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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14. 2021

담배 냄새를 어찌 피할 수 있을까

#19 연기에다 말을 섞어 내보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A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곤 했다. 어제 입던 옷을 대충 걸친 나완 달랐다.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늘 몸에 딱 맞는 세련된 옷차림을 고수했다. 전체적으로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차림이었지만 군살 없는 체형 탓에 튀진 않았다. A가 걸친 옷은 보는 이가 절로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잘 어울렸다. 비싼 브랜드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안목이 있는 차림이었다. 매일 다르게 입고 오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날의 양복에 맞춰 넥타이만 다르게 하고 올 때가 많았다. 셔츠는 늘 하얀색에 주름 하나 없었고, 구두에는 얼룩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 사무실 구석 자리에서 파티션 위로 얼굴을 내밀고 A와 인사를 나누며 옷차림을 구경했다. 입을 살짝 벌리고 감탄 어린 표정이 너무 티 나지 않게 아래위로 살폈다. 계속 구경하다 보면 나도 저런 맵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A는 근처 스타벅스에서 텀블러에 오늘의 커피를 담아왔다. 아마 점원에게 따듯한 물을 담아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겠지. 한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는데 거기엔 그가 직접 싸 온 도시락과 운동복이 있다. 혼자 살면서 매일 정갈한 도시락과 잘 개어진 옷을 들고 올 수 있다니. 평범한 토트백도 A가 들면 아주 세련되어 보였다. 가방을 드는 데도 요령이라는 게 있는지 내가 매면 이민가방처럼 보일 차림을 A는 멋지게도 소화했다. A는 짐을 내려놓고 바로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랐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커피잔을 들고 따라나섰다. A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옥상에서 떠드는 시간을 좋아했다. 사실 A가 싫어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얘기가 하고 싶었다. A는 담배 냄새가 내 옷에 밸까 우려하지만 사실 그럴 염려는 없었다. 왜냐하면 A는 무슨 흡연예절이나 품위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주 요령껏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적정한 거리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담배를 끼운 손을 적절히 가리면서 자연스럽게 태워나갔다. A는 담배뿐만 아니라 일적인 면에서도 늘 적절했다. 사회생활에서 정도껏이라는 걸 배우고 싶다면 그를 종일 지켜보면 된다. 나처럼.


 사실 내 옆자리 동기는 A를 따라나서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비흡연자가 흡연자를 따라가는 건 민폐라나. 물론 A는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공원을 걷다가 마주친 레트리버처럼 나를 반겼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 뭔가 통하는 느낌에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내 연애와 글, 요즘 하는 일과 동료의 험담까지 가라지 않고 그에게 얘기를 했다. 지극히 사적인 것들도 거리낌 없이 털어놨다. A는 마치 공부 잘하는 우등생처럼 아주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줬다. 누가 보면 내가 되게 재밌는 얘기라도 하는 줄 알았을 거다. 10분이 채 안 되는 A와의 아침 시간은 내 글과 문학에 피드백이 되었다. 내 책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똥파리 같은 친구들과 술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했다. A가 부서를 이동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가끔 혼자 옥상에 올라 흡연자들 곁에서 커피 믹스를 마시는데 그와 나누던 자투리 시간이 무척 그립다.


 난 흡연자를 곁에 두길 싫어했다. 막연하게 흡연자는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근데 A를 만난 후로 담배를 피워도 멋스럽고 깔끔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담배가 나쁜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문제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 건 아니다. 요즘엔 담배를 피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담뱃값은 점점 더 오르고 금연구역은 점점 더 협소해진다. 요즘 담배를 피우려면 고등학생처럼 숨어서 피워야 한다. 가령 어제만 해도 스타벅스에서 화장실을 갔더니 누가 떡하니 금연 스티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난 그 남자를 노려보고 점원에게 일러바쳐서 어리석은 흡연자를 쫓겨나게끔 했다. 꽤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이었는데 나 때문에 우스운 꼴을 당한 것이다. 오죽 필 데가 없었으면 저랬을까 싶지만 지킬 건 지켜야지. 날씨는 춥고 같이 온 여자 친구는 담배 피우는 걸 싫어하니 나름대로 숨어서 피운 거였는데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서럽긴 했을 것이다. 아무리 담배 피우는 게 멋져 보여도 냄새에 민감한 이 도시에서 흡연자는 외로운 신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A만큼 깔끔하고 분위기 있게 즐기진 못할 것 같다.


 내 지난 연인 중에 흡연자는 없었다. 위생이나 냄새에 민감해서라기보다 은연중에 어떤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 몇 달 정도 사귀던 친구가 흡연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있는 걸 모른 채 다른 남자와 깔깔 웃으면서 맛있게 담배를 태웠다. 당황스럽고 어색한 순간이었다. 그때 공기와 냄새가 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와 전과 같이 잘 지낼 수는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웃긴 건 내가 그에게 따지듯 물은 첫마디가 가관이다. 겉 담배야 속 담배야? 나는 그게 왜 궁금했을까. 왜 나는 그녀가 진짜 흡연자가 아니길 바랐을까. 그녀의 건강을 위해서? 아니지 아니지. 난 그저 내 연인이 오해와 착각의 산물이 아니길 바랐던 것 같다. 다시 내가 알던 사람으로 거리를 좁혀오길 바랐다. 그래서 거짓말로라도 해주길 바랐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그 기억이 날 따라다녔다. 어딘지 모르게 곱씹고 싶은 장면으로 되살아났다. 그때 옷차림과 서교동의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폴 고갱이 담배 피우는 타히티 여인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그린 것처럼 기억은 덧칠과 윤색을 반복했다.


 나는 영화에서도 흡연 장면을 꽤 잘 기억하는 편이다. 최근 우디 엘런의 영화 <맨하탄>을 봤더니 여자 친구와 술을 마시던 남자가 겉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말인즉슨, 이 멋있는 걸 안 할 수가 없으니 뻐끔대며 흉내라도 낸다는 식이다. 이 짧은 인생 나도 멋있게 한 모금 들이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는 수원 화성행궁 근처 호스텔에서 담배를 피우던 염보라(고아성)를 보며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는 쪼그만 게 너무 예쁘다고 말한다. 영화 <황해>에서 하정우는 컵라면과 핫바보다 담배를 더 맛있게 피운다. 한겨울에 논현동 어느 빌딩에서 새벽까지 건너편 빌딩(99-1번지)을 염탐하던 그는 고달픈 시간을 달래기 위해 줄담배를 피워댄다. 긴장과 불안, 허기와 추위, 통증과 초조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써 담배는 제 기능을 다한다. 그 모습은 과거 알바를 할 때 컨테이너 사무소에서 인부를 관리하던 십장 아저씨의 흡연을 떠올리게 했다. 긴 하루가 끝나갈 때 딱딱하게 뭉친 몸을 풀어내는 무참한 연기가 밀폐된 컨테이너를 꽉 채웠다. 일당만 받으며 집으로 튀어갈 수 있었던 나는 눈과 코가 메워서 창문을 열고 싶어도 꾹 참았다. 그가 무안할까 봐 그냥 견뎌냈다. 그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고 외로워 보였던 것 같다. 책상 위에는 얇은 마일드세븐이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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