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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Feb 01. 2024

집을 산 친구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타인의 사정을 모르기에 조심 또 조심

오래전 재테크 책을 하나 읽었다. 집은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용도로 이용해야만 자산이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신선했다. 깔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 임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한다고 했다. 지식의 방벽이 낮았던 나는 으레 그래왔듯 그것이 전부인 양 책에 빠져 들었다.


한참 책에 빠져 부동산 공부를 조금 했다. 공부라고 해봐야 몇몇 용어를 익히고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이 현재에도 적용되는지 가늠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덕분에 관심도 없던 부동산 지식이 조금이나마 쌓였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먼지같이 쌓인 지식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먼지가 날린 방향이 좋지 않았다.


"주거 목적의 집은 자산이 아니야!"

"??? 어째서?"

"깔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당장 돈이 되지 않으니까."

"..................."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없는 집을 보유하는 것보다 매달 돈이 나올 수 있는,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이어야 진정한 자산인 거지."

눈치 없이 말하고 말았습니다.



애먼 방향이었다. 먼지가 조금 심하게 날렸는지 친구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친구들의 굳은 표정을 진지함으로 받아들이고는 계속해서 책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떠들어댔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두 친구가 얼마 전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을 잘도 쏟아 냈다. 한동안 잠자코 듣고만 있던 친구 K가 말했다. 


"나는 자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자산이 아니면 뭐지?"


그때 나는 입을 다물었어야 했다. 산만한 덩치를 가진 친구가 삐친 듯 말하는 모습. 그 정도면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지나치게 책에 빠져있었던 탓인지 먹고 있던 밥에 눈치를 말아 먹어 버렸다. 


"그런 인식 때문에 큰돈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거래. 현금흐름을 만드는 게 핵심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


친구들에게 알게 된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도움도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아는 체하고 싶었던 것도 같지만, 당시의 의도는 정말 그랬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함께 부자아빠가 되고 싶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고 반박하는 친구들. 그 친구들의 사정을 모르고 반박하는 나. 결국 뜻하지 않은 논쟁이 시작됐고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집을 자산으로 여기는 자와 그러고 싶지 않은 자. 집을 산 자와 사지 않은 자 간의 의미 없는 소모전이었다.


"그래, 나는 깔고 있을 테니까 넌 꼭 그렇게 투자해라."

"뭘 깔고 있어? 깔고 있는 게 아니... 어? 너 집 샀냐?"

"그래, 임마!"

"........ 추.. 축하한다...."

"축하는 개뿔..."


우리는 아무리 상대가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위에서 싸움을 한다. 여기서 가족은 '소중히 여기는 존재'다. 아무리 못났어도 나에게만은 소중하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 이 대화에서 친구들에게 소중한 것은 큰 맘 먹고 산 아파트였다.


돈 주고 산 집을 자산이 아니라고 해선 안 되는 거였다. @Pixabay


상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냥 어떤 주제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상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애착을 가진다. 그게 물건이든 지식이든 주변 환경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 것들에 대해 누군가 함부로 이야기하면 당연하게도 기분이 상한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애착만이 아니다. 혐오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도 민감하다. 안 그래도 싫은데 주변에서도 자꾸 뭐라고 하는 상황. 역시 좋을 리가 없다. 배우자 욕을 들어 주던 상대가 함께 욕을 하면 왜 남의 남편 혹은 아내를 욕 하냐며 화를 내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 그냥 나와 관련된 것에 대한 좋지 못한 남의 이야기는 기분 나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문제로 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부정하고 싶고 반박하고 싶어진다. 싸움과 감정의 골은 그렇게 생겨난다.


조심스러움과 배려가 필요하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 마찬가지로 몇 마디 무심한 말로 감정의 골을 파면 마음의 벽은 높아진다. 의도치 않게 파인 골을 메우느라 식겁했다. 눈치 없이 말하고 식겁하는 대신, 이제는 눈치껏 살짝 겁부터 낸다. 겁을 내면 조심하게 되고 그 조심스러움은 상대에게 배려가 될 수 있기에.


“야, 투자는 잘 되고 있냐?”

“... 그만해라~ 깔고 앉아서 빚 갚고 있으니까...”


비록 시작은 내가 했지만, 아무래도 겁 없는 이 친구에게도 식겁을 한 번 먹여야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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