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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n 21. 2020

한강다리를 뛰며 생각한 것

소재 <한강>

 자주 한강대교를 뛴다. 늘 유산소 운동이 부족해서 퇴근하고 집까지라도 뛴다. 과식의 죄책감을 덜어내기에 괜찮은 거리다. 퇴근하기 전에 구글에다가 석양을 적으면 하늘이 무르익는 시간을 알려준다. 이왕 걷는 거 노을 아래를 뛰고 싶어서 때맞춰 간다. 회사에서 삼십 분가량을 뛰면 대교에 다다른다. 이제 막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라 눈부시지만, 시야가 트여 속이 다 시원하다. 영화 <버닝>을 본 후로 저무는 해만 보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와 배고픈 춤을 추던 혜미가 떠오른다. 노들섬 즈음에 다다라 주위를 보니 오늘따라 유달리 자전거가 많았다. 한때 나도 열심히 탔는데, 이상하게 자전거는 쳇바퀴에서 노는 햄스터가 된 기분이 들어 쉽게 지쳤다. 그냥 설설 뛰는 게 단출하고 가벼워 나와 잘 맞는다. 난 예술 작품에서도 걷고 뛰는 모습에 매혹되곤 한다. 영화 <와일드>나 <아가씨>를 자주 보는 것도 주인공이 걷고 뛰는 모습이 좋아서다. 사람 인(人)자가 걷는 모습이랑 비슷하고, 티베트어로 인간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고 한다. 나는 내가 줄곧 걷는 사람이길 바라 왔고, 그럴 수 있길 희망한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오늘 처럼 좋은 날씨에 꽉 막힌 대교에 갇혀버린 수많을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을 유유자적 뛰고 있자니 한껏 우월한 기분이다. 어찌나 경적을 울려대는지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 귓속에선 우악스럽게 트럼펫을 불어대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Generique'가 흐르고 있다.


 서울은 한강이 없으면 다른 대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유럽에서도 이처럼 큰 강을 지닌 도시를 찾긴 어렵다. 한강대교는 한강 남쪽이 영등포뿐이던 시기부터 버티고 서서 여의도와 육삼빌딩을 한눈에 비추고 있다. 지평선을 볼 수 없는 도시에서 눈을 멀리 둘 수 있는 공간은 귀하다. 난 다리 위에서 천천히 뛰며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길 좋아한다. 그러다가 눈 감고 망막에 붉게 띄워진 잔영을 응시한다. 망막엔 붉은 자국이 난무하고, 현실의 둑을 무너뜨리는 온갖 형상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난 나비의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건지 아득해졌다. 얕게 부는 바람과 지친 몸, 흔들리는 손과 귀에서 울리는 음악이 뒤섞이면서 온갖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등교할 때도 비몽사몽간에 이런 호접지몽을 즐기곤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추운 몸을 햇살에 녹이며 학교로 걸어갔다. 물론 지각이 잦아서 허겁지겁 뛸 때가 많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문제는 이렇게 걸으며 감상에 젖으면 좋았을 때보단 슬프고 음울했던 시간이 더 자주 떠오른다는 점이다. 슬픔에 빠진 내 모습에 취했던 싸이월드식 감성에 젖는다.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처럼 맹목적인 자기애가 피어난다. 아마 이 센티멘털리즘은 죽기 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속상한 일이 있었다. 요즘도 종종 생각나지만, 당시만큼 고역스럽진 않다. 지금 떠올리면 슬며시 웃을 정도로 별것 아니었다. 당시엔 집에 혼자 있는 게 두려워 온 동네를 뛰다 귀가했다. 대충 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강에서 뛰기 위해 지도앱으로 길을 찾고 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려 해도 단어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치기가 삐져나왔다. 시선이 닿는 어디라도 주의를 기울이며 견디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책은 아무 때나 읽어도 좋지만, 결코 하루 노동처럼 시간을 잡아먹지는 못하더라. 속 터놓을 상대는 드물고, 내 미욱한 감정은 갈피를 못 잡고 고꾸라졌다. 그저 어딘가 몰두할 수 있을 때 점차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릴적에 따르던 상관이 하루가 멀다고 잔소리를 하며 제군은 직무와 물아일체가 돼야 한다고 일갈했는데, 이제 듣기 싫었던 그 소리가 꽤 와닿는다. 누구 도움 없이 그럭저럭 잘 해내려면 규칙적인 노동이 중요하다. 


 그날도 혼자 속을 끓이고 있었다. 식당 의자에 앉아 잘 넘어가지 않는 밥을 씹으며 백색 소음에 기댔다. 잠시 후에 낯익은 녀석이 식판을 들고 옆에 앉았다. 이 거구는 그간 몇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외국인 친구였다. 가뜩이나 목구멍으로 밥알이 안 넘어가는데,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쓰며 점심시간을 보내긴 싫었다. 그러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대충 먹다가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는데, 눈인사하고 하나 마나 한 안부를 묻다 보니 눌러앉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온갖 손짓을 하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어떻게든 주어 동사 서술어를 붙여가며 그에게 내가 제정신이 아님을 이해시키고 있었다. 역시 언어는 실전이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지 서른 넘어 처음 알았다. 이 친구도 뭔가 심각한 걸 느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이놈 완전히 맛이 갔구나 싶었을 거다. 불과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녀석은 차갑게 식어가는 밥은 안중에 없이 내 얘기를 들어줬다. 고개를 끄덕이며 날 다독였다. 어떻게 그 자리가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내 감정을 쏟아붓고 훌쩍 자리를 떴겠지. 며칠 후 녀석을 마주했을 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땡큐 쏘 머치, 하기엔 뭔가 부끄러웠다. 좀 더 곡진한 말을 보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었다. 며칠 후 장문의 편지로 고마움을 표했고, 녀석의 거대한 등판처럼 따스한 답장이 왔다. 


 난 앓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터놓았다. 보름가량 잘 삭이고 다지던 투정을 그 순간 쏟아냈다. 나는 서울 시내 무수한 신경정신과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스키너의 행동심리학 책을 보면 트라우마를 견디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직면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코앞에 두고 경험하고 느껴보며 익숙해진다. 두려운 감정에 노출하고 무디게 하여 감정의 동요를 멈춰 세운다. 낯선 친구는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난 그 시간을 딛고 점차 나아졌다. 말로 꺼내놓는 것 그 자체로,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로, 무언가를 꺼내놓는 행위 자체가 감정을 객관화한다. 글씨는 삐뚤삐뚤해서 보기엔 형편없지만, 입에서 쏟아진 상처는 종이 위에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자신을 사랑했던 나르키소스가 강물에 비친 제 얼굴에 흠뻑 취했던 것처럼, 자의식 과잉의 말로는 다 내가 쓴 블로그에 담겨있다. 나를 가지고 놀고, 나를 비하하고, 나를 치하하며 논다. 나로 수렴하는 글은 늘 안전하니까. 나르키소스처럼 죽어서 수선화가 되진 못할지라도 우선 이 지독한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올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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