선선해질 무렵 이어폰을 귀에 꽂고 꽉 막힌 차로를 굽어보면 우월한 기분에 휩싸인다. 즐비한 고급차를 스치며 여유롭게 골목들을 헤집는다. 난 주변 친구에게 자주 러닝을 예찬한다. 매일 삼십 분 이상 뛰면 워커스 하이'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힘들기보단 끓어오르는 뭔가가 있다고 일러준다. 적당히 몸에 피가 돌고, 잡념이 사라지면서 허기마저 사라진다. 소비한 열량을 근처 백반집에서 재충전하고 나면 소화도 잘되고 이른 저녁에 잠이 쏟아진다. 이것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이 아니다. 보기 드문 확고한 기쁨이다. 


 이런 나도 잘 뛰지 않는 동네가 강남이다. 어릴 적엔 강남역 6번 출구 지오다노 앞을 약속 장소 삼아 놀았고, 돈 좀 생기면 롯데월드에서 석촌 호수를 보며 자이로드롭 타는 걸 좋아했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강남행 버스는 타지 않는다. 교통지옥에다가 공원과 골목길이 드문 이 삭막한 도시를 찾을 이유는 없다.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큰아들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 70년대 후반부터 개발과 성장이라는 명령에 순응하며 변화를 거듭했다. 상전벽해는 강남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결국엔 돈 잘 벌고, 떵떵거리며 잘 나가는 집안 자랑이 됐건만, 때 이른 출세 때문이지 동생과 주변 가족을 챙길 줄 몰라 원성을 산다. 하지만 잘난 아들이라 어딘지 모르게 고고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천박하고 세속적인 구석도 있다. 계급주의에 찌든 이 도시는 경제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에 밀려난 이들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강남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거품을 무는 건 열등감일 수도 있겠다. 강남 집값을 풍문으로만 듣는 입장에선 그들이 사는 세상을 부정하는 게 가장 손쉬운 일이다. 


 최근 서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발로로 <강남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누구나 강남스타일과 교보문고 사거리를 알지만, 돈으로 상징되는 이 거대한 도시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도시 개발자로 유명한 한종수와 서울시에서 도시 개발자로 일했던 강희용 박사가 쓴 강남 탄생 비화가 흥미롭다. 그들이 말하는 강남은 곧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저개발의 기억이다. 잘 살고 싶었고, 돈 많고 싶었던 열망은 천박하고 경악할만한 사건을 일으켰다. 배밭으로 가득한 평당 오백 원짜리 시골 마을에 타워팰리스 들어서기까지의 역사가 책에 고스란하다. 허허벌판 소달구지가 종종 눈에 띄던 이곳이 어떻게 교통지옥이 되었을까. 지속하는 홍수로 거주지로 부적합했던 한 도시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바벨탑을 쌓게 된 경위도 상세히 나와있다. 86년 강남구 일원동 낡은 공무원아파트에서 태어난 내겐 그 맥락이 중요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속살을 읽어내길 바랐다.


 군사정권 막후 아래 신흥 졸부가 탄생하고, 지하철과 한강 다리가 놓이면서 강남 이주는 본격화된다. 엉망으로 설계된 도시계획 아래 삭막한 빌딩 숲이 들어서고, 오로지 차들을 위한 대로가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으로 한국은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벗어던지며 신흥 경제 대국 행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던 강남 개발은 94년도 성수 대교 붕괴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자인한다. 내가 TV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유년 시절 이 사건은 또렷한 기억을 남겼다. 방송국 카메라는 헬기에서 재난의 스펙터클을 좇는다. 날벼락 맞은 사고 현장이 우리 집 거실에 실시간으로 보여졌다. 중간에 다리가 끊어진 형상은 기이한 구석이 있는 악몽이었다.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수가 화면 구석에 표시됐고, 저곳이 내가 사는 아파트와 불과 삼십 분 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한다. 이곳은 당시 강남 부유층의 주된 쇼핑 코스였다. 사고로 백화점 안에 있던 고객 1,500여 명이 모두 매몰되었고, 1천여 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었다. 피해액은 약 2,700여 억 원으로 집계됐다. 사고 현장은 연일 뉴스특보에서 영화관에서 볼만한 거대한 재난을 찍어냈다. 생존자가 있었고 악당 역시 엄연했다. 뉴스 앵커는 부동산 광풍과 투기, 속도에 매몰된 건설사의 날림 공사를 지적하며 추가적인 사고 예방 조치가 시급하다고 보도했다. 한 신문에서는 1면에 삼풍 사건을 "한국 현대사의 개발주의가 만든 병폐"라고 요약했다. 정말 그런 걸까. 난 이곳에 갇혀 죽은 개개인이 다뤄지지 않음이 의아했다. 난 그저 백화점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정말 '개발주의'라는 말에 매몰될 만큼 무의미한 희생양에 불과한 건지 따지고 싶었다. 그 건물 안에 생계를 위해 긍긍하던 우리 아버지 같은 이들도 있을 텐데. 누군가에게 그곳은 자신의 출세와 운명을 같이한 일터였을 텐데. 내 가족 역시 강남이라는 영향 아래서 별이 떨어지길 바랐고, 중산층을 향한 열망에 쉼 없이 고꾸라졌다. 지금 이 시각, 붕괴 현장을 밀어내고 들어앉은 세련된 고층 아파트엔 누가 살고 있을까. 쓸려간 이들이 부재한 공간엔 망각이 엄연한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운전을 싫어하지만, 가끔 비가 올 때 운전대를 잡는다. 시동을 걸자마자 미세한 진동과 함께 즐겨 듣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날의 날씨에 맞춰 선곡하고, 라디오 채널을 돌려보며 기분을 점검한다. 운전이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반한다.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목적 없이 서울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한강 다리 밑에 주차를 한다. 도회적인 서울 야경을 보며 달리기 시작한다. 이 복잡한 도시에서 놓여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아마도 이 세속 도시에서 계속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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