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책이 모여있는 도서관을 바라보는 도시인의 시선

by 박민진

주말 아침,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딱히 뭘 보겠다는 게 아니라 고요하고 정돈된 미술관이 그리웠다. 늘 비스름하게 돌아가는 주말에 저항하고 싶었다. 낮인데도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이 전부 음울해 보였다. 이상한 만족감이 들었다. 일찍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간의 노동에 찌들어 자빠져있고픈 충동을 이겨낸 자들과 같은 배를 탔으니까. 비록 꼬리 칸이라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으니 고개를 쳐들 만했다. 어쩐지 음울한 그들의 표정에서 내적 갈등의 외적 징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 고여 든 생각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제 술자리에서 그가 뱉은 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냉정한 말투. 적어도 며칠은 따라다닐 눈빛이었다.


전시회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시적으로 찍힌 사진들을 차례로 음미하며 걸음을 떼어놓는 동안 감정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그림 속의 혼돈을 통째로 끼얹은 것처럼 고양감에 휩싸였다. 차가운 미술관의 공기와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겹쳐지면서 공복으로 해방감이 들어찼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점심시간. 그런데 갑자기 어떤 여자의 휴대전화 벨이 정적을 깼다. 나는 무척 기분이 상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건 어쩌면 분노가 아니라 허기일지도 몰라 진정해. 한 소리 쏘아붙이지 못하니 앙칼지게 노려봤다. 미술관 로비에 있는 간이 커피숍에서 단 커피를 마시고 공복을 달랬다. 전율에 가까운 카페인과 설탕의 급습이었다.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대형 유리문을 조금 열자 공기에서 축축한 박하 냄새가 났다. 요즘 주말이면 늘 이 도서관을 들른다. 내가 가는 곳이 뻔하지.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최근 사람들이 대출한 책들을 훑어봤다. 요즘 사람들이 뭘 읽나 궁금했다. 광고의 농간으로 조작되기 마련인 서점 베스트셀러보다, 사서가 공들여 집계해서 벽보로 붙인 도서관 대출 순위를 더 신뢰한다. 아니 대체 정세랑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쉬지도 않는지 김진명 책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와 다른 취향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는 생경한 순위표였다. 나는 자리를 이동해서 신간 도서 서가로 갔다. 지난 보름 내내 새로 도착한 도서에 탐욕을 부려봤다. 공짜니까 가득 들고 자리에 앉아 목차와 서문만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수많은 책이 새로 만들어지는 데 경외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 책이 많은데 내 책은 없다는 게 괜히 울적해졌다. 신간 도서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요즘 작가들의 시선이 차갑거나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낙관적이고 공감과 위로가 가득했다. '뭐뭐 해도 괜찮아'로 끝나는 책이 세 권이나 보였다. 그들은 나처럼 내가 속하지 못한 세계를 무작정 냉소하지도 않았다. 그냥 다들 재밌게 살고 있구나. 쉬운 치료, 쉬운 해법, 쉬운 재기. 나만 독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끙끙대며 읽는 거였나.


열람실 주위를 보니 다들 열심히 읽고 있었다. 독자가 줄어서 출판 시장이 점점 위축된다더니 다 거짓말 같았다. 이렇게 다들 도서관에서 보니 책인 안 팔 리는 걸지도 모른다. 사기는 아깝지만 읽고는 싶은 책들이 많아졌을까. 사위가 어찌나 고요한지 샤프심을 딸각거리는 소리가 구둣발처럼 또각거릴 정도였다. 꽤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어느 아리따운 여학생에게 포스트잇을 전한 적이 있었다. 나가서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청했다. 그녀는 공부하느라 한숨 돌릴 시간도 없다는 정중히 거절했다. 공부한다던 그녀는 실은 해리포터를 쌓아 놓은 채 읽고 있었다. 해리포터한테 진 거니까 그건 내 기량 탓은 아닌 거로 위안으로 삼았다. 그때 나는 너무 어리고 너무 촌스럽고 입만 열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소리나 늘어놓던 애송이였다. 그때 이후로 정말 많은 책을 읽어왔다. 좀 나아진 게 있을까. 확실히 무모하리만치 자신감은 사라졌다. 지금은 모르는 여자는 눈도 잘 못 마주치니까.

