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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11. 2021

고양이와 함께한 아침조깅

운동 <러닝>

 어제는 아침부터 집에 틀어박혔다가 좀이 쑤셔 동네를 뛰었다. 한참을 뛰다가 늘 다니던 공원 한복판에서 검은 고양이와 마주쳤다. 주위엔 아무도 없고 고양이만 떡하니 내게 걸어왔다. 환한 낮이라 그런지 검은 고양이는 더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마치 방금 읽다가 나온 <방구석 미술관>에서 읽은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나온 도발적인 검은 고양이처럼 보였다. 보통 길고양이가 마주침을 피해 차 밑이나 건물 사이로 사라지는 것과 달리 이 녀석은 멀리서부터 나를 보며 다가왔다. 난 느닷없는 접근에 멈춰서서 이어폰을 떼내고 녀석을 바라봤다. 나는 영문을 몰라 살짝 길을 터줬음에도 녀석은 내 동선을 읽고 굳이 나를 마주했다. 거의 두 발자국 가까이 왔을 때 나는 주저앉았다. 일종의 간택 의식이 시작되는 건가. 이런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는데. 길 가다가 고양의 선택을 받아 키우게 되었다는 신앙 간증과 같은 얘기를 어느 술자리에서 들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 고양이를 모시며 살고 있다. 근데 보통은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그런다고 하지 않았나. 난 갸웃하며 다 큰 고양이와 면대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처럼 당당했고 표정은 덤덤했다. 난 사채업자에게 추심을 당하는 기분으로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다. 우선 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고양이를 집에 들여봤자 밖으로 도는 주인 때문에 더 외롭고 고달파질 게 뻔하다. 운이 좋아서 고양이가 고독을 즐기는 타입이라 해도 내 집은 세간도 없고 휑해서 이 공원만도 못할 거다. 가스비 아끼려고 보일러도 거의 틀지 않으니 온 지 이틀 만에 후회해서 팔자를 고치려 들 거다. 그냥 다른 사람을 택하는 게 좋겠어. 난 그런 눈빛을 보내며 녀석을 달랬다. 근데 내 몸은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향했다. 장을 본 마트봉지를 왼손으로 바꿔 들고 남은 손을 녀석에게 뻗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이 야옹야옹하며 굽은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봉투를 내려놓고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고양이의 몸에는 곳곳에 흙과 먼지, 낙엽 같은 게 붙어있었다. 털이 뒤엉켜있고 마치 해병대 캠프라도 다녀온 것처럼 몸은 딴딴했다. 잘 살펴보니 군살이 하나 없는 게 잘 못 먹고 다닌 것 같았다. 아마도 쉴 새 없이 돌아다녔겠지. 그래서 그런지 우아하고 날렵해 보였다. 역시 다이어트의 효과란. 나는 흥분해서 그르렁거리는 고양이를 구석구석 만져보았다. 왜 도망가지 않는 거지. 아니 이렇게 몸을 맡기면 그냥 가버릴 수가 없잖아. 난 뭔가에 휘말리고 있음을 느끼며 이제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해야 하나. 아니면 몰래 키울 수 있을까. 혼자 외로우면 내가 집에 자주 가면 되지. 사룟값은 얼마나 드는 거지. 키우려면 병원을 우선 데리고 가야 하나. 나도 목욕을 잘 안 하는데 내가 고양이를 목욕시켜준다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느라 정신이 없어졌다. 녀석은 눈도 예쁘고 상처 난 곳도 없어 보였다. 나는 봉투에서 참치캔을 까서 줘봤다. 고양이는 무척 배가 고팠는지 몸을 비틀면서 순식간에 한 캔을 다 해치웠다. 빈 캔에 물도 좀 따라줬다. 친구 이래 봬도 이거 제주도 삼다수야. 고양이는 물도 거의 다 마셔버렸고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이 자기 몸을 마구 핥아대다가 피곤해졌는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녀석은 마치 빨리 집에 가서 쉬자는 듯 몸을 웅크리고 비벼댔다.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집 앞 공원 한복판에 주저앉아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무릎을 고정하고 손으로 온기를 보전하려 애쓰며 녀석을 쓰다듬었다. 이 조그맣고 부드러운 고양이가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는 건 이 친구가 어디선가 누군가의 반려묘는 아니었을까 짐작게 했다. 나는 뭉클해져 고양이의 가슴에 손을 대고 심장 박동을 느껴보았다.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만지며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분을 무릎을 꿇고 녀석을 쓰다듬다 이제 이 녀석을 데리고 가야지 마음을 먹은 차에 고양이는 무슨 환청이라도 들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옆길에서 노란색 재킷을 입고 가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게 다가왔던 것처럼 성큼성큼. 그녀는 날씨보다 추워 보이는 옷차림에 여름용에 가까운 둥근 스커트를 입은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그녀의 가방은 내가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명품으로 보였고 평범한 흰색 스니커즈가 얼룩덜룩했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그 모습을 지켜봤고, 여성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녀석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나처럼 마트를 다녀온 모양인지 오늘 자 이마트 특가상품인 칼집 삼겹살 한 근이 보였다. 그녀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입술을 약간 비죽였을 뿐 으레 그래 왔던 것처럼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었다. 마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만드는 능숙한 바리스타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저렇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거지.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버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으며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세계에 잠시 살다 온 기분이 들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뭐더라, <고양이의 보은> 같은 작품이 떠올랐다. 왠지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을 하나 손에 쥔 기분. 단 이십 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겼던 것이다. 텅 빈 집을 치우고 맞아야 할 자식이 생긴 기분에 가슴이 덜컹했다. 잠시 또 다른 인생의 맛을 본 탓에 뭔가 부족하고 찝찝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도감도 들었다. 어떤 책임의 사슬에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녀석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여기까지 온 걸까. 그리고 누구를 찾고 있었던 걸까. 왜 날 택한 걸까. 왜 나를 버렸을까.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양이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양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녀석의 한탄을 잘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고양이의 언어를 모르다 보니 녀석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지 못해 날 떠났을지도. 그녀는 고양이의 언어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건 갸르릉 거리는 소리처럼 인간의 언어보다는 눈빛과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겨울을 사는 나와 달리 몸이 가벼워 보였던 봄기운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인도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나 분위기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무척 심란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서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을 만끽했다. 장 봐 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다 넣고 삼겹살을 굽기 위해 에어프라이어 뚜껑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창밖을 내다봤다. 날 따라온 건 아니겠지. 녀석은 그녀 품에서 행복해 보였으니까 된 거라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눈과 모양새가 우아하고 야해서 배우 김민희와 닮아 보였다. 난 어느새 녀석의 이름까지 미니로 지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면 '지지'는 어떨까. 에두아르 마네가 키웠던 검은 얼룩 고양이 이름이 지지였다지. 털 색이 불규칙하게 섞인 얼룩 고양이(tortoiseshell cat)를 서양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징표로 여긴다고 한다. 마네는 아내의 무릎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지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작업실 벽에 걸어뒀다. 난 식사를 하고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꺼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런 얘기는 말로 발설하는 순간 시시해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구구절절하면 촌스러운 예술영화처럼, 대사 없이 분위기로만 이해해야 제맛인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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