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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이토록 혼란한 시기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버스를 탄 것처럼 불안하지만 차창 사이로 내린 햇빛은 따스했다.
2
"해가 지날수록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세계로 모시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이미 모셔온 이들을 대접하기에도 손이 많이 가죠." 이슬아 수필집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몇 번이고 입 속으로 되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올해의 내 심정과 같았다. 새로운 사람을 모시는 일보다는 모셔온 이들을 어떻게 더 대접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차린 것은 없지만 아무쪼록 오늘도 맛있게 드셨으면...'이라는 말이 멋쩍은 참이었다.
만약 내가 만든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옅게나마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세계에 찾아와 무엇을 대접받고 무엇을 남기며 떠날까. 쾌락과 고통의 회전 속도가 별처럼 빠른 시대에도 우리는 왜 사소한 편지에 마음을 써야 할까. 이런 고민에 평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진하는지 알게 된다면 나를 처량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3
어제는 꼬박 14시간을 잠들어 있었다. 시대가 변할 정도로 긴 꿈을 꾸었는데 일어나 보니 모두 사라져 있었다. 허무하면서도 내가 그토록 신경 쓰고 벌벌 떨어왔던 시간들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심했다. 죽음도 이와 같을까. 내가 살아온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에는 그간 분투했던 감각만이 남아있어서,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것에 우리는 안심하게 될까. 이런 생각을 깊이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단지 꿈과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증상을 '인생 멀미'라고 부른다.
멀미는 시각 정보와 다른 감각 정보의 괴리로 일어난다. 쉽게 말하면 눈으로는 별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평형감각은 자꾸만 '크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뇌는 혼란스러워하고 어지럼증이 생긴다. 내가 정의한 인생 멀미란, 머리는 당장 처한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은 '실은 모두 덧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할 때 발생한다. 그럴 때면 출근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에도,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저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내 앞에는 당장 해야 할 과제가 겹겹이 쌓여있지만, 이걸 해낸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멀미 증상을 멈추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바깥 공기를 쐬거나 눈을 감고 자버리는 것. 나는 보통 잠자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오늘은 잠들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바람을 쐬러 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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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이다. 봄이 오면 좋은 생각을 해야지. 미장원에 가고 새 옷을 사야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봄이 왔다. 슬퍼도 웃으며 반겨줘야 하는, 양버즘나무도 허름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맞이하는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