Footprints, 1950

그 시절 난 꽤 모험을 즐겼다. 신중함은 팔아먹고 꽤 분방하게 연애했다. 한때 만났던 그는 남부럽지 않은 학력과 지성을 지녔고, 긴 학업을 끝내고 막 회사에 다닌 참이었다. 난 그가 문학과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라 좋아했다. 고결한 학자를 향한 숭상을 그녀에게 투영했다. 그는 말을 세게 해도 경박하지 않았고, 잘 안주하는 타입이 아니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를 미술사 관련 책을 얘기하는 강연회에서 만났다. 회장에서 내가 말을 걸었고, 그곳을 나와서도 우린 여러 작품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푹 빠져들었다. 우리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관해 얘기했다. 빨간 우산을 쓴 누군가가 새하얀 눈이 쌓인 거리를 걸어가는 사진을 기억해냈다. 영화 <캐롤>을 안 봤으면 어쩔뻔했어. 구글 검색으로 봐도 흰색과 빨간색의 조화가 묘했던, 일상엔 흔해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대상을 끄집어낸 사진이었다. 난 너스레를 떨며 아는 척을 하느라 정신을 쏙 뺐다. 우리 둘 모두 지적 허영이 복부에 들어찬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만큼 여러 곳을 기웃거리는 상호 텍스트적인 대화에 열중했다. 밑천이 다 드러나는 대화의 방식이라서 끝은 늘 쩜쩜쩜. 감염 확산에 취약한 얼치기들의 소통법이었다. 정치적 윤리적 올바름에 관해서도 완고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강연회 이후 우린 철저히 밤에만 만났다. 나는 그런 관계가 처음이었다. 그 관계에는 오로지 어스름한 스탠드 불빛뿐이었다. 우리의 교감이 대화에서 빚어진 것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을 만큼 말이 없었다. 일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밤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갑자기 관계 사이를 이어준 문학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건 대체로 미숙하고 섣부른 말들이 오갔다. 조금만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 내숭을 떠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건 내 예측과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렇게 밤에 갇혔고, 꽤 긴 시간 그 속에서 놀았다. 결핍과 욕망을 내보이는 것이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에만 몰두하는 게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일인지 깨닫기까지는 여러 해를 거쳐야 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여러 차례 연애했고, 아주 많이 생각하고, 숱하게 뒤척이다 시간을 탕진했다. 내 예상을 넘어선 집착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었기에 그런 연애로부터 도피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번번이 실패했지만, 끝내 피로해지는 맘고생에 진력이 났다. 더는 실패하고 싶지 않고 거의 범죄라고 생각될 미친 짓을 그만하고 싶었다. 사는 꼴이 좀 외롭기는 하나 누군가가 카페에서 친구에게 떠드는 시시한 일화에 등장하고 싶지 않았다. 몇몇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몹시 두려워진다. 정신 빠진 애송이처럼 비에 젖은 꼴로 비척대던 기억은 잘 잊히지가 않았다.


요즘도 거슬리지 않게 이야기하고 매력적이다 싶을 만큼 적당히 아이러니한 분과 마주쳤다. 적당히 짓궂은 대화를 걸어와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귀여운 사람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소심해져서는 슬슬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서면 예상보다 더 커 보이고 생각보다 더 꽝꽝 울려서 놀라곤 했다. 수줍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기가 죽어서 눈길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책에 몰두하다 보니 거북목이 됐다. 에어팟으로 귀를 막고 주위 시선은 안중에도 없이 매력적이고 욕망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빠져 지냈다. 최근엔 필립 로스와 조너선 프랜즌의 전 작품을 순례 중이다. 어휘를 고르는 안목이 꽤 탁월해서 나를 사로잡은 소설들이다. 미국 문학이 별로라고 내게 말했던 치들을 다시 불러내서 따지고 싶었다. 내 허영이 미국 문학을 멀리하게 했고, 지금은 그 허영으로 더 미국 문학을 찾고 산다.


실제보다는 예술의 허구가 더 마음에 놓인다. 확실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미소보다는 덜 매혹적이지만 누군가 그랬지. 더 발달한 사회는 복잡하고 오묘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좋은 거짓말을 하며 살고, 나쁜 사회는 술이나 먹고 거침없이 말하는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들이 망친다고. 나는 일류 작가의 그럴싸한 거짓말을 읽으면서 현실 세계의 압력을 비껴가고 있다. 필립 로스의 익살스러우면서도 가슴 치는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면서 탄복했다. 어머 너무 야해, 라고 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도 열람실에 눈에 띄는 여인이 있었다. 심지어 읽는 책이 존 치버의 소설이었다. 필립 로스 앞에 존 치버가 놓이면 그건 의미심장한 인연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관한 수천 가지 추측을 물리치고 글로 적었다. 그와 변변찮은 대화를 나누는 걸 넘어, 긴 시간 따로 날을 잡고 진중한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글에 보탰다. 아무리 지켜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지켜볼수록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조바심을 주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고갈된 상상력이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냈지만 분량은 충분했다. 이미 밤이 되어 발코니 통유리 너머로는 깜깜한 어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도서관 앞 원형으로 생긴 공원을 걸으면서 젊고 천진난만한 상상을 이어갔다. 등에 땀이 축축해질 만큼 긴 시간을 걸었다. 벌써 꽃이 지네.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면서 비척비척. 내적 갈등의 외적 징후로서 터덜터덜.

이전 27화연애를 소설로 배웠어요, 그것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