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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un 02. 2019

청소기도 청소를 해줘야지

쉼을 쉬다 쉬이 가겠네

자꾸 그러면 델꼬 갈꼬야~




 계획됐던 여행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최적화되지 않은 장소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네 아이가 있는 우리 가족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 한 번 도전했던 제주도 여행에서 씁쓸한 패배를 맛보고 한 동안 서울의 처가 말곤 다니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수년 전 인연이 됐던 남해에 사시는 분께서 초대를 해주셨다.

 "다시 펜션 하게 됐어요. 언제든 놀러 오세요~"

 우연찮게 받은 초대에 급하게 떠났던 남해 여행. 그곳에서 큰 선물을 얻었다. (선물로 받은 미역 얘기 아님.)


| 괜찮다지만 괜찮지 않았다


 바빴다. 중요한 마일스톤을 앞두고 뭔가에 쫓기듯.

 어디서 본 건 있어서는 마음속으론 여유롭다 자기 최면을 걸고 언제나 덤덤한 척 행동했지만, 빡빡해지는 일정과 시원찮은 진도에 조급했더랬다. 그런 와중에 여행이라니. 해맑은 얼굴로 초대 이야기를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웃긴 웃었다. 축하도 해주고. 그랬다. 앞에선. 그리곤 더 쫓겼다. 나의 반응에 기뻐하며 날짜를 확정해 버린 아내 덕에. 하!하!......하~~~~


 처음의 계획은 퇴근 후 빠르게 이동이었으나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여 반차를 내기로 했다. 아. 바쁜 시기에 반차의 부담감이란.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스스로 일이 밀려있음을 알기에 흔쾌히 다녀오라는 상사의 말에도 괜스레 맘이 불편했다. '괜히 가기로 했나?', '좀 미룰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 안 괜찮다지만 안 괜찮지도 않았다


 어라?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발걸음도 가볍다. 흠.... 좋.. 네? 어느새, 마음은 들떠 있었다. 그래. 뭉그적거리긴 해도, 저지르고 나면 맘 편해하는 게 나였지...


 반차를 쓰고 얼마 전 입학한 초딩 딸을 마중하는데 생각지 못한 아빠의 등장에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나도 참 많이 설렜다. 여자 친구 기다리듯이 :) 그렇게 뜨거운 포옹을 하고 어린이 집에 있는 아이들을 빼내서(?) 장을 보고 펜션에 도착했다.


 장관이다!

 역시 이 분들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장소며 구조며 소품이며. 대단하다 정말.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한다. 장난감 하나 없이도 어쩜 그리 잘 노는지. 새로운 환경이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인 것 마냥 아빠도 찾지 않고 쉴 새 없이 노닥거린다. 식사도 훌륭했고 맥주도 시원했다. 그렇게 무엇하나 거릴 것 없는 저녁을 보냈다.


 간만의 단잠을 자고 깬 이른 새벽, 아내와 오붓이 앉았다. 새벽에서 낮이 되는 멋진 광경에 우리가 있다. 진한 커피에 연거푸 물을 섞어가며 호로록호로록. 고요한 분위기에 드문드문 호로록 소리가 난다. 간간이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소 울음소리가 간극을 메워주려는 듯 공간에 머문다. 그리고 그 고요함을 하나의 느낌이 가득 채우고 있다.

행복하다.


 여유롭단 쇠뇌에도 기어이 모습을 드러낸 입안과 입가의 피곤들이 할 일을 마친 듯 잠잠하다. '안 괜찮을 줄 알았던 마음'도 이곳 어딘가에서 노닥거리는지 나를 찾지도 않는다. 참. 좋다.


| 청소기도 청소가 필요해


 행복감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주말 저녁. 대청소를 했다.

 아내가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는 지나치며 하는 말이 생각의 톱니바퀴를 세차게 돌린다.

 "청소기도 청소해줘야겠다"


 아...

 그래. 청소만 하는 청소기도 한 번씩은 청소를 해줘야 한다. 비워줘야 한다. 계속 청소만 시키다간 제 기능도 못할 게 뻔하다. 몇 년도 안된 청소기도 그럴진대, 30년이 넘은 나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바쁘니, 부담이니, 다음이니, 다 핑계다. 청소기야 속을 다 드러내고 시원찮으면 누군가 비워주지만, 나는 내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자주 들여다보고 비워줘야 할 테다.


 가끔은 멈춰 서서 일상에 쉼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잠시의 쉼으로 완벽한 클리닝을 할 순 없다. 일부만이 물청소가 가능한 청소기처럼 분명 어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니까. 하지만 눈썹 하나도 무겁게 느껴질 만큼 힘이 들 땐, 그저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풀풀 날리는 먼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고 믿는다.


 어쨌든 나는. 뭐, 거창하게 힐링까지는 아니라도,

 가쁜 을 들이쉬며 한으로 비우던 가에 잠시의 으로 제대로 된 을 채울 수 있게 됐

 와 저 라임 봐라. 이게 쉼의 힘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